인요한 혁신위와 국민의힘의 앞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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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서울시 강서구청장 참패이후 당 쇄신을 위해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유명한 전남 순천 출신인 연세대 의대 인요한 교수를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한국정당에서 혁신위 체제는 낯설지 않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때 홍준표 혁신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시절 김문수 혁신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때 류석춘 혁신위, 이준표 대표 때 최재형 혁신위가 활동했다. 민주당의 경우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시절 김상곤 혁신위, 이재명 대표 때 김은경 혁신위가 등장했다. 그 중 홍준표 혁신위만 성공 사례로 꼽히고 나머지는 실효성 있는 쇄신안을 남기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났다.
따라서, 인요한 혁신위에 대해 기대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인 위원장의 독특한 언행과 과감한 혁신안, 당내 비윤 인사들(이준석·김종인·홍준표)과의 연속 회동 등으로 국민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당 지도부 및 중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 권고”가 당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국민들의 인 위원장 광폭 행보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한국갤럽 11월 4주 조사(21~23일) 에 따르면,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물어 본 결과, '잘하고 있다' (42%)는 긍정 평가가 '잘못하고 있다'(39%)는 부정 평가보다 오차 범위 내에서 앞섰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수치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26%)와 이재명 대표(31%)의 역할 수행 긍정 평가보다 높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동일한 조사에서 인 위원장의 역할에 대한 긍정 평가는 높게 나왔는데 윤석열 대통령 극정운영 지지도는 33%로 전주 대비 1% 포인트 하락했고, 국민의힘 지지도는 33%로 민주당(35%)보다 뒤지면서 전주 대비 2% 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당 지도부가 혁신위가 주도하는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실제로 당 지도부와 친윤·영남권 중진 의원들은 험지 출마나 불출마 등 혁신위의 희생 요구에 맞서 세 과시와 침묵,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지난 25일 울산 남구 의정보고회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여러분이 내리신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는 “내 지역구가 울산이고, 내 고향도 울산”이라며 “내가 내 지역구에 가는데 왜 그거 가지고 시비냐”라고도 했다. 이는 울산 지역구 재출마를 시사하면서 혁신위의 권고를 거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구 지역에서 5선을 한 주호영 의원은 지난 8일 대구 의정보고회에서 “정치를 대구에서 시작했으니 대구에서 마쳐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친윤계 핵심인 장제원 의원도 "알량한 정치 인생 연장하면서 서울 가지 않겠다”며 지역구 출마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인요한 혁신위가 출범하면서 반짝 생기를 띠었던 당 혁신 이미지는 지도부가 혁신안을 모른 척하면서 수용하지 않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인 위원장은 "우리가 일한 만큼 돌아오는 표현에 성의가 없었다. 어떤 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다음 주 목요일 회의에서는 아주 강한 메시지가 담길 것"이라고 예고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혁신위는 희생 권고안을 정식 의결한 뒤 당 지도부에 혁신안으로 공식 제안할 예정이다.
향후 혁신위 앞에 놓인 카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정해진 1차 기간(12월 24일)까지 활동을 지속하는 것. 둘째, 일부 혁신위원이 사퇴하지만 끝까지 활동을 마치는 것. 셋째, 조기에 혁신위 활동을 중지하는 것이다. 혁신위가 조기에 종결되면 당 기득권 세력이 혁신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치명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적당한 조건과 명분을 내세워 1차 활동 기간까지 혁신위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인요한 혁신위가 국민만 바라보며 성공하려면 몇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최우선 순위에 대한 원칙이다. 혁신위는 윤석열 정부 집권 1년6개월만에 국민들이 왜 등을 돌리고, 집권당이 민생을 챙기지 못하고, 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이유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통해 그 원인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혁신의 최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 국민의힘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통합과 포용’이 아니라 ‘반성과 성찰’이다. 당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가로 막고 있는 거대한 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우선이다. 당이 대통령실 눈치를 보지 않고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혁신위는 남은 기간 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혁신의 본질이 돼야 한다.
둘째, 한국 정치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정치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비대하고 집권화된 중앙당 운영 시스템을 바꾸고, 제왕적 당 대표 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정당 개혁이 필요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정당이 국고 보조금에만 의존하는 전근대적 정당 시스템을 4차 산업 혁명시대에 맞게 개혁하고,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 줄 수 있는 공천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성과 정치 신인들이 차별받지 받지 않도록 현역 기득권 중심의 법과 제도도 대폭 바꾸어야 한다. 최근 혁신위 특강에서 김무성 대표가 ”이번 혁신위원회는 정당 민주주의를 확보할 수 있는, 정착시킬 수 있는 상향식 공천에 초점을 맞춰서, 혁신위가 당에 권고하는 방향으로 해야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셋째, 사즉생의 각오로 국민만 바라보며 활동해야 한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 첫 회의에서 "혁신은 국민 눈높이로 내려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인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윤 대통령 측으로부터 '소신껏 끝까지 당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가 왔다고 언급했다. 이 발언은 김기현 대표의 지적처럼 "당무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을 당내 문제와 관련해서 언급한 것”으로 패착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혁신위는 권력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믿고 국민과 함께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넷째, 자기만의 정치 불가 원칙이다. 위원장이 '설화'나 자기만의 정치를 위한 개인 행동으로 혁신의 동력을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인 위원장은 저항하는 영남 중진들을 향해 “우유를 마실래, 아니면 매를 좀 맞고 우유를 마실래”라고 공격했다. 인 위원장은 ‘반(反)윤석열 신당’을 추진 중인 이준석 전 대표를 겨냥해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며 “그것은 준석이 잘못이 아니라 부모의 잘못이 큰 것 같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발언들은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킬 수 있고 무례하고 교만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인 위원장이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이미지 메이킹에만 집중하면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더구나, 혁신위원장이 혁신위를 자신의 정치 입문의 장으로 이용하려고 하면 혁신은 물 건너 간다. 여하튼 교만은 혁신의 적이다. 인요한 위원장이 낭만 닥터가 아니라 불굴의 혁신가로 성공하려면 위에서 제시한 원칙들을 지키며 민심을 얻어야 한다. 단언컨대, 인요한 혁신위가 살면 국민의힘도 살고, 혁신위가 죽으면 국민의힘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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