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전쟁, 참을 수 없는 정치의 가벼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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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전쟁이다. 정부가 그렇게 말하고 국민대부분이 그렇게 인식한다.한국과 일본 간의 무역전쟁이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한다. 반도체로 먹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의 산업이 치명적 타격을 당할 위기다. 국민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맞서고 있다.정부는 대대적인 국산부품소재 개발 지원계획을 내놓고 대통령은 다시는 일본에 지지않을 것이라고 비장한 각오를 다진다. 경제전쟁을 넘어선 차원이다. 과연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다. 정작 일본과의 실력대결보다 내부에서 벌이고 있는 말싸움이 더 치열하다. 친일(親日)대 반일(反日)이다. 정치권이 이 내전(內戰)에 앞장서고 있고, 청와대도 그 전선에 서있다.<한일전>이 벌써부터 내년총선의 프레임으로 내정됐다 .민주당 전략연구소가 작성해 여당 소속의원들에게 돌리다가 유출된 비밀 리포트가 이 전쟁을 어떻게 보고 어디로 끌고 갈지의 방향을 드러냈다. 여권지지층을 모으는데 유리한 국면이고 결국 총선에 도움이 될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 ~하!! 그래서 였구나. 대통령이 이순신을 말하고 조국 수석이 죽창을 말하고 민주당에서 의병을 주장한 것이 “그런 거 였구나…!” 이런 의심이 들지 않겠는가. 이런 일련의 반일 흐름을 만드는데 목숨 바쳐 기록해온 항일(抗日)의 역사가 그렇게 쉽게 소환되고 일제 강제 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반대하면 모두 친일이 된다는 논리의 비약도 서슴치않는다.
국민들에게 힘을 모아달라고 말하면서 설마 그 모아진 힘을 선거에 쓰려는 것은 아니라 믿고 싶다. 그렇다면 정부는 모아지는 국민의 힘에 숟가락 하나 더 올리는 것 말고 어떤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일까? 외교, 안보, 경제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했다는데 국가의 위기관리능력을 제대로 보여 달라는 게 국민들의 요구요 바람일 것이다. 말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책임과 실력과 리더십으로 승부가 나는 일이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그 흔한 말을 되풀이 하는 건 당장 우리는 전쟁에서 이길 무기가 없다는 듯 들려 왠지 허망하다. 대통령은 남북 평화경제로 일본을 단숨에 이길 수 있다고 하는데 북한은 계속 미상의 발사체를 쏘아 올린다. 이 난감한 상황, 우리가 코너로 몰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오히려 내부로 일본과의 전쟁국면을 확장하고 그 속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국민들은 매일매일 벌어지는 말의 전쟁, 감정의 전쟁 속에 강제로 편입되고 사실상 우리끼리 총질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전쟁은 누군가를 속이는 정치라 하지 않는가.
실존철학자 하이데커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언어는 그것을 실현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 특히 말은 정치에 있어 실존 그 자체일 것이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저에 대한 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해서 황제를 죽였다”
시저를 암살한 부르투스가 로마의 시민들 앞에서 당당히 연설한다. 남을 속이든 설득하든 당시 정치의 언어는 수사학 (修辭學)의 최고 단계였다. 그리스 소피스트학파이래 그렇게 훈련돼 왔다. 그런데 지금 가장 위기적 실존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 정치의 언어 수준은 어떤가? 가장 저급한 단계의 수사를 보여 준다. 정당 대변인의 말조차 옮기기가 불편하다. 정치언어가 이렇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대변하는 본보기가 있었을까? 오염된 귀를 강물로 씻어내고 싶다. 그러나 우리 정치사에도 엄혹한 시절 리더의 메시지가 더욱 빛났던 때가 있었다. 군사정권에 의해 가택에 연금된 김영삼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말하며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결국 민주화의 새벽을 연 단초가 됐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일본의 바다에 수장될 뻔한 김대중은 ‘행동하는 양심’을 좌우명으로 지도자의 덕목은 말로만 키워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통찰한 김종필은 낭만의 정치를 보여주며 정면승부대신 ‘자의반 타의반’의 비껴서기 정치술을 전설로 남겼다. 언어가 바로 정치였다.
오늘의 정치판엔 정말 어떤 진지함도 인간다움도 없다. 오로지 악다구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시킨 그날 집권당 이해찬 대표가 하필 일식집에 가서 사께까지 마셨다는 그 무모함에 야당은 일제히 친일파가 따로 없다는 듯 비난한다. 청와대서 옷 벗고 나간 조국 교수는 예의 그 참을 수 없는 존재감으로 “그러면 전국의 일식집이 다 문 닫아야 하느냐”고 말해 대법판결에 반대하면 다 친일파라고 지적했던 그 논리와 한참이나 비교를 하게 만들었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모두다 코미디야!”라고 했던 그 말은 바로 이 상황에 딱이다. 헛 웃음이 나기도 하고 국민의 처지가 슬프기도 한 오늘의 ‘웃픈’정치다.
친일-반일 논란은 여당 싱크탱크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내년 총선의 핵심변수가 될 것이다. 정치, 외교, 안보, 경제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캠페인은 사실상 시작된 분위기다. 광화문엔 촛불이 밝혀지고 ‘노 재팬(No Japan)!’은 언제 다른 정치적 구호로 치환될지 모른다. 정작 나라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과 상황인식이 표(票)가 우선인 선거프레임에 묻혀 버린다면 정말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 것 일까하는 불길함을 떨칠 수가 없다. 그야말로 극일(克日)로 갈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치는 건 아닐까? 텅텅 비어있는 유니클로 매장의 모습에 우리 국민들의 힘은 참 대단 하구나를 느끼면서도 계산대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알바생의 쓸쓸한 그림자를 함께 봐야하는 것이 오늘의 풍경이다.
극일을 주장하는 자유한국당에 특히 바라고 싶다. 이 정권이 정말 못미더우면 일본을 이기는 나름의 대안을 내놓기 바란다. 국산소재 개발의 길을 찾는데 초당적 협력을 하고 일본과의 외교협상에서 정부가 못하는 일을 보수 정당차원에서 열심히 찾아보라. 누란에 처한 국가위기를 한국당 또한 내년 총선의 호재인양하고 문재인 정권을 욕하는 것 외에 어느 것 하나 내놓는 게 없다면 누가 표를 주겠는가? 여론조사에서도 전혀 반사이득 조차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지는 민심이 무엇인지 지금 읽지 못하면 한국당은 한일전의 최대 피해자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집권이 가능한 정당을 보여주는 기회다. 당이 먼저 변하고 개혁해야 국민에게도 정권에게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말의 유희는 본인들에겐 당장 달콤한 것 같아도 국민들에겐‘우리는 사실 실력이 없소’라는 자백으로 깊게 새겨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제1야당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이 심판대에 올려져있음을 알아야 한다.
결국 내년 총선은 정치가 내뱉은 말이, 정부의 호언장담(豪言壯談)이 무엇으로 남았는지를 확인하고 심판하는 무대다. 지금 같아선 누가 나라를 구했는지 보다는 누가 죄인이었는지를 가려내는 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 오늘도 말 폭탄이 터진다. 한일군사협정 (GSOMIA)를 폐기하자,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하자, 독도방어 훈련을 강화하자. 전술핵을 배치하자…. 말은 강할수록 실천이 어렵고 회복이 어려운 신뢰상실의 후폭풍으로 되돌아온다. 지금은 감정보다 믿음의 언어가 필요한 때다. 진실이 담긴 말은 힘이 세다. 국민들이 힘을 모아주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우리 모두가 이기는 전쟁을 해야한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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