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남의 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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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e/Means의 1932년 공저 The Modern Corporation and Private Property를 읽은 적이 있다. 단순히 상장기업의 주식소유구조를 분석한 것으로 들었는데, Berle/Means가 이러한 분석을 근거로 제기한 문제점은 자본의 소유자인 주주가 일반대중으로 확대되면서 회사의 경영에 관한 권한을 경영자에게 빼앗겨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Marx의 노동자와 노동의 결과물간 소외에 관한 논의와 비교되며 대공황 이후의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를 논의함에 있어서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그리하여 “남의 돈”을 관리하는 경영자의 권한을 주주가 어떻게 통제할 것이며 경영자는 맡겨진 자본의 운용과 관련하여 주주 내지 사회전체에 어떠한 의무를 지는지에 관하여 법적인 또는 경제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으니 이것이 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논의이다. 공권력이 법으로 규율하는 정도 대비 주주간 계약인 정관에서 정할 수 있는 범위에 관하여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각국의 회사법이 기업의 지배구조 골격을 정하고 있다. 특정 지배구조 하에서 부과된 경영자의 주주에 대한 의무는 회사의 자본이 어떻게 운용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골격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사모펀드가 경영참여에 적극성을 띠면서 주주와 경영자간 관계를 정한 회사의 지배구조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것인지가 논의되고 있다. 우리도 최근에 엘리엇트와 삼성물산 창업자 내지 경영진 간 회사의 장래에 관한 이견을 목격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공적 연금의 주식운용부분이 점차 확대되면서 이들의 적정한 의결권 행사방안이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통제방안과 겹쳐서 더욱 복잡하다. 엘리엇트 사태는 외국의 투기적 자본과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토착기업간 자존심을 둘러싼 대결을 넘어서서 경영자는 누구의 어떤 이익을 위하여 회사에 맡겨진 자본을 운용하여야 하는가라는 대한민국의 자본주의에 관한 근본적 문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모든 경제현상을 외국 대 토착이라는 이분법으로 분석하는 현실을 벗어나서 자본주의와 기업에 관한 보다 일반적인 담론을 펼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작금의 경영자 대 사모펀드를 둘러싼 기업지배구조논쟁을 간단히 살펴본다.
주주 대 경영자 1: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
경영자와 주주간 관계는 회사법이 만들어지면서 발생한 것이므로 회사법 제정 이전의 민법상 위임계약이나 신탁계약 하에서의 법률관계가 준용되었다. 그리하여 영미에서는 일방 당사자가 타방 당사자의 결정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임관계(fiduciary)에서의 상당한 주의의무를 요구하였고 우리 회사법은 대륙법계 위임계약하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필요로 한다고 하지만 서로 법제가 뒤섞이면서 실질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 풀어 말하면 신중한 의사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기초로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진지한 토론을 거친 후에 회사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선의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경영진이 개개 결정에서 상당한 주의를 다하는지 여부보다도 회사 내부의 사전적인 정보보고시스템이나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회사의 위법행위나 부실회계로 인한 책임과 관련하여 시스템구축의 중요성이 더하여 지고 있다.
