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적 경제상황 탈출방안 반복, 경제 체질만 약화시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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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지는 잠재성장률 그대로 둔 채 단기 경기조절 정책 치중은 ‘부작용’만 초래해
최근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어 가는 모습이 완연해지고 있다. 경제 활력 저하에 대응한 방책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점차 현실화되는 듯하다. 지금 우리 경제의 현실은 실로 엄중하다 못해 난국이라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안타까운 것은 어려운 경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문제 해결 능력이 총체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정책 당국의 대응 능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책당국들은 단기 경기조절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정책 당국들로 하여금 경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끔 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중장기적 대응력을 약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반복적인 경기조절 정책은 경제 체질 약화와 구조적 문제의 누적 등을 통해 그 부작용이 효과보다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글을 통해 경기조절정책을 위주로 한 당국의 경제정책 기조를 획기적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최근 경제 상황을 개괄하면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판단된다. 근래 낮아진 경제성장률이 금년 들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금년 1/4 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마이너스 0.4%를 기록한 데 이어 2/4 분기에도 실제로는 마이너스에 머문 것으로 보인다. 2/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1.1%에 달하였지만 이는 재정지출을 확대한 데 주로 기인하였고 민간 부문의 상장 기여도는 마이너스 0.2%였다.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 종합지표인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017년 중반 이래 지속적으로 하락해오고 있다.
이에 더하여 최근에는 일본이 새로운 차원의 무역규제를 동원함으로써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기의 하강 국면 진입과 대외 여건 악화 등을 반영하여 한국은행은 7월 18일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인하하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와 동시에 금년도 경제전망도 수정하여 금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월의 2.5%에서 2.2%로 크게 낮췄다. 여기에는 일본과의 무역분쟁으로 인한 여파가 반영되지 않았는데 이 점을 감안하면 금년도 경제성장률은 더욱 낮아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최근의 경기 하강에 대응하여 통화 및 재정정책을 통해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정부도 한국은행에 앞서 일찍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경기 대응에만 그치는 것은 경제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현재의 상황에서 경기조절정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음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아래 그림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변화를 개념적으로 도식화한 것이다. 실제 경제성장률 궤적과 아울러 시기별 잠재성장률도 개략적으로 표시하였다. 이 그림이 시사하는 바는 실제 경제성장률이 낮아져왔으며, 그에 따라 잠재성장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는 사실이다. 특히 강조하여야 할 것은 2010년대 들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세계경제성장률에 비해 낮아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미중 무역분쟁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잠재성장률은 더욱 하락할 가능성이 크고 우리나라와 일본의 갈등이 잠재경제성장률을 더욱 하락시킬 것이라는 점도 표시하고 있다.
경제개발 이래 한 세대 이상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우리 경제가 규모의 확대, 내외 경제 여건의 변화 등으로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더라도 최근의 성장률 하락은 매우 이례적이고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필연이라 하겠다.
문제는 경제성장률이 속절없이 하락하는 과정에서 적합한 정책 수단을 개발 동원하지 못하고 통상적인 경기조절정책만을 반복하였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상황, 즉 잠재성장률이 극히 낮아진 상황에서 경기조절정책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경기조절정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은 평균적으로 잠재성장률 수준에 그칠 것이다. 가령 앞으로 잠재 경제성장률이 2% 내외라고 하면 현재와 같이 경기조절정책 위주로 대응한다면 우리 경제는 2% 성장에 그칠 것이다. 우리는 이 수준의 경제성장률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위 물음에 대한 답은 절대로 “아니다”일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정도의 경제성장률로는 고용문제 등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경기조절정책 위주의 경제정책은 우리 경제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절름발이 정책에 불과하다.
“이완적 통화정책 지속과 저금리 기조는 경제의 불확실성만 높였다”
논의의 핵심은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주요 정책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경제성장률을 세계경제성장률 수준이나 선진국 평균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 경제의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경제성장률이 그 이하에 그친다면 우리 경제가 상대적으로 퇴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역대 정권에서는 이와 관련한 정책과제를 제시하기는 하였다. 예를 들면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전략,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현 정부의 혁신성장 등이다. 문제는 이 정책들이 실효성 있게 추진된 적이 거의 없었고 대개의 경우 정치적 구호로 머물렀다는 점이다. 이 정책들은 정치권에 의해 제시되었지만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관료들은 막상 이 정책들을 진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연하면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잠재성장률을 제고하기 위한 방책이 시행되기는커녕 종합적·체계적으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것이 최근 경제성장률 하락의 근본 원인으로서 문제해결 능력의 약화에 해당한다.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적합한 방책을 시행하지 못한 채 경기조절정책을 반복하면서 우리 경제는 위축의 단계를 넘어서 수축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우리 경제의 적나라한 모습을 "involution"이라는 용어를 통해 좀 더 실감나게 설명하고자 한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경제성장은 Adam Smith 식 확장적 성장 국면으로 이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경제성장은 확장적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퇴행적으로 수축하는 경제도 있기 마련이다. 후자의 경제성장 모습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 ‘involution’(안으로 말림)이라는 말이 사용될 수 있다. 이 말이 이론적으로 흔히 쓰였던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 경제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나타내는 용어일지도 모르겠다.
