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익률 위주 운용은 위험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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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부채관리를 상시화 체질화시켜야
국민연금기금(이하 기금)의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일까? 연금지급불능사태일 것이다. 기금은 자산과 부채의 양면성을 가진다. 머물러 있는 동안은 자산이지만 모두 되돌려주어야 할 부채이기 때문이다. 연금지급불능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지급해야 할 부채를 감안하여 자산을 운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러한 관리기법을 자산부채관리라고 한다. 자산부채관리는 기금운용의 대전제로 세계연기금 모두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 기금은 연금지급액보다 보험료납입액이 훨씬 크기 때문에 민감한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간격이 좁아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는 저 출산 고령화현상 때문이다.
기금운용의 지상과제는 장기안정수익을 확보하여 기금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데 두어야 한다. 연금지급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함으로써 기금가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기금규모의 팽창으로 국내외로 분산이 확대되고 있는 기금포트폴리오 위험관리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넋 놓고 건성건성 운용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기금의 징수 운용 지급이라는 연쇄 고리 전체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자산구성을 해나가야 한다. 기금운용의 축을 자산부채관리로 삼아 자산부채관리를 상시화 체질화시켜야 한다. 자산부채관리는 연금지급불능 리스크의 싹을 없애기 위한 근본처방이기 때문이다.
기금은 운용원칙으로 안정성 유동성 수익성 공공성 독립성을 열거하고 있다. 이는 기금특성을 감안한 원칙들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나무로 치면 안정성은 뿌리, 유동성은 줄기, 수익성은 가지이고, 공공성과 독립성은 나무가 뿌리내리는 토양이라고 할 수 있다. 기금은 안정성과 유동성이 확보되는 가운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여 오랫동안 안정적인 연금지급을 해나가야 하는 기금특징을 고려하면 그 순서가 맞다. 뿌리가 튼실하지 못하면 줄기도 빈약해지고 가지도 마른다. 안정성이 훼손되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기금의 단기수익률 저조현상이 이어지자 수익성을 앞세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초장기 기금으로서는 단기수익률은 큰 의미를 두기 어려운데도 말이다. 우리 특유의 조급증이 아닌지 모르겠다. 납입액이 훨씬 큰 지금은 공격적으로 운용할 때라는 주장도 가세하고 있다. 수익성추구에 매몰되면 안정성이 흔들릴 확률이 높아지고 유동성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기금은 우수한 단기실적보다 안정적인 장기실적이 훨씬 중요하다. 단기실적을 무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단기실적에 집착하지 말고 보험료징수부터 기금운용을 거쳐 연금지급까지, 기금 출발부터 마지막까지, 종횡을 가로질러 통으로 보고 기금을 운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금은 긴 안목의 장기 전략이 중요하지 날마다의 단기 실행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금운용을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수익성을 앞세워 운용하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나무를 땅에서 뽑아내 거꾸로 세우려는 꼴이라고나 할까.
