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 - 1천만 관객의 사회심리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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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 영화 두 편 탄생
최근 1천만 고지를 넘은 영화가 두 편 탄생했다. 영화 <베테랑>과 <암살>이다. <베테랑>은 정의로운 열혈 형사와 재벌 3세 간의 대결구도가 뼈대다. 왜 사람들은 이 영화에 줄을 섰을까? 우선 재밌다. 영화의 재미는 스토리의 단단함과 화면 구성의 볼거리,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에 달려있다. 배우의 연기도 시나리오가 받혀주어야 한다. 미술, 의상, 음악 등 영화적 미장센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그런 요소를 고루 갖춘 영화들이 다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재밌는 스토리텔링에 더해 메시지가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 <베테랑>은 재벌가의 후안무치와 부도덕성을 신랄하게 까발린다.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는 체불 임금을 받기위해 찾아온 화물트럭 기사(정웅인)를 교묘하게 살해한 후 자살로 위장한다.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이상한 낌새를 채고 이 사건을 파고든다. 영화는 사건의 전모를 풀어가는 과정의 이야기다. 재벌과 형사는 물고 물리는 싸움을 거듭한다. 재벌은 돈과 돈의 권력을 이용하고 형사는 오로지 정의를 무기로 싸운다. 재벌은 화물차 기사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야구방망이와 사나운 개를 동원한다. 무시무시한 폭력을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작하지 않는다. 임금을 착취하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형사 서도철의 집요함이 재벌 조태오의 목을 죄자 조태오는 돈으로 서도철의 아내를 회유하려한다. 조태오의 심복 최상무(유해진)이 교사인 그의 아내를 회유하려 나선다. 최상무가 아내 주연(진경)을 만나는 자리에서 최고급 명품 가방을 내밀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명품 가방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멋있게 한 방 먹인다. 그렇다. 서민들이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지는 않다. 지위가 높거나 권력을 가진 자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알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까뭉개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오...이를테면 자존심이라고 표현하자. 돈 앞에 권력 앞에 자존심을 버리는 자. 많다. 이것이 현실의 민낯이다. 때로는 본인의 자화상일 때 참담하여 죽고 싶었던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샐러리맨, 하도급업자, 영세상인,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생계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유 때문에 자존심 상하더라고 참는 경우는 다반사다.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한 번 참으면 만사가 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의 스토리에서는 참을 수가 없다. 서도철의 아내, 그녀가 쏘아 붙인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그 말에 모든 이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비록 스스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도 말이다.
재벌의 오만과 배려없음
재벌로 돌아가자. 얼마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한항공 조모 상무의 ‘땅콩사건’을 우리는 기억한다. 어릴 적부터 공주 대접을 받고 자란 그는 안하무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자기만 있고 상대는 없다. 상대가 부하직원일 경우 더욱 그렇다. 건방짐과 예의 없음과 무식함의 극치가 아니고서야 지를 수가 없는 일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이다. 그의 사전에는 사욕(私慾)과 오만(傲慢) 만이 있지 배려(配慮)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베테랑>은 한심한 재벌가 식구들의 탐욕과 부도덕에 대한 응징과 분노를 말단 형사를 통해 작렬시킨다.
