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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日 공세 누그러뜨린 8‧15 경축사… 그 후속 대응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8월18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19년08월19일 13시33분

작성자

  • 조용래
  • 광주대학교 초빙교수, 前 국민일보 편집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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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가장 먼저 뜨겁게 반응한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16일 아침 마치 남한에 시위하듯 동해상으로 미사일을 또 발사했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막말 담화를 앞세워 경축사를 조롱했다. 도를 넘는 북한의 무례는 각별한 대응이 필요하겠다. 다만 이 글은 이번 경축사에서 거론된 한‧일 관계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향후 과제를 제기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에 북한 관련 이슈는 논외로 한다.

 

문 대통령, 일본을 향한 공세 누그러뜨려

 

  일본의 반응도 특별했다. 광복절 경축사는 매년 벌어지는 연례행사의 한 대목이지만 올해는 여느 때보다 일본의 관심이 높았다. 일본의 모든 매체들은 앞 다퉈 문 대통령의 경축사 내용을 보도했다. 마이니치, 요미우리, 일본경제신문 등은 16일자 조간 사설에서도 경축사를 다뤘다. 7월 4일부터 공식화된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이후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만큼 일본으로서도 문 대통령의 공식 메시지에 대한 관심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문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가 아닐까 싶다. 해방 직후인 1946년, 모더니즘 시인 김기림이 쓴 ‘새 나라 송(頌)’에 나오는 그 구절이 경축사에서 여러 번 거론됐다. 광복을 맞아 새 나라를 꿈꿨던 시인의 마음을 빌려와 다짐하면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라는 일본의 압박을 은근하게 꼬집은 것이다.

  무척 세련된 비난이다. 강공세 일변도의 대일 비판에서 벗어나 비난 수위를 낮추며 시구(詩句)를 들먹이며 의지를 다지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한‧일 관계를 지혜롭게 관리해 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를 바 없다. 특히 세 가지 신선한 시각이 돋보인다. 첫째는 광복의 의미다. 8‧15 광복은 한국만의 기쁜 날이 아니라 “일본 국민들 역시 군국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나 침략전쟁에서 해방”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국의 광복과 일본의 패전이 한 뿌리의 역사임을 분명히 했다.

  둘째로 양국의 협력 경험을 거론한 점이다. 식민지 지배로 인한 피해에 대해 전후 일본 정부가 그간 나름 협력해왔음을 인정한 것도 이전과는 다른 접근이다. “일본과 안전‧경제협력을 지속”해왔고 “일본과 함께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하고자 했고~”라는 연설은 일본과의 협력의 역사를 강조한 것이며 앞으로도 그 협력은 유효하다는 선언이다.

  셋째로 한‧일 양국이 협력해온 구체적인 실체로서 양국 간 국제 분업체제가 존재한다고 거론한 대목이다. “일본 경제도 자유무역의 질서 속에서 분업을 이루며 발전”했던 만큼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지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며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이는 곧 한‧일 양국이 협력을 앞세우며 공동번영을 위해 함께 손을 잡자는 문 대통령의 제안으로 이어졌다.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드러나지 않아

 

  이로써 7월부터 본격화됐던 한‧일 간 최악의 갈등사태는 새로운 변곡점에 이르게 됐다. 문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 일본의 주요 미디어들도 ‘지금이야말로 냉정한 대응을’(일본경제신문 사설), ‘억제된 자세 유지를’(마이니치신문 사설) 등으로 한층 톤 다운된 문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도 ‘온건한 메시지’에 대한 인상을 피력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현재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한‧일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인 현안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얘기가 없었다. 아쉬운 대목이다. 강제징용자 배상판결의 실행과 맞물려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배상금 현금화 문제를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관련한 화해‧나눔재단 해산 이후의 대응 등에 대해서도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일본 미디어들로부터 문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 ‘관계 수복의 구체적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요미우리신문 사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실 한국에서 ‘8.15 경축사’가 갖는 상징적 의미에서 본다면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이 빠졌다는 주장은 어울리지 않은 지적이다. 큰 그림을 그리는 자리에 세밀한 그림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결국 이 문제는 경축사 이후 문 정부가 취해야 할 후속조치와 관계된 문제일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對日 인식에 새바람 일으켜

 

  문 대통령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원색적인 비난을 자제하고 이웃나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를 강조한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최악의 대립사태를 막고 무슨 일이든 미래를 위한 협력을 염두에 두고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태도는 고무적이다. 서로 적대적 비난에서 벗어나 어떻든 마주 앉아 제3의 길을 모색하자는 것은 그 자체로 나무랄 데가 없다.

  대화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과 더불어 본질적으로 일본 문제와 관련해 이제는 새로운 대응체제를 차분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자연스럽게 제기된 일본관련 이슈에 대한 인식의 환기(喚起)는 문 정부의 향후 대일정책과 관련해 대단히 의미 있는 방향을 시사하고 있다. 이하에서 네 가지로 요약되는 인식의 환기 과제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수출규제 조치 이후 한‧일 갈등문제가 국제화됨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징용자문제가 국제이슈로 부각됐다는 점이다. 위안부 문제가 흔한 식민지 지배‧피지배의 문제에서 벗어나 인권의 문제, 인륜의 문제로 부상됐던 것처럼 강제징용 문제가 역사의 그늘로서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강제징용 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문 정부는 그 해법과 관련해서도 사법의 결정에만 미루지 말고 보편적인 가치구현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인권 훼손의 문제는 책임소재를 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선제적 대응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정부가 먼저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얘기이다.