기금운용 5원칙은 ‘안정성, 유동성, 수익성, 공공성, 독립성’
다섯 가지 기금운용원칙은 세계연기금 공통의 운용원칙이지만 기금마다 우선순위가 조금씩 다르다. 기금성격과 문화 역사적인 환경이 모두 다른 탓이다. 수익성위주 기금운용은 전 국민이 이해당사자인 기금특성상 위험하기도 하려니와 현재의 우리의 기금환경에서는 감당해낼 수 없다고 본다. 해외연기금들이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전문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로 감당할만하기 때문이다. 기금을 수익성위주로 공격적으로 운용하다 투자환경이 돌변하여 혹 그들처럼 연간 마이너스 30% 가까운 운용실적을 기록하게 되면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까?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기금이 연간 150조 원을 까먹었다고 해보라. 잘해보자고 한 일이니 내년을 기약하자고 조용히 넘어갈까?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민란이라도 일어나고 말 것이다. 국민연금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금운용 자체가 아예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면 안 된다. 허용 가능한 위험범위 내에서 투자해야 한다. 물론 시장상황은 늘 변하고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수도 있겠지만 매사 ‘빨리 빨리’를 외치는 우리나라의 기금가입자들이 참고 기다려줄까?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해대고 아수라장이 이어져 나라가 온통 혼란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공격적으로 운용한다고 결과가 생각처럼 될까? 오히려 반대로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시장여건이 급변하면 엄청난 규모 때문에 손쓸 재간 없이 옴짝달싹도 못하고 속수무책 당하는 수밖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익성위주로 운용하는 해외연기금들의 과거실적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더구나 작금의 국내외 투자환경은 엄혹하기 짝이 없다.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각국 모두 살얼음판이다. 유동성은 넘쳐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여 방향을 잡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더 나빠지지나 않을지 모두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기금을 공격적으로 운용하다 시장흐름이 거꾸로 뒤집히면 어떻게 될까? 쌓아올리는 것은 힘들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수익성위주로 기금을 운용하게 되면 감당키 어려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공짜는 없다. 부분에 집착하다가는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기금운용에 만용은 금물이다. 자신의 역량도 모르고 덤비다가는 대가를 치르고야 만다. 이길만한 싸움을 해야 한다. 그래도 힘든 싸움이다. 기금운용담당자들은 언제나 기금운용목적에서 한 치도 어긋나서는 안 된다. 원칙과 기본을 굳건히 지켜나가야 한다.
수익성확보에 눈이 멀어 기금을 공격적으로 운용하려는 것은 국민연금의 근본을 망각하는 일이다. 기금의 사회문화적인 환경과 기금가입자의 요구사항에서 항상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수익성을 앞세우다가 결과가 거꾸로 되면 어쩔 것인가. 깨진 그릇과 엎질러진 물을 되돌릴 수 있는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며 물어본들 무슨 소용이랴. 초장기 거대기금으로서는 그러한 성과우선주의가 초래할 수도 있는 위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감당할 수도 없는 결과를 자초해서는 안 될 일이다. 힘들게 쌓아올린 큰 둑과 공든 탑이 저절로 무너지는 법은 없다.
장기수익률 연 6.3%는 외국 연기금 5%보다 뛰어난 실적
요즘 부진한 기금운용수익률로 말들이 많지만 사실 초장기간 지속되는 기금으로서는 단기수익률은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장기수익률은 기금이 월등하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만 모르고 있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국민연금기금이 기록한 장기수익률(2000-2014년, 15년 연평균수익률) 6.3%는 5%대의 해외의 다른 연기금들과 비교하면 뛰어난 실적이다. 위험(수익변동성=평균수익률로부터의 표준편차) 또한 기금이 가장 낮다.(해외 10-15%대비 국민연금 3.8%) 요컨대 기금은 오랫동안 매우 안정적으로 탁월한 운용을 했다는 의미이다. 500조 원 기금 중 수익금만 200조 원이 넘는다. 장기간 복리효과를 누린 때문이다.
