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 2024년 국제정세 전망 <1> 불확실성과 리스크 증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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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질서의 파편화와 진영화
2024년 국제정세는 파편화된 세계질서 하에서 새로운 진영화가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글로벌 곳곳에서 다양한 갈등과 충돌로인한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증대할 전망이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이고, 여기에 더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대만해협-남중국해의 긴장 가능성, 한반도의 위기감 고조 등이 거론된다.
첫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심해진 국제체제의 분절화(systemic fragmentation), 혹은 파편화된 국제질서 도래로 모든 국가들이 자국 이익 위주로 격돌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촉발된 국제공급망 교란, 지정학의 귀환, 강대국 경쟁의 재현, 국제제도와 레짐의 기능부전, 글로벌 거버넌스의 난맥상 등이 이런 환경을 조성하는 요인들이다.
둘째, 신냉전 진영화 추세의 심화다. 이미 진행 중인 미중 전략경쟁에 더하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격 침공은 서구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초래해 세계질서가 빠르게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체제의 대립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더 나아가 세계는 미국과 서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웨스트(Global West), 중·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이스트(Global East), 그리고 인도, 브라질 및 중간지대의 나머지 다양한 비서구 발전도상 국가들을 포함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삼분되는 양상이다. 현재 국제질서의 핵심은 글로벌 웨스트와 글로벌 이스트 사이의 경쟁, 특히 미중관계에 있다. 미중관계는 정치와경제, 이념과 체제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당분간 적대적 경쟁관계가 지속될 전망이며,글로벌 사우스를 상대로 경쟁적 ‘세 결집’(coalition building)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1)
셋째, 글로벌 및 아태지역의 다양한 발화점(flash point)을 둘러싼 돌발사태 가능성이 증대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로 대만해협 및 남중국해의 군사적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 핵위협의 급진전에 의해 평화프로세스가 붕괴하면서 안보위협이 고조되고, 아태지역의 안보정세가 불안해지면서 일본을 비롯한 역내 각국은 국방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어 향후 새로운 군비경쟁 추세도 우려된다.
이처럼 2024년 국제정세는 당분간 뚜렷한 글로벌리더십이 부재한 가운데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안보와 경제 이익 확보를 최우선시하는 추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또한 지금은 지구촌 곳곳의 충돌 여파가 갈수록 연결되는 시대다. 세계 전체가 하나의 전역(戰域)으로 연결되고, 지구촌 그 누구도 타 지역의 전쟁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글로벌 공급망의 교란 이후 지정학과 지경학의 경계도 갈수록 모호해져 가는 추세다. 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던 2차대전 이후 형성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혹은 규칙기반 국제질서는 현재 새로운 신 양극체제, 혹은 새로운 다극체제 질서로 전환되는 조짐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규칙기반 국제질서를 이끌고 갈 글로벌 리더십의 약화를 꼽을 수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선의의헤지몬 역할을 하지 않으려 하고, 중국은 헤지몬 역할을 할 준비가 안 됐다. 글로벌 리더십 차원에서 지금은 일종의 궐위의 시대(interregnum)다.국내정치 차원에서는 포퓰리즘과 권위주의, 극단적 정치의 부상으로 민주주의 퇴행(democraticbacksliding) 현상이 만연해 있다.
국제질서 전망의 키 드라이버
2024년 국제질서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드라이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중관계의 향배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중 전략경쟁은 무역 및 관세전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가치와 체제, 첨단기술 분야까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총체적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 정책의 재조정(recalibration)을 논의하면서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으로 방향을 전환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본질적으로 미중 경쟁이 달라진 건 아니다. 디리스킹은 미중 경제관계를 전면적으로 분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나 인공지능(AI) 등 민감한 첨단 군사안보 관련 핵심분야로 좁게 한정하여 그 분야에서 미국의 핵심 기술이나 제품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요컨대 제한은 좁게 하되 장벽은 높이겠다는 것(smallyard, high fence)이 핵심이다. 중국은 디리스킹이 미국의 대중정책 기조 변화나 완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며, 디커플링이나 디리스킹의 본질은 탈중국화, 모두 중국의 경제발전과 첨단기술 억제라는 목적이 있다고 비판한다.
