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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없애고 여름 방학을 늘려야 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8월23일 19시3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0시23분

작성자

  • 이달곤
  • 前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前행정안전부 장관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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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겨울방학 없애고 여름 방학을 늘려야 한다.

 

 대학방학은 교실학습에서 벗어나 휴식을 통하여 학습 피로를 씻어내고, 다음 학기 학습의욕을 높이는 방안으로 고대로부터 있어왔다. 근자에 와서 봉사, 체험, 여행, 놀이, 아르바이트 등의 활동이 추가되었지만, 역시 재충전을 위한 휴식이 기본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 휴식의 의미가 다르다. 육체노동을 하는 경우가 줄어들었고, 수업이 없는 날은 물론이고 휴일 수가 늘어나면서 고전적 방학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사실 에너지가 가장 충만하고 호기심이 최고조로 발동하는 대학시절에 수동적 휴식은 큰 의미가 없다. 기술은 물론 경제사회가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젊은이의 생활리듬은 일과 휴식이 동기화되고 있다. 

 

    공부에만 함몰된 대학생활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중고등학교 연장선상에서 필기시험에 매달린다. 개념과 이론을 암기하고 추상화된 문제에 대해 정답을 만들어내려는 필기시험이 대학생활을 지해한다. 최근,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장학재단의 장학생 수백명을 선발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40년 전과 꼭 같이 비현실적인 공부세계(工夫世界)에만 함몰되어 있음을 보았다. 마치 고급 논문을 찍어내는 기계가 되는 것을 꿈(dream)으로 생각하는 학생이 전부였다. 그러면 세상의 승자가 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판에 박은 소개서를 암기하여 자기를 소개하고, 보고 듣지도 못한 서양 학자를 구세주인양 인용할 때는 어이가 없었다.

  우리사회의 문제 중의 하나는 현장형 인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장형 인물이란 사물이나 운동지향적인 사람으로서 건설, 재배, 기계조종, 의료기술, 발굴 등에 종사하는 사람을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실천적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현실문제의 해결책에 매달리는 현실 숙지형 인간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화된 개념이나 관념에 치우치는 사유형 인간과 대비되는 유형이다. 이들은 공리공론을 멀리하고 이념적이고 파쟁적인 논쟁을 거부한다. 구체성 있는 문제의식으로 현실의 절박함을 피부로 느끼는 인재들이다. 창의성도 현장에서 나온다. 그래서 그들은 더 창의적일 수 있다.

   교육도 우리의 당면 현실과 필요가 제대로 파악되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토론되어야 한 단계 진화할 수 있다. 일반화된 교과서 중심의 수업을 줄이고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실천적인 현실기반 수업으로 대체하여 나가야 한다. 행정부나 사법부에 근무하는 책상머리 공직자들의 현실인식 수준이 너무나 애매하고 가변적이라는 것은 한두번 지적되는 일이 아니다. 엘리트들이 일머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책상머리에 매달려 있는 사회에서는 위기대응은 물론이고 매사에 높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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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 구조조정으로 현실에 문을 열자

  이글에서는, 대학의 방학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청년들의 생활패턴을 변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보다 현실숙지형의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 현재 대부분의 대학은 2학기제를 운용하고 있다. 법정 수업일수를 맞추고 나면 여름과 겨울방학이 각각 60일 정도다. 이  둘을 한데 모아 120일간 연이어 쓸 때 할 수 있는 일의 종류와 성격은 60일일 때와는 매우 다를 것이다. 5월말부터 9월말까지 120일을 방학으로 만들게 되면 우선 대학교수와 학생의 삶의 리듬이 바뀔 것이다. 긴 기간을 보다 계획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뭔가 한 학기에 육박하는 큰 의미를 갖는 일을 찾을 것이다. 