상당한 주의를 다한 범위 내에서 경영진에게 사후적인 결과책임을 물어서는 아니 되며 따라서 경영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사후적인 결과책임 존부 자체에 대한 논란을 배제하여 경영진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보험이나 책임감면특약이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 법원도 경영판단의 원칙에 따라서 경영진의 책임을 부인하고 있으며 회사법에서 책임면제 특약가능성을 인정하고 있고 실제 임원책임보험에 가입한 회사도 많이 있다. 문제는 경영판단의 원칙은 경영진과 회사간 이해상충이 있는 경우 적용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배주주가 지명한 이사가 지배주주와의 거래에 관한 결정을 하였다면 이는 경영판단의 원칙 적용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우리는 1997년 환란 이후 금융기관의 부실대출 관련하여 금융기관의 임직원 책임에 관하여 많은 판례를 만든 바 있으며 지배주주가 없는 민영화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경영진에게 경영판단의 원칙은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대규모기업집단내 관계사간 거래와는 무관하다. 흥미로운 것은 백여년의 회사법 역사를 가진 미국의 경우에도 주의의무를 위반한 이사회의 결정이라는 사후적 판단이 나온 예는 많지 않으며 전술한 바와 같이 주로 준법통제시스템의 구비 여부와 관련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주주 대 경영자 2: 충실의무
충실의무는 이해상충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회사에서의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전형적인 경우는 회사의 의사결정자인 경영진이 자기와 회사간 관계에 관하여 결정을 하는 경우이다. 경영진의 보수결정이나 회사와 이사간 거래가 그 예이다. 점차 이해상충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으며 우리 회사법도 자기거래를 대주주나 그의 특수관계인과의 거래까지 포괄하고 있다. 충실의무는 선관주의의무와는 달리 주주들에 의하여 면책될 수 없으며 임원보험의 대상도 아니다.
이해충돌 상황은 지극히 광범위하고 다양하며 따라서 이에 대한 규율도 다양하다. 가장 위험한 행위는 경영진이 할 수 없도록 하고 그 다음 행위는 경영진이 결정하되 이해상충의 당사자는 이사회에의 참석이나 토론을 금지하며 결정을 사후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승인받도록 할 수 있다. 가장 덜 위험한 행위는 경영진이 결정하되 주주총회에의 사후적 보고 정도로 그칠 수 있다. 투자자에 대한 공시는 또 다른 측면에서의 규율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회사법과 자본시장법이 택하고 있는 규율방식이다. 미국의 회사법은 구조적 이해상충까지 싸잡아 광범위하게 실질적으로 이사의 결정과정을 통제하는 반면 우리 회사법은 촌수와 주식소유비율을 근거로 예측가능한 그러나 형식적인 기준에 따른다. 우리 회사법은 절차적인 규율이 자세하지 않으며 그 기준이 회사의 상장여부, 자산액규모, 거래의 종류, 대규모기업집단 등 다양한 축에 따라서 복잡다지하고 시장에 대한 공시의무와의 통섭된 원칙이 없다. 따라서, 앞으로 입법부와 사법부의 많은 고민이 필요한 영역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충실의무는 각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최대한 추구할 것이라는 철학을 깔고 있는 바, 이는 개인은 모든 의사결정과 행동에 있어서 자신과 동시에 공동체의 이해관계도 고려하여야 한다는 우리 전통의 동양적 집단적 사고방식과 상반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그 이해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규제대상과 규제기관, 공익과 사익이 혼돈되면서 저축은행에서 시작하여 세월호까지 각종 재난이 발생하였고 개인들이 언제나 규범적으로만 행동하지는 아니한다는 현실이 부각되면서 이해상충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투자자 대 펀드: 계약
Clark이 1981년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창업가, 전문경영인, 자산관리사, 저축상담사의 시대로 나누었듯이 미국에서는 지난 세기 중반부터 상장기업의 주식에 대한 직접투자가 투자회사(mutual funds)를 통한 간접투자로 바뀌면서 자산관리산업이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주주구성에 있어서 개인보다 기관투자자, 연기금 최근에는 사모펀드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1945년 제정된 투자회사 및 투자자문사법이 포트폴리오 투자를 규율하는 법이다. 우리는 아직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지만 자산관리사업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투자신탁, 투자회사, 간접투자를 거쳐서 집합투자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변천을 거쳐서 법제도적으로 체계를 갖춘 것은 2007년 자본시장법 시행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펀드는 그 설립부터 판매, 운용, 환매에까지 광범위하게 법적으로 규율되지만 투자자와 펀드 간 계약관계가 근간을 이루며 따라서, 투자자와 펀드간 fiduciary 관계가 인정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투자업자가 투자자에게 신의성실의 의무, 투자자 이익 우선의 의무, 설명의무, 적합성 및 적정성의 원칙 등 법에서 정한 많은 의무를 지지만 이는 주주가 회사의 경영자에게 요구하는 선관주의의무나 충실의무와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투자자는 자신의 위험으로 투자결정을 내리는 것이며 그 결과는 계약으로 종결되므로 펀드를 운용하는 자는 계약이 정한 바에 따르면 되며 집합투자기구가 회사이고 따라서 투자자가 주주라고 하더라도 상법에서 정한 주주와 경영진간의 관계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경영자 대 펀드: 회사의 진정한 이익을 대변하는 자