involution은 생물이나 유기체 등이 안으로 말려들어 퇴화하거나 쇠퇴하는 과정이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경제 이론적 측면에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미국의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 (Clifford James Geertz) 라는 사람이다. 그는 인도네시아 농촌의 퇴행적 성장 모습을 묘사하는데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16세기 인도네시아를 식민지화한 네덜란드는 약탈적인 경제정책을 시행하였는데 이에 대한 인도네시아 농촌의 대응방식이 문제였다.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은 여러 모로 바람직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경제성장 기회가 생겼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새로운 무역 통로가 개설된 데다 설탕 고무 등 새로운 작물과 품목의 등장이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활용한 지역, 예컨대 보르네오 지역은 경제성장을 구가한 반면, 자신들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자바지역 농촌은 삶의 질이 더욱 궁핍해졌다. involution은 자바 지역 농촌의 궁핍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자바 지역은 논을 활용한 쌀농사가 발달한 지역이었다. 당시 자바 지역 농촌에서는 식민 당국의 수탈에 대응하여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논농사에 더욱 집중하였다. 노동력 투입을 증가시키는 한편 논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총체적인 수확량은 증가시킬 수 있었으나 일인당 수확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당시 해당지역 농촌이 궁핍해지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현대적 개념의 경제 용어로 설명하면 생산요소의 투입이 늘어났지만 한계생산체감의 법칙에 의해 일인당 생산이 줄고 소비도 감소하면서 경제가 점차 위축되었던 것이다. 생산 제품의 다양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생산요소에도 변동이 없는데다 기술마저도 정체된 반면 생산요소 투입을 위한 인구는 계속 늘어남에 따라 일인당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involution’이란 용어의 함의를 되새겨 볼 때
involution은 “경제 상황의 변화에 대해 적합하지 않은 방식을 반복적으로 적용하여 경제가 퇴보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따라서 involution은 퇴행적 경제성장 과정 정도로 번역하면 될 듯하다. 이 용어가 내포한 중요한 개념은 위축적 경제상황 만이 아니라 그 경제주체의 대응 방식이 적합하지 않아 경제 위축을 초래하거나 촉발한다는 사실이다. 이 개념은 비교경제학 등에서 왕조 말기의 경제상황이나 몰락하는 경제의 실상을 설명하는 데 차용하는 빈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요컨대 퇴행적 경제상황(involutionary growth)은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해왔음에도 경기조절 방식의 대응책만 반복한 우리나라의 최근 경험을 아주 잘 묘사하는 용어인 것이다.
사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하락은 이제까지의 경기조절식 경제정책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 하락에 대응한 확장적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이 그 부정적 효과가 점차 커지면서 경제성장률이 더욱 낮아지는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갈수록 확장적 경제정책의 강도를 높여나가야 하고 그에 따라 경제성장률은 더욱 낮아지는 악순환을 경계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먼저 통화정책의 효과와 부작용을 생각해보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 결정문에 의하면 201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통화정책 기조는 이완적이었다. 그럼에도 경제성장률은 낮아져왔다. 따라서 통화정책의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반면 그 부작용은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중반의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와 함께 추진한 이완적 통화정책은 근래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에서 이완적 통화정책의 부작용이 작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 국제경제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저금리 기조는 자금의 유출입을 증대시켜 우리 경제의 가변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재정정책도 확장적 기조를 이어왔다. 근래 통합재정수지가 흑자를 보이고 있지만 국민연금 등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 그리고 경기변동 효과를 제외한 구조적 재정수지 등은 지속적으로 적자를 보이고 있다. 이에 근거하면 재정정책은 확장적으로 운영되어 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재정정책의 기조를 확인할 수 있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사례를 살펴보면 근래에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과거 개발연대 당시 잡다한 재정지출 수요 및 요구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 문제를 시정하고자 재정 규율을 강화한 국가재정법을 제정하여 2007년부터 시행하였다. 그러나 근래로 들어올수록 재정 규율은 약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예가 경기 진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매년 되풀이되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추경 편성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으나 2010년대 들어서는 조그만 외생적 충격이 발생하면 으레 추경을 편성하는 식으로 대응하였다.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와 함께 반복되는 추경 편성이 결코 경제성장률을 높이지 못했다. 이와 같은 확장적 재정정책은 경기 조절에도 그 효과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경제체질 및 재정 규율의 약화 등의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내외 경제 여건이 변하는 경우 우리 경제의 취약점으로 작용할 공산이 없지 않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잠재력 제고’에 정책역량 집중이 ‘난국 극복의 길’
최근 들어 추가경정예산 편성에서 세계잉여금의 활용빈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세계잉여금은 국채 및 차입금의 상환 등에 우선 사용하도록 법에 명시했다. 그럼에도 2016년 이후 추경에서는 매해 세계잉여금을 활용하여 경기 진작 및 서민 생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는 데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에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과 같은 정책기조가 지속된다면 우리 경제는 퇴행적 국면을 벗어나기는커녕 그 정도가 점차 심화된다는 것이다. 즉 퇴행적 경제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제는 단기적인 경기 상황에는 대범하게 대처하는 한편 새로운 정책과제에 매진하도록 해야 한다. 단기적인 경기 조절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지금의 난국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로 여겨진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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