  학생을 어떨까? 봉사를 하더라도 보다 진하게 달려들 것이다. 해외봉사나 인턴십도 제대로 할 수 있을 시간이 나온다. 커피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단순 서비스에서 나아가 장사수완에까지 관심을 가질 시간이 될 것이다. 창업과 같은 더 높은 곳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소위 사회물을 좀 더 진하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학생도 현실이 얼마나 빡빡하고 무거운지를 알아야 공부에 대한 의지에 농도를 더할 수 있다. 사는데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나름 눈을 떠야 한다. 수업시간에 현실을 바탕으로 한 토론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상호토론이 되고 언론을 읽을 수 있는 지혜가 나오고 각기 다른 주장의 장단점을 분석할 힘이 생긴다. 이런 학생생활의 변화는 사회 관련부분에 약간씩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여름철에 다양한 일자리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교수는 어떨까? 강의에서 해방되어 좀은 깊은 곳을 찾아서 배회할 것이다. 의문은 창조의 출발점이다. 학회 한두번, 단기 현지답사 가는 것으로 만족하기 않고 근원적인 사회.경제적 수요를 체득함으로써 연구비를 확보하고 사회필요에 부합하는 강의와 연구로 자신의 좌표를 옮길 개연성이 높아질 것이다. 따라가는 것은 물론 간격을 줄여서 추격해도(catch-up) 이제는 별 소용이 없다. 앞에 나서서(head ahead) 창의적인 성과를 내지 않는 사람은 2류로 분류되는 것이 최근의 한국사회다. 이젠 양(量)으로 승부하지 말고 질(質)로서 승부해야 한다. 논문 몇편이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오래가는 논문인가가 중요하다. 4개월의 ‘방학’은 고난도 연구에 도전하게 할 것이다.   

  현실연구는 먼저 교수가 현실을 정면 도전하는 데서 출발한다. 현실과 노동하여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묵직한 현실에 기초한 교재가 만들어진다. 역사교수는 뗏목을 만들어 타고 바다를 헤엄쳐봐야 고대민족의 이동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의 문화재 발굴과 보전에 앞장서고 있는 자히 하와스(Zahi Hawass)박사의 얼굴은 항상 검붉게 타있다. 현장형 역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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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제도의 활착 환경을 조성해야

  졸업후 11개월 이상의 준비 후에야 겨우 취업이 되고, 또 30대 미만의 젊은이 중에서 63.3%가 첫 직장을 가진지 1년3개월만에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이 좀 더 빨리 현실을 파악하고 자신이 잘 적응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대학 때부터 현실의 복잡함과 엄중함을 체득하게 하여야 한다. 

 이들을 좀 더 강력하게 여름방학 중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각종 시험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필기시험으로 판정나는 인재등용방식으로서는 현장형 인간의 육성은 어렵다. 연간 약 8억달러는 쓰는 영어과외에서 과연 얻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 영어가 필요하지 않는 직장에서까지 토플점수가 왜 필요한가? 청탁 때문이라면 선발의 투명성을 다른 방법으로 높여야 한다. 또 사찰에서, 2평짜리 고시원에서 각종 필기 고시를 준비하는 관행은 바꾸어야 한다. 필기시험을 바꾸고, 평가의 부정과 비리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려면 평가자부터 먼저 현실에 부닥쳐야 한다. 

  현실 문제를 푸는 방법론을 중시되는 문화를 조성하여야 한다.  현장형 인간들이 나와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더 높은 명예가 부여되어야 한다. 대학 시절이 중고등학교와 같이 사회의 절박한 현실과 격리된 유리탑(遊離塔)에서 보내진다면 현실 타개의 개인역량을 구축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세상의 문제를 혁신하는 창조적 계급(創造的 階級)이 부족한 것은 바로 칠판중심의 대학교육에 기인한다. 일을 숙달함으로써 도달하는 달인(達人)의 경지도 현실과 괴리되어서는 어렵다. 사회적 혁신역량을 축적하는 곳은 바로 현장이고 현장의 무게를 더 키우는 것이 우리에게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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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0시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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