주주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회사 경영진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결정은 원칙적으로 주주총회의 승인절차를 통하여 통제할 수 있다. 타 회사와의 합병이나 정관변경이 그 예이다. 이러한 대전제에 변화가 온 것은 미국에서 1980년대 부터였다. 무능한 경영진 때문에 주식이 저평가되는 상황에서 주주로부터 시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직접 주식을 매집하여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개매수제도가 도입되었고 그 이후 최근까지 의결권대리행사를 위한 위임장에의 접근권, 이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독립적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이사후보추천제도 등을 통하여 주주의 권한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회사법과 구 증권거래법의 개정을 통하여 주주가 이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을 가지게 되었고 사법부도 비교적 중립적인 견지에서 이를 뒷받침하여 왔다.
주주의 권한은 계속 확대되는 추세이지만 이에 대한 반대견해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으로 poison pill을 고안해서 기업의 기존 경영진을 지원한 Lipton은 펀드의 적극적인 주주행동주의가 과연 기업의 장기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고용증대와 기술혁신을 통한 국민경제발전에의 기여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도리어 투자자들의 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펀드는 단기적인 투자수익률에만 초점을 맞추어 투자대상을 고르기 때문에 경영진이 분기, 반기별 실적에만 연연하고 기업의 실적에 장기적인 도움을 가져 올 직원들에 대한 교육훈련비나 새로운 기술을 위한 연구개발비, 투자회임기간이 긴 자본적 지출 등에 인색하게 만든다고 한다. 미국의 SEC는 Lipton의 5% 주식취득신고기간을 단축하려는 제안은 무시하고 있지만 경영진의 보수를 보다 장기적인 기업성과에 연계되도록 노력하고 있고 사법부가 Household 판결에서 poison pill의 적법성을 지지하였고 Unocal 판결에서 이사회 결정의 적법성 심사기준으로 비례성과 합리성이라는 중간적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면에서 Lipton의 주장은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우리는 법무부가 poison pill의 도입을 고려하다가 중단하였고 경영권을 둘러싼 이사회의 결정에 대하여 사법부가 비교적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만 금감원이 임원보수산정방식에 관여하여 단기실적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
한가지 유의할 점은 미국에서의 과거 30년간 그리고 최근 적극적 사모펀드 때문에 다시 뜨거워진 주주와 이사회간 적정권한분배에 관한 논쟁은 미국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규모기업집단의 실태 그리고 상장기업의 주식소유구조를 고려하면 논쟁의 장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격한 독립성을 요구하고 있는 사외이사,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감사위훤회 등 이사회 차원에서의 접근방법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고 차라리 지배주주에 의하여 임명된 경영진들에게 엄격한 이해상충의 법리를 적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으로 짐작된다는 이유에서 앞으로 충실의무에 관한 보다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주주의 권리를 회사법에서 정하는 것 말고도 현실적으로 그 비용의 처리방법이나 권리행사의 전제가 되는 정보에 대한 접근가능성과 proxy access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주의 권리행사라는 이름으로 무조건적인 populism이나 정당한 회사의 경영진을 협박할 가능성도 또한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시장의 현실을 감안한 지혜로운 예지력이 필요한 어려운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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