이 영화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부자들의 태도에 대한 서민들의 반감이 공감을 얻어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재벌응징’ 이라는 메시지에 대리만족하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재벌 개혁을 백날 논하는 것보다 영화 한 편이 못된 재벌을 손봐야 할 이유를 쉽게 가르쳐준다. 영화 흥행의 의미는 재벌가의 일탈 행태를 손보고 싶은 다수 국민들의 염원일 것이다. <베테랑>이 관객 동원 1천 4백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1천만 관객을 동원하면 그것은 국민영화가 된다. 국민영화에는 반드시 메시지가 있다. 부도덕하고 파렴치하고 정의롭지 못한 재벌에 대한 응징.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바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두 번째 영화는 <암살>이다. 이 영화는 일제 강점기 기간은 물론 광복 이후에도 여전히 승승장구한 친일파를 응징하는 내용이다. 독립운동 저격수 안옥윤(전지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의 신임을 받는 염석진(이정재)을 끝내 암살한다. 영화의 코드는 이중 첩자, 배신, 암살이다. 왜 암살하는가? 동지를 배신하고 친일하여 배를 불리고 해방 후에도 교묘히 신분을 세탁하여 지도층 위치에 있는 염석진이기 때문에 제거되어야 했다. 친일 매국노 염석진을 정조준 사살하는 안옥윤을 통해 관객들은 정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실감한다. ‘친일을 향한 한 방 총성’이 관객들에게 통쾌감이 불러일으킨다. 영화 흥행의 가장 큰 요소가 아닐까. 물론 이 영화는 역사 시대물이라 영화미술이 중요하다. 의상에 대한 완벽한 재현이며 고증을 통한 세트 제작 등이 영화의 완성도에 한 몫을 했다. 스타 캐스팅과 더불어 흥행 요소 중 하나였다.
<암살>은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중국의 10대 세트장인 상하이 처둔, 셩창, 라오싱 세트장에서 한 달여간 24회 차의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해 시대의 리얼리티를 담아냈다”고 한다. “명치정(명동)에 위치한 미츠코시 백화점(현재 신세계백화점 위치) 및 경성거리는 처둔 세트장에 마련되었고, 현지에서 약 3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한국과 중국의 스태프 약 300여 명, 보조출연자 4,000여 명이 총 동원되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담당하는 미츠코시 백화점은 3층 규모의 건물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한 개 층을 더해 당시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여 경성우편국, 조선상업은행, 조선저축은행 등 주변 거리의 건물들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해 1933년 화려했던 경성의 거리를 표현해냈다.”고 한다.
인물의 캐릭터가 영화를 이끌어
그러나 이 같은 영화 미장센을 위한 노력과는 별개로 영화의 전개는 분절적 구성이 회오리치듯 종점으로 치달아 전통적인 기승전결의 의미에 충실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스토리라인 위주라기보다는 인물의 캐릭터가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안옥윤(전지현), 그녀는 친일재벌 강인국(이경영)의 쌍둥이 딸로 동생을 죽이고 아버지를 죽게 만드는 기구한 운명의 여성이다. 종국에는 이중첩자 염석진(이정재)를 암살하는 역할을 한다. 염석진은 김구의 신임을 받는 독립군 경무국 대장이지만 실지로는 일본과 내통하는 첩자이다. 입신출세를 위해 동지간의 의리, 보스에 대한 충성심,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배신형 인물이다. 그 외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항일무장투사 등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친일, 녹쓴 포탄의 뇌관
이 영화를 관객 동원 1천 3백만으로 육박하게 만든 이유 역시 친일 반역자에 대한 정당한 응징에 관객들이 공감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외국의 세력에 의해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광복 이후 국가 재건 과정에서 친일 잔존 세력 다수가 지도층에 그대로 유입된 사실이 있다. 해방 이후는 좌우가 극심한 대립을 보이고 남북이 분단된 현실 속에서 6.25 동족 전쟁을 겪었다. 친일 세력 잔존 문제는 우리 사회와 역사의 현실이며 잠재된 숨은 뇌관이다. 이 덮기 어려운 ‘녹슨 포탄의 뇌관’을 영화는 다시 건드렸다. 허구의 영화지만 영화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것이 대중의 심리다.
두 편 모두 상업 영화의 코드를 가지고 있어 역사적 사실에 엄격하거나 현실에 기초한 사건들은 아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상상력에만 의존한 황당한 공상과학 영화는 더욱더 아니다. <베테랑>은 우리 사회 재벌의 문제점, 재벌 3세의 부도덕성을 짚고 있다. 종종 신문 지상에서 접하는 얘기가 영화화되었다. <암살>에서 다룬 친일 매국노 문제도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바다. 두 영화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정의(正義), 한 단어로 요약된다. 상업적인 감독이라 할지라도 감독은 메시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감독의 임무 중 하나이며 감독이 존중받아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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