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변천과정에서 본 경제민주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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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민주화는 정체불명이 아니라 분명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
경제와 민주화란 말은 그 개념이 비교적 명확하다. 즉 경제란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물적 기초가 되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과 그것을 통하여 형성되는 사회관계의 총체”를 말하고, 민주화란 “정치, 경제, 문화를 포함한 사회 전 영역에서 자유와 평등을 포괄한 민주주의의 원리들이 확산되고 심화되는 과정”을 뜻한다.
그렇다면 경제란 말과 민주화를 결합한 “경제민주화”란 용어는 “경제활동과 관계에 있어 불식되지 못한 비민주주의적 요소를 제거하여 민주주의 원리들이 좀 더 확산되고 심화되도록 하는 움직임”이 바로 경제민주화의 내포가 된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다. 결국 현재의 경제활동과 관계에서 빚어지는 비민주적 요소를 찾아내어 민주적으로 개선하여 가는 과정이 바로 경제민주화의 개념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개념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각 시대별로 경제체제가 다르므로 요구되는 경제민주화의 목표와 해법이 다를 수밖에 없고, 동시대라 하더라도 각 나라별로 경제활동과 관계에서 비민주적 요소가 존재하는 영역과 양상이 서로 다를 것이므로 “경제민주화”란 개념은 고정불변의 개념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그리고 시대에 따라 그 내포가 달라지는 형성적, 유동적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적정하다.
그래서 헌법 제119조 제2항도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경제민주화를 명문화하고 있다.
2. 제헌헌법은 경제민주화 그 자체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경제민주화 논의가 제기된 것은 1948. 정부수립과 출발을 같이 한다. 즉 제1공화국 정부는 근로자보호와 토지개혁을 실시하면서 기업 이익의 기업주 독점과 농업에서의 지주의 소작농 착취를 비민주적이라 규정하고 이를 민주화하여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이러한 경제민주화 요구를 반영한 것이 제헌헌법(1948. 7. 17.)이다. 당시 우리 정부의 경제민주화 방침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1945. 9.) 맥아더가 일본경제의 비민주성을 지적하고 일본 정부에 재벌해체, 농지개혁, 근로자권리옹호와 노동조합육성 등 3개 요소를 강력히 요구한 것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최희갑)
제헌헌법은 당시 세계정신을 지배하던 복지민주주의의 정신을 받아들여, 정치적으로 봉건시대 및 일제시대의 독재체제에서 민주공화정으로 이행하는 것이었으며, 경제적으로 사유재산권과 자유영업을 원칙적으로 하되 기업과 농지의 독점으로 인한 경제력 집중을 금지하고 기층 민중의 기본적 생활을 충실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제헌헌법은 봉건주의, 제국주의 경제체제를 복지민주주의 경제체제로 변화시키는 것이었으므로 그 자체가 경제민주화였다.
제헌헌법의 경제민주화 관련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정부에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보호, 조정하는 의무를 부여하고(제5조), 둘째 영리목적 사기업에 대하여 근로자의 이익분배균점권을 보장하고(제18조 제2항), 셋째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제86조), 넷째 운수, 통신, 금융 등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유로 하며(제87조 제1항), 다섯째 모든 국민은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하여야 하고 타인의 경제상 자유는 그 한계 내에서만 보장된다는 것이다.(제84조)
3. 권위주의 시대 비약적 성장은 경제민주화의 양보 속에 이룩되었다.
제1, 2공화국 헌법에서의 경제민주화 원칙은 1950. 내전을 통해 모든 자원이 파괴된 상태에서 해외 원조에 의존하는 경제환경 속에서는 허울 좋은 구호에 불과하였다. 약 10년간의 정치적 혼란은 경제적 피폐를 더욱 강화시켰다. 궁핍의 지속은 민주적 절차보다는 우선 민생고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그 목적을 위해서는 다소간의 권위주의적 독재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제3공화국 헌법(1962. 12. 26.)은 먼저 원시적 경제축적을 형성하고 그 기초 위에서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성장을 통한 고용과 재분배 등 낙수효과를 통해 전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제하에 구상되었다. 제3공화국헌법을 제헌헌법과 비교하면, 첫째 정부의 경제권능의 우선순위를 제헌헌법의 “정부의 공공복리를 위한 보호, 조정의무”에서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 존중”으로 변경하여(제111조 제1항) 자유경쟁주의 원칙을 천명하고(제5조), 둘째 제헌헌법의 사기업 근로자의 이익분배균점권을 폐지하되, 근로의 권리(제28조 제1항)와 사회보장(제30조 제2항, 제3항)을 강조하고, 셋째 제헌헌법의 “농지분배”를 “소작금지”(제113조)로 후퇴시키고, 넷째 제헌헌법의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유화”를 폐지하되, 다섯째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게 하였다.(제111조 제2항)
제3공화국헌법의 자유주의적 경제관과 권위주의 정부의 국가 주도적 경제정책 운영은 강력한 정부의 권위에 근거하여 일부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특혜성 지원과 독점 인정 등을 당연시하여 결과적으로 자원의 자의적, 선택적 배분과 특정분야나 기업에 대한 집중적 지원이 이루어져 빠른 속도의 외형적 경제성장을 가져왔다. 다만 경제성장의 성과에 발맞추어 경제활동 및 분배관계에 있어 비민주적 요소를 찾아내어 지속적으로 민주화하는 경제민주화과정을 생략한 채 제5공화국 종료시까지 약 25년간이나 방치하는 바람에 평등권 등 기본적 인권이나 근로자의 노동권 등이 무시되고 특히 재벌 기업의 순환출자를 통한 일감 독점, 하청업체 착취, 오너기업인의 회사기회와 자금의 유용, 대기업노동조합의 횡포 등을 허용하는 관행이 뿌리박혔다. 반면에 중소기업의 경영상황과 서민층의 생활은 상대적으로 열약화, 궁핍화를 초래하고 급기야 양극화의 심화, 불평등의 고착화라는 경제비민주화의 비극을 필연적으로 배태하게 되었고 이를 시정하려는 저항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4. 현행 헌법은 진정한 민주정부의 출발이며, 그 핵심은 경제민주화다.