근년 들어 수익률이 부진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기금포트폴리오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채권의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하락추세를 기록해온데다 기금규모의 급속한 팽창으로 인한 희석효과가 겹친 탓이다. 그것이 큰 이유이다. 둘째는 포트폴리오 조정에 따른 위험자산 증가속도와 시장상황이 엇갈린 때문이다. 기금은 이미 10여 년 전에 장기수익률 저하추세를 예견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필자가 재직 중이던 2006년부터 시작해 지금도 진행 중인 포트폴리오 재편작업이 그것이다. 재편의 초점은 점진적인 국내외 위험자산의 투자확대다. 포트폴리오재편이 완성되려면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기금은 국내외로 위험자산비중을 서서히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기업투자가 수익실현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주식투자성과가 단기에 날 수 없는 근본이유이다. 주식투자자는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한다. 필자 경험으로는 주식투자로 큰 이익을 보려면 적어도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정도는 참고 견뎌야 한다. 주식투자자는 투자기업에 대한 신뢰가 남아있는 한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위험투자의 기본이다. 기금은 기다릴 수 있다.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거대기금의 수익률은 하루아침에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르내리는 주가가 극복되어 수익률에 반영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금의 단기성과를 따지는 것은 기금특성상 잘못된 접근이다. 비용만 늘어나 갈등만 키울 뿐이기 때문이다. 조급증이다. 더구나 성격도 모두 다른 세계연기금들과 단기성과로 줄 세우는 것은 아무 실익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해를 끼치기 쉽다. 비교는 경쟁을, 경쟁은 위험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비교평가는 자기만의 색깔을 잃게 만든다. 남들과 똑같이 하면 독창성을 죽임으로써 새로운 투자가치 창출을 막고 결국 장기안정수익확보를 해친다. 기금운용목적에 배치되는 것이다. 원칙과 기본을 지키며 기금운용목적에 충실한 운용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
사막에서 낙타가 멀리 가는 것은 천천히 걷기 때문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사퇴하게 되었다. 기금운용본부장 연임불가 판단에는 여러 다른 사정이 있었다지만 연간운용수익률 부진이 주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본부장이 새롭게 기금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것도 아니고 그는 단지 계주 달리기 선수처럼 바통을 이어 달려왔을 뿐인데 불과 2년간의 운용성과가 주요인이었다니 의아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짧은 본부장 재임기간 중에 본부장 홀로 수익률을 뒤집을 수는 없다. 기금운용은 본부장 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부장은 기금운용위원회의 결정사항을 집행하는 위치다. 누가 오더라도 마찬가지다. 시스템의 문제지 일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거대기금의 운용수익률은 전략적 자산배분을 여하히 하느냐에 달려있다. 기금운용성과의 98% 이상이 전략적 자산배분에 달려있다는 것이 세계 연기금들의 과거 통계이다. 단기에 사고팔기 어려운 기금규모 때문이다. 어디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인지는 명확하다. 정확한 자산배분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금운용지배구조를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지배구조문제는 이제 그만 결론을 낼 때도 되었다. 기금가입자보호라는 기금운용목적에 포커스를 맞추면 정답이 무엇인지 드러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지배구조를 택하더라도 기금특성에 맞는 운용철학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합당한 이론, 그리고 효과적인 실천지침을 수립하여 일관되게 밀고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조직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하는 조직이다.”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위대한 조직은 공통의 목적과 공통의 전략아래 오랫동안 집중력을 발휘하고서야 비로소 태어날 수 있다. 뛰어난 기금운용조직이 되려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뚜렷한 기금운용목적과 이를 실행할 효율적인 지배구조다. 그러나 아무리 달성할 목적이 뚜렷하고 지배구조가 올바르더라도 목적 실행을 위한 조직역량이 떨어지면 의사결정에 혼선을 불러와 조직이 제 기능을 못하고 와해되고 만다. 결국 상하 기금운용담당자 자신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우리가 근래 목도했던 바이다.
기금운용목적이야 말할 것도 없이 기금가입자보호이다. 이는 장기안정수익확보를 통한 지속가능성 유지로 담보된다. 지배구조설계가 잘못되면 문제가 야기되고 목적달성에 차질이 생긴다. 지배구조 상하의 전문성이 제대로 확보되어 전문가에 의한 전문가의 통제 및 관리가 가능해져야 한다. 원칙이 바로 서면 신뢰가 쌓이고 집중력이 높아져 조직력이 강화된다. 하나로 뭉친 조직에서 열등한 성과가 나올리는 없다. 사막에서 낙타가 멀리 가는 것은 천천히 걷기 때문이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열사의 사막을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가는 낙타처럼 그렇게 걸어가야 한다. 뛰어난 기금운용조직은 하루아침에 탄생되지 않는다. 항상 원칙과 기본에 충실할 뿐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려고 조바심을 내서는 안 된다.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싸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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