둘째,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 지가 향후 국제질서의 성격을 규정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차대전 이후 확립된 국제법, 영토주권 원칙을 위배한 것은 물론 OSCE 등 다자체제를 통해 정립된 유럽의 갈등해소 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만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승리로 끝나든지 혹은 러시아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않는다면, 향후 유럽은 그 어느 나라도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푸틴의 승리로 끝난다면 이는 강대국이 약소국의 영토를 힘으로 뺏았아도 국제사회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한 사례로서, 자유세계의 리더로 군림해온 미국의 리더십에 치명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셋째, 중동정세의 향배이다.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 레바논 헤즈볼라까지 확전되고 이스라엘의 숙적인 이란이 가세하게 되면 중동정세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란은 하마스를 최전선으로 내세운 중동 내 반(反)이스라엘, 반미 세력의 후원자이자 배후로 알려져 있다. 중동정세가 어지러워지면 국제유가가 상승 압박을 받게 되고, 이는 곧 글로벌 경제회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넷째, 대만 및 남중국해 문제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이 유럽에 쏠린 틈을 타 시진핑 주석이 대만 무력통일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여러 가지 국내외 문제로 인해 대만에 대해 단기간 내 무력 사용은 안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2024년 1월 13일 치러질 대만 총통 선거는 허우유이(국민당)·라이칭더(민진당)·커원저(민중당) 후보 3파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독립성향의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와 친중 성향의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대만총통 선거를 앞두고 대만산 화학 제품 12개에 대한 관세 감면을 중단하기로 하는 등 친독립 세력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압박을 이미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한반도 상황이다. 북한은 2022년초부터 핵과 미사일 역량 강화에 치중하면서 중러와의 밀착을 강화하고 있다. 남북대화는 물론 북한과 국제사회 간에 일체의 소통채널이 단절되면서 북한의 행보와 한반도 상황은 시계 제로 상태이다. 2022년 12월말 개최된 당중앙위 제8기 6차 전원회의는 핵무력정책의 법제화를 중요한 성과로 평가한 후,핵무력 건설 기본방향을 제시했다. 전술핵무기 다량생산, 핵탄보유량의 기하급수적 증대, 신형 ICBM 개발계획 채택, 핵무력 선제사용 가능성 시사 등은 북한의 핵독트린이 갈수록 공세적이고 위험스런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에 대한 함의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응해 윤석열 정부는 외교안보 면에서 두 가지 특징을 드러냈다. 첫째는 한국의 가치외교 정체성 부각이다. 윤 대통령 본인 스스로 쓰는 언사들을 보면 자유, 평화, 법치,인권 등 가치에 기반한 개념들이 많고, 윤 정부는 가치외교에 기반한 외교정체성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둘째는 전략적 모호성보다는 전략적 투명성을 제고한 점이다. 한국의 역대 정부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결정하기 불편한 사안에 대해서는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명분 하에 명확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는 태세를 취했지만, 윤 정부는 미국, 일본 등 우리와 체제와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공조를 확연히 강화했다. 세계질서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유례없는 혼돈과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시대에 한국이 가치와 국익을 기준으로 선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로 인한 리스크를 어떻게 예측하고 대비할 것인지가 과제다.
첫째, 한국 외교의 가치 정체성과 전략적 투명성 증대로 인해 ‘가치와 체제가 다른(less like-minded)’국가들, 특히 중·러로부터의 후폭풍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이 글로벌 웨스트와 협력을 강화하더라도 한국에게 글로벌 이스트는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악화되면 한국과 중·러와의 관계도 경색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이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면서 러시아도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따라서 향후 중·러에 대해 가치와 시장을 구분해서 접근하는 혜안이 필요한 때이며, 특히 중국의 경제 강압외교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이 글로벌 웨스트와 연대할수록 북·중·러 연대도 강화되는 건 불가피하며, 그로 인한 한반도 위기관리의 중요성도 증대될 것이다. 지난 7월27일 북한의 소위 ‘전승절’(정전협정체결일) 70주년 행사는 핵·미사일 정책에 일체 변화가 없다는 사실과 북·중·러 밀착 연대를 내외에 적극 과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승절 열병식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한 것은 북·중·러 연대가 고착되고 있음을 시사하며, 이는 한반도의 긴장완화 및 위기관리가 더욱 중요해짐을 의미한다.
셋째, 파편화된 질서 속에서 진영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혼란스런 국제질서 속에서 외교가 할 일은 리스크 분산이 핵심 과제이다. 가치와 국익 사이에서 이를 어떻게 믹스한 국가전략을 펼칠 것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과의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을 선언한 유럽의 고민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외적인 경제적 충격이나 경쟁국의 정치·경제적 압박으로부터 견딜 수 있는 국가와 사회의 탄력성(resilience)을 어떻게 키울지도 중요한 과제이다. 한국과 비슷한 처지인 유사 입장 국가들과의 협력도 더욱 중요해졌다.
넷째, 국제질서가 진영화로 재편되는 것이 추세라면 한·미·일 3국 협력을 정례화하는 한편, 한·일양자협력을 지속가능한 플랫폼으로 제도화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한·일 공히 국내정치적 이유로 한일관계 부침을 겪었던 그간의 경험을 감안하면 한·일 차기 정부에서도 이런 협력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4년 선거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미일 3국의 국내정치적 변수를 극복하려면 한미일 협력에 대한 각국의 국내적 지지를 확보해야 하며, 지속가능한 어젠다를 발굴하고 협력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에 전개될 국제질서는 어떤 것일까?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향후 국제사회가 미국 중심의 단극적 질서를 대체할 다자적 질서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가 없이는 새로운 진영체제로 대결별의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 서구사회는 왜 자유주의 국제질서, 규칙기반 국제질서가 좋은 건지 내러티브를 만드는데 한계를 노정했다. 글로벌 사우스는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배타적이고 이중적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아직 중국식 모델을 따를 확신도 없는 것 같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대신 글로벌 차원에서는 비자유주의적 분파주의(illiberal particularism)가 도처에서 횡행하고, 국내 차원에서는 민주주의 퇴행이 뚜렷한 현상황에서 바람직한 국제질서에 합의하기 위한 주요국들의 노력은 더욱 중요해졌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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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 John Ikenberry, “Three Worlds, One Global Order:Competing Visios of the Global West, Global East, and Global South,” (forthcomin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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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한 [정세와정책 2024-1월호 제65호](2024.1.2)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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