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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 성장론의 문제점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3월19일 20시1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59분

작성자

  • 박정수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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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득주도 성장론의 문제점

 

  지난 2년간 정부의 경제활성화 대책이 좀처럼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정치권은 새로운 돌파구로서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소득주도 성장론을 연일 거론하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정부는 최저임금의 파격 인상을 예고하는 한편 기업들에게 임금인상을 통한 경제활성화를 촉구하고 있다. 모처럼 정치권과 정부가 한 목소리로 대책을 내 놓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득증대를 통해 경기침체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소득주도로 성장을 이룬다는 주장은 비교적 생소한 가설이다. 이는 최근 2013년 국제노동기구 (ILO) "Minimum wage policies to boost inclusive growth" 보고서에서 주장된 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포용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인데 임금상승이 소비를 진작시켜 총수요를 유도하고 이는 다시 투자를 촉진시켜 고용과 성장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또 한편으로 최저임금인상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산업구조가 이행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임금상승 부담을 상쇄시키는 노동생산성 제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을 위한 지식기반기술 훈련기회 확대, 평생교육, 직업교육, 재훈련 등의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최근 미국, 일본, 독일 등지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중요한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점도 이 가설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이 경기부양과 성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하는 기대에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기업생태계 측면에서 미국, 일본, 독일 등의 경우와 우리나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이 미치는 영향이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용기준으로 중소기업이 87%를 차지해 경제에서 중소기업의 근로자 비중이 비교 선진국의 경우보다 크게 높은 편이지만 (미국 49%, 일본 76%, 독일 69%) 중소기업의 평균적 기업성과는 모든 면에서 대기업에 유의하게 뒤떨어지고 있어 이미 중요한 사회경제적 이슈가 되어 있다. 한편 최저임금위원회 「임금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도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는 1705만명(2014년도에는 1773만명)이고 최저임금 수혜근로자는 234만명 (2014년도에는 256만명)이다. 아울러 통계청의 2012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그 중 49.6%가 5인 미만 사업체에, 71.1%가 10인 미만 사업체에, 95%가 100인 미만 사업체에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저임금 근로자의 분포도 이러한 분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즉, 대부분의 최저임금 및 저임금 근로자들은 영세규모의 사업체 또는 소기업에 속해 있으므로 결국 최저임금 및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 인상은 수익성이 낮고 충격흡수여력이 없는 이들 영세 및 소기업들에게 큰 타격이 될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저소득층의 임금인상으로 전체소비가 증가한다 하더라도 임금인상의 충격을 상대적으로 더 받을 소기업에게 소비진작의 혜택이 비례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미 심각한 수준의 대·중소기업간 성과의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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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일부 학자들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많은 유보이익을 쌓기만 하고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임금으로 나누어 주면 (또는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면) 소비가 늘어나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에 관한 규모별 통계를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에 논리적 근거가 약함을 알 수 있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 자료에 의하면 2002년~2013년간 제조업 분야 대기업의 총자산이익률은 평균 6.18%로서 3.02%인 중소기업에 비해 높은 편이다. 영업이익률을 보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 상황에서 임금인상이 기업 규모에 따라 각각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자명하다. 대기업의 경우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이고 고소득자들은 소비성향이 낮으므로 이들에 대한 임금인상은 전체소비에 유의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기 어렵다. 한편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수익성이 현저히 낮으므로 임금인상 요인이 있으면 수익성 악화와 더불어 기업의 도산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고용측면에서 중소기업의 비중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중소기업실적의 악화와 도산은 고용감소와 실업률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총량지표에만 의존하여 추론하고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이러한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으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임금인상이 규모별, 산업별로 기업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셋째, 임금인상이 성장을 주도한다는 연구는 매우 드물며 그 논리적 연결고리가 제대로 입증된 바가 없다. ILO의 분석도 다수의 희망섞인 가정에 의존하고 있고 심지어 ILO 보고서가 근거로 제시한 세계은행의 연구논문(Del Carpio, Nguyen, and Wang, 2012)에서조차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유의하게 감소시키는 악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ILO 주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임금 인상이 소득을 끌어올려 총수요를 늘린다는 면은 강조하고 있지만 총공급에 미치는 영향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임금인상으로 압박을 받을 기업들이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려 다양한 훈련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이라는 다소 희망적인 가정을 하고 있다. 보다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임금인상으로 기업들은 경쟁력 약화 및 수익성 악화를 경험할 것이며 이는 투자감소로 이어져 고용과 노동생산성 증가가 둔화될 것이다. 또한 기업들에게는 명백한 생산비용 증가요인이 되므로 이익이 줄어 적자기업들이 많아질 것이고 이들이 생산을 중단하면 공급이 줄 것이므로 고용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수출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글로벌시장에서의 경쟁 때문에 생산비용 증가를 상품가격에 전가시킬 여력이 적어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공급측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이와 같은 여러 주요 요인들을 ILO나 관련연구들은 무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공급측 요인들을 제대로 감안한다면 물가만 오르고 경기는 오히려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수익성 악화로 다수의 영세 및 소기업의 도산이 현실화된다면 고용에 부정적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처럼 이론과 실증이 불확실한 주장을 근거로 정책을 입안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본다. 

