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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국의 문화전망대 <2> 서울 궁궐의 금천에 물이 흐르게 하자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11월28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4년12월21일 08시35분

작성자

  • 윤정국
  • K문화경영연구소 대표,공연예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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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문화유산답사회’를 조직해 경복궁이나 창덕궁, 창경궁 등 서울의 여러 궁궐을 답사해왔다. 답사하다 보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바로 궁궐 정문 안쪽에 조성된 물길(금천·禁川)에 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복궁의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 금천이나, 창덕궁의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 금천은 아예 물이 보이지 않는다. 창경궁의 홍화문과 명정문 사이 금천은 물이 보이기는 하나 개울 바닥만 조금 적시다마는 정도여서 성이 차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궁궐에서 웅장한 전각과 아름다운 곡선의 기와를 보면서 오랜 역사의 문화유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느끼며 행복감에 잠기는 것도 잠시, 메말라버린 금천 바닥을 보노라면 이내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해진다. 동행한 지인들도 하나 같이 “왜 이렇게 물길을 조성해 놓고 물을 흐르게 하지 않느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럼,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서 동궐도(東闕圖)를 찾아보았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하나의 궁궐(동궐)로 보고 제작한 1820~30년대의 이 지도를 보면 창덕궁의 금천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콸콸 흐르고 있고, 창경궁의 금천도 물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궁궐의 금천 가에는 지금도 개울을 쳐다보며 물속에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서수(瑞獸)들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금천에는 많은 물이 흘렀음을 이 서수들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경복궁의 천록(天鹿)들을 비롯해 창덕궁의 해치(獬豸)와 현무(玄武), 창경궁의 귀면(鬼面) 등이 현재 물 없는 개울을 쳐다보며 서 있는 모습은 안쓰럽기 짝이 없다.   

 

궁궐의 안과 밖을 구별해 주는 경계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뜻에서 금천(禁川)이라 불린 이 물길은 궁궐건축 철학의 중요한 요소로, 음양오행과 풍수지리 사상이 반영된 상징적 공간이었다. 궁궐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지로 만들어주는 한편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벽사(辟邪)의 역할과 함께 화재 발생 시 소방수(消防水)의 역할도 했다. 금천에는 금천교가 세워졌으며, 신하들은 이 금천교를 건널 때 자신의 사사로운 마음을 흐르는 물에 떠나보내고 깨끗한 마음으로 정치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궁궐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거나 훼손되고, 금천의 물흐름도 중단되었다. 이후 복원 작업을 통해 금천에 다시 물을 흐르게 하려는 노력이 간간이 이어졌지만, 한두 번의 이벤트로 그치고 지속되지는 않았다. 

 

이런 금천의 복원은 궁궐을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이자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는 의미 있는 일이다. 물 흐름의 복원을 통해 궁궐 내부의 미세 기후조절과 심미적 경관 개선도 가능할 것이다. 금천에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흐른다면 많은 방문객에게 기쁨을 안겨줄 수 있다.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흐르게 하는 일도 해냈는데, 이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대의 수리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금천에 물을 흐르게 할 수 있다. 궁궐 주변의 지하수를 조사하고 적정량을 활용해 금천에 물을 공급하는 방식이나, 재생수(정화 처리된 하수)를 금천으로 공급하는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방식도 가능하다. 또, 펌프를 사용해 금천의 물을 순환시키는 인공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일정한 물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 물이 마르지 않도록 조경과 연계한 순환 구조를 설계하거나, 금천 바닥이나 수변에 자연정화를 돕는 식물을 심어 수질 유지와 생태계 복원을 촉진할 수도 있다. 

궁궐의 금천에 지속적으로 물이 흐른다면 방문객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더불어 궁궐에 생동감을 더해줄 것이다. 복원된 금천은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아 관광 활성화와 지역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금천 복원 사업을 정부 당국에만 맡겨둘 일은 아니다.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관련 시민단체나 기업이 발 벗고 나서면 좋겠다. 민관이 협력해 ‘금천 복원 캠페인’을 펼치는 방법도 생각해볼 일이다. 금천 복원은 단순히 물을 흐르게 하는 일만은 아니다. 문화유산의 역사성을 되살리는 동시에 친환경적 문화유산 활용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물이 흐르는 금천, 숨 쉬는 궁궐을 답사하는 일은 언제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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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11월28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4년12월21일 08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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