권위주의 정부에 의한 개발독재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선택과 집중에 의한 특혜와 독점의 수혜자들은 부와 권력을 가진 기득권 세력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소외된 산업과 계층의 고통과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마치 오직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장한 것처럼 자만하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약자들을 위하여 기회를 나누거나 고통을 분담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의 비민주적 억압은 결국 1987.에 이르러 시민들의 폭발적 민주화 시위로 이어졌고 6.29 선언을 통해 정치분야에서의 대통령직선제 수용과 아울러 경제민주화의 요구가 표출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경제민주화”란 용어를 헌법 조항에 최초로 직접 언급한 것이 현행 헌법(1987. 10. 29. 헌법 제10호) 제119조 제2항이다. 따라서 현행 헌법이야 말로 근로자의 기업이익균점을 규정한 제헌헌법에 이어, 제2의 경제민주화 헌법이라 할 수 있으며 현행 헌법은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근로의 권리 및 최저임금제 시행(제32조 제1항), 농어민 보호육성(제123조 제1항, 제4항), 지역간 균형발전(제123조 제2항), 중소기업보호육성(제123조 제3항),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제34조)를 새로이 규정하였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제민주화란 경제에서의 비민주적 요소를 찾아내어 민주적으로 확산, 심화시키는 움직임이므로 당시의 경제민주화 요구는 권위주의 정부에 의한 압축성장 과정에서 노정된 부문별, 계층별, 지역간의 불균형을 시정하고, 경제운용에서의 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배제하고,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독점횡포에 대한 견제, 기업의 의사결정 및 분배 과정에서의 경제주체들간의 균형 등이 주로 논의되었으나, 당시 경제적 호황과 복지제도의 일부 개선에 도취된 시민들이 정치분야로만 민주화 관심이 편향되면서 오히려 재벌과 대기업의 시장지배가 더욱 확대되고 일자리의 양질화, 취약계층의 복지혜택을 통한 양극화 방지를 위한 인간존엄권 및 평등권 보장 분야는 외면되는 기현상을 낳고 말았다.
5. 확장경제의 마감으로 인해 불가피해진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는 경제활동과 관계에서의 자유권, 평등권을 포함한 민주주의의 심화를 의미하는데, 우리나라는 제헌헌법 이래 구호로는 민주화를 부르짖었지만 현실은 비민주화의 심화를 지속해 왔으며 이를 개선하려는 각종 입법이 존재했지만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시민들조차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다 보니 개선의 노력 즉 민주화는 별 진척이 없었다.
지구세계는 20세기 후반기까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어 왔으며 성장의 이면에는 대기업의 과잉생산과 근로자의 과잉소비의 교환이 숨겨져 있었다. 해외소비시장의 포화로 과잉생산의 소비처를 잃으면서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고 결국 실업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여 유효수요의 만성적 취약상태가 초래된다. 궁핍화성장은 실업과 임금삭감을 낳고 불평등 심화, 괜찮은 일자리의 부족, 사회적 불만의 증가, 시민참여 부족, 정치적 냉담을 가져와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와는 멀어진다.
1998. 외환위기와 2008. 국제금융위기는 과잉생산, 과잉금융을 따르지 못하는 소비자의 유효수요 부족이 초래한 필연적 결과이며 소비를 책임지는 계층 즉 근로자 계층이 임금이 삭감되거나 실업에 이르거나 혹은 국가의 복지재정이 충분치 못하면 국가 경제 전체, 나아가 세계 경제 전반에 혼란이 초래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결국 생산자인 대기업 스스로 고용을 늘리고 노동집약적 성격을 가진 중소기업에 일감을 나누어 주며 세금을 많이 내어 복지재정을 튼튼히 하는 방법으로 소비자의 양적 증가와 질적 인 양질화에 노력해야만 대기업의 생산품의 소비가 가능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는 대형 기업의 도산이나 세계적 경제위기 등 특정 사건이 발생할 때만 일시적으로 경제민주화를 외쳐대다가 일순간 논의가 사라진다. 정확한 문제의식과 지속적인 실현노력을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의 정치의식과 시민정신으로는 현행 헌법 상의 경제민주화를 이루어 내기 어렵다. 2012.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 구호와 다양한 접근방법을 제시하였지만 대선 종료와 동시에 그 이슈는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도 일부 정치인과 학자들이 경제민주화 불씨를 다시 살리려고 무진 노력하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하다.
성장은 필연적으로 방대한 빈곤하고 배제되는 주변부를 창출하게 되므로(유엔 1969인권보고서) 지속가능한 통합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심부가 주변부의 구제와 참여를 이끌어 내어야 하며 이러한 지속적 노력이야 말로 경제민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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