 

  넷째,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임금증가율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에 미치지 못해 왔기 때문에 기업들에게는 임금을 인상할 여력이 있고 또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통계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통계청의 「광업제조업조사」 자료는 10인 이상 사업체에 대한 전수조사이기 때문에 그 어떤 표본조사보다도 신뢰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생산성본부가 분석한 통계청의 「광업제조업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0-2012 기간 동안 제조업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연간 3.4% (중소제조업체는 3.1%, 대기업은 4.3%) 오른 반면 실질노동생산성 증가율은 3.5% (중소제조업체는 3%, 대기업은 4.7%) 이어서 임금상승이 노동생산성 증가에 비해 크게 낮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생산성증가에 비해 임금상승률이 낮았던 미국의 경우와는 많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상황에서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더 높아지지 않고 임금인상을 우선 단행한다면 기업들의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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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위기 이후 기간을 보더라도 2008-2012 기간 동안 제조업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연간 3.4% (중소제조업체는 3.4%, 대기업은 3.4%) 오른 반면 전체 실질노동생산성 증가율은 5.1% (중소제조업체는 3.8%, 대기업은 6.3%) 올랐다. 전체적으로 임금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증가율에 못 미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격차가 중소제조업체보다는 대기업에서 오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시 얘기해서 임금인상을 요구한다면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에게는 노동생산성 증가 이상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되어 부담이 될 것이고, 대기업의 경우 고소득자가 많기 때문에 임금주도 성장의 근거가 되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의 경우를 좀 더 살펴보면 이들은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기술집약적, 자본집약적인 산업에 주로 분포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투자를 먼저 해서 경쟁력을 높인 후 생산성이 오르면 장기 추세적으로 노동생산성 증가에 걸맞는 수준의 임금 인상을 하는 것으로 본다. 이는 2000-2012년 기간동안 대기업의 실질임금증가와 실질노동생산성 증가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점에서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임금 인상은 대기업에게 글로벌 경쟁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투자여력을 줄여 경쟁력약화와 장기적으로는 근로자들의 임금상승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갖춰진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국내 임금 상승에 대응하여 저임금이 가능한 해외공장생산을 늘리거나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국내노동을 대체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기 때문에 국내 고용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처럼 임금인상을 통한 경기부양과 소득주도형 성장의 근거는 약하다. 저소득계층의 임금을 올리려는 이유가 빈곤퇴치와 소득분배 개선에 있다면 고려해 볼 수 있는 수단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만약 성장을 견인하려는데 그 이유가 있다면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저소득계층의 소득개선이 필요하다면 기업에 부담을 주기보다는 근로장려세제 확대, 실업보험급여 확대 등 정부정책에 의한 저소득층 배려가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재정적자가 신경이 쓰이지만 아직 국가부채의 절대적 수준이 위험한 수준에 달하지 않았으므로 한시적으로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지속성장과 고용창출은 투자와 경제활성화를 유도하는 규제개혁과 혁신역량 및 노동생산성 제고를 위한 구조개혁이 반드시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의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본 글은 박정수교수가 쓴 2015년 3월11일자 국민일보 경제시평의 내용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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