  둘째로 부품‧소재의 대일 의존성 심화 문제에 대한 인식의 환기다. 부품‧소재 대일 의존성 문제는 개발연대 이후 한국 경제가 오랫동안 미뤄둔 숙제였다. 그간 끊임없이 개선을 시도해왔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언제든 공급이 가능하고 가성비가 좋은 일본의 부품‧소재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 문제를 뒤로 미뤄둘 수 없다는 인식이 뿌리내렸다. 시간과 자본과 인력개발의 문제 등 복합적인 대응이 요청되는 만큼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65년 한일 기본조약 논란’ 극복의 길로

 

  셋째로 1965년 체결한 한‧일 기본조약 및 4개의 부속 협정에 대한 인식의 환기이다. 대법원의 징용자 배상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가 가장 크게 반발하면서 제기한 것은 국제법 준수였다. 그 국제법이란 65년 기본조약과 부속 협정을 의미하는데 특히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청구권 협정 제2조 조항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65년 기본조약 및 부속 협정과 그를 통해 구축된 한‧일 관계(이른바 ‘65년 체제’)는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이 전혀 거론되지 않았고 조약과 협정 그 어느 곳에도 식민지 지배와 관련한 배상이나 보상이란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일본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붙잡고 있는 국제법이 이토록 한계가 분명하다면 65년 체제의 수정은 불가피하다.

  국가 간 조약이 국내법에 저촉되어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막기 위해 마련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이 공식적으로 채택된 것은 69년이다. 당연히 65년 기본조약은 비엔나협약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법리적으로 비엔나협약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에 기본조약을 수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65 체제의 수정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호응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문제다.

  한국사회의 인권 및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의식은 60년대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 발전해왔다. 무엇보다도 시민사회의 민주주의 의식은 적극적이고 자율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치’에 합당한 선택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성장해오고 있다. 65체제의 수정은 한국 시민사회의 가치기준에 부응하는 것이다. 다만 이를 수출규제를 계기로 일본 정부가 인식 환기의 물꼬를 터줬을 뿐이라는 얘기다.

  수출규제 조치를 계기로 일본이 제기하고 있는 ‘국제법 위반’이란 딱지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문 정부는 이를 위해 적극적인 모색을 시도해야 한다. 구체적인 전문가를 포함한 민관 합동의 대안 수렴이 필요하다. 65년 법제를 전면 폐기할 것인지, 아니면 일부 수정할 것인지, 기존 틀 내에서 해석상의 조율을 꾀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따져보고 그에 상응한 전략적 대응을 구축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위해서도 일본 활용을

 

  넷째로, 일본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 질문도 제기되고 있다. 아예 관계를 단절하고 대립으로 일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관계를 구축할 것인가. 적대인가 협력인가. 불만이 들끓고 고민은 깊어지지만 지정학적인 위상을 감안한다면 일본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문제다. 문 정부가 강조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관철 차원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해서는 독일 재통일 과정에서 취했던 구 서독의 동방정책이 시사하는 바 크다.

  60년대 구 서독은 통일 독일을 꿈꾸며 내놨던 동방정책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 동독을 인정하고, 구 소련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세계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독일의 재통일이 또 다시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주변국에 대한 접근을 통한 협력 노력이 결국 빛을 발해 통일을 이뤘다.

  한국도 큰 틀에서 보자면 구 서독의 처지와 그리 다르지 않다. 남북 관계 개선도 중요하고, 북한을 지지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안는 노력과 함께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절대적인 과제다. 미국과는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일본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해서는 더욱 각별하게 다져놔야 할 대상이다.

 

문 정부의 실천과 국민의 협력이 절실

 

  일본을 활용하되 격조 있는 대응이 요청된다. 탈냉전 이후 한국에서 일본에 대한 평가는 급격하게 왜소화됐다. 일본의 장기불황과 상대적으로 한국경제의 부상이 그 배경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의 일본에 대한 연구와 연구자들은 크게 줄어들었다. 탈냉전 이후 일본에 대한 별칭이었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따지고 보면 ‘한국의 잃어버린 일본연구 20년’이나 다름없다. 현재 일본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문 정부는 앞으로 부품‧소재산업 육성을 위해 수 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연히 기초과학 육성을 위한 노력과 지원은 꼭 필요하다. 다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일본을 바로 읽고 그들의 의도와 생각을 판단하고 분석할 인력의 존재 유무다. 일반에 만연돼 있는 스테레오타입의 일본관만으로는 일본을 활용하는 전략을 마련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를 꿈꾼다고 했다. 그 시작은 주변 국가의 행보를 면밀하게 평가하고 그에 상응한 대응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을 구축하는 데 있다. 올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자리이자 부족함을 채우겠다고 다짐하는 대국민 호소였다. 정부의 실천과 더불어 모두의 협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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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8월18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19년08월19일 13시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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