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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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내용> - 현 제도하에서는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2054년경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며, 기금 소진 후 인상될 보험료율은 미래 세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다. - 인구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현시점에는 모수조정과 함께 세대 간 형평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의 구조개혁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 장기적인 ‘기대수익비’의 최대치는 1이며, 합계출산율이 매우 낮아져서 기대수익비를 1 부근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도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연금개혁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 현재의 운용방식을 유지하는 한, 보험료율을 9%에서 18%로 인상할 경우에도 2080년경에는 결국 전체 적립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 미래 세대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대수익비 1’의 완전적립식 ‘신연금’ 도입이 필요하다. - 완전적립식 신연금은 15.5%의 보험료율로 2006년생부터 현행 평균 연금 급여 수준을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구연금과 신연금의 병존은 출생연도에 따라 기대수익비가 점진적으로 하락하다가 2006년생부터 1로 수렴함을 의미한다. - 신연금의 도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609조원(GDP의 26.9%) 내외로 추정되는 구연금의 미적립 충당금을 일반재정이 보장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이른 시점에 빠른 속도로 일반재정을 투입해야만 재정부담의 명목가치가 최소화되므로, 구연금 기금이 소진되기 전에 재정투입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완전적립식의 신연금 도입 개혁이 5년 지체될 경우, 일반재정이 부담해야 할 미적립 충당금은 260조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 기대수익비가 사적보험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해도 사회 안정을 위해 공적연금의 필요성이 인정되며, 실제로 국민연금기금이 사적연금보다 다소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사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 등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하에서 신연금의 재정안정성을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급여 산정 방식을 확정급여형(DB형)에서 확정기여형(DC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 개인계좌제와 달리 연령군에 대해 DC형 연금을 적용하면 소득재분배 기능을 탑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 DC형 신연금에서는 보험료율 조정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기금 고갈의 위험 없이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본고는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하여, 미래 세대가 납부한 보험료와 운용수익만큼의 연금 급여를 기금 고갈의 우려 없이 지급할 것을 보장하는 완전적립식의 ʻ신연금’ 도입을 제안한다. 연금개혁 이전에 납입된 보험료에 대해서는 기존의 확정급여형으로 약속된 연금을 지급하되, 이로 인해 발생할 ʻ구연금’의 재정부족분은 ʻ신연금’과 분리하여 일반재정으로 충당하는 해결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러한 개혁은 조기에 단행될수록 재정부담이 작아진다는 점도 강조하고자 한다.
Ⅰ. 국민연금 구조개혁의 필요성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제도는 1988년 1월에 도입되었다. 도입 초기에는 산업화시대의 노후 소득 보장을 강조하기 위해 소득대체율을 70%로 설정한 반면, 보험료는 불과 소득의 3.0%만을 부과하였다. 즉, 국민연금 재정은 태생적으로 지속가능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후 우리 사회는 이러한 국민연금의 재정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소득대체율을 점진적으로 40%까지 인하하는 한편, 보험료율은 9%로 인상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그림.1 참조).
이러한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의 심각한 재정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가 유지되는 경우를 전제하여 추계해 볼 때, 적립기금은 2023년 1,015조원(GDP의 44.8%)에서 2039년에 최대 규모인 1,972조원에 도달한 이후 점차 감소하여 2054년에는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난다(그림.2 참조). 현행 연금제도는 기금 소진 후에도 약속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서 보험료율을 우선하여 조정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보험료율 조정만으로 약속된 연금 급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OECD에서 최고 공적연금 보험료율 수준인 33% (이탈리아)를 능가하는 35% 내외까지 인상해야 한다. 앞 세대가 훨씬 더 낮은 보험료율을 통해 동일하거나 더 높은 소득대체율을 누리는 것에 비해, 현행 연금제도 시스템에 따라 기금 소진 이후의 세대에 대해서만 무작정 35% 내외의 보험료율을 강요한다면 세대 간 형평성이 크게 저해될 수 있다.
이러한 국민연금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나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 등 연금 전문가 그룹들은 적립기금의 고갈을 늦춰 연금재정을 안정화하는 정책을 주로 제시하고 있다. 보험료율 인상안 같은 모수조정(parameter adjustment)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는 기금 소진 이후 미래 세대가 일방적으로 막대한 보험료율을 부담하게 되는 상황을 피해 보자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러나 구조개혁 없이 모수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기금 소진 시점을 이연시키는 과정에서도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특히 저출산 문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최근 상황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소수인 청년층의 보험료로 다수의 노령층을 부양하는 형태의 현 연금제도 구조하에서는 모수를 어떻게 조정하더라도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완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겠지만) 보험료율을 현재의 2배 이상인 20%로 인상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소득대체율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보험료율 인상 이후의 세대는 납부하는 보험료와 그 투자 수입에 비해 연금 급여가 지나치게 적다고 느낄 수 있다. 특히 미래 세대는 납입한 보험료와 투자 수입에 비해 더 많은 연금 급여를 받게 되는 기존 세대 때문에 자신들의 부담이 커졌다고 판단하여 세대 간 불공평성을 호소할 수 있다. 따라서 인구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모수조정뿐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의 구조개혁이 반드시 추진될 필요가 있다.
Ⅱ. ʻ기대수익비 1’ 신연금 제도 도입방안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제도에서 이와 같은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앞 세대의 ʻ기대수익비’가 1보다 큰 것에 기인한다. 즉,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와 이를 적립한 기금의 기대운용수익의 합에 비해 사망 시까지 받을 것으로 약속된 총급여액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앞 세대의 급여액 초과분을 현행처럼 뒷세대의 적립기금 및 기대운용수익으로 충당하게 될 경우 뒷세대에게 예정된 기대수익비를 보장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지고, 연금 기금 소진 시부터는 기대수익비 1조차 보장할 수 없는 것이 확정된다. 결국 앞 세대의 기대수익비가 1을 상회한다는 것은 뒷세대의 기대수익비가 1을 하회하며 장기적인 기대수익비가 1을 넘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앞 세대의 기대수익비가 1을 상회하는 상황에서 세대 간 형평성을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요인은 바로 저출산이다. 출산율이 낮아지면 일차적으로는 보험료 수입이 이전보다 줄어들어 기금 소진 시점이 앞당겨지고, 기금 소진 후에는 상대적으로 줄어든 청년층이 늘어난 노령층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출산율이 양호한 상황보다 기대수익비가 더 낮아진다. 기금 소진을 영구히 예방하기 위한 보험료율 인상폭이나 연금 삭감 폭 또한 출산율이 낮아지면 더욱 커지기 때문에 기대수익비는 여전히 출산율의 영향을 받는다. 현재 우리나라 연금제도에 내재되어 있는 이러한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본 연구는 극단적으로 낮은 출산율에서도 장기적인 기대수익비가 최대치인 1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는 연금개혁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 제도와 새로운 제도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먼저 현행 ʻ부분적립식’ 연금제도의 정의와 한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1. 완전적립식 vs. 부과식, 그리고 부분적립식 연금제도의 한계
완전적립식이란 근로 세대에 부과된 보험료의 원리금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연금 급여를 충당하는 방식이며, 그 정의상 기대수익비 1을 항상 만족하는 제도이다. 반면, 부과식은 적립기금 없이 매해 보험료 수입으로 연금 급여를 충당하는 방식, 즉 뒷 세대의 보험료로 앞 세대의 연금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기금이 적립되다가 소진되면 부과식으로 전환되는 형태이므로 ʻ부분적립식’이 라고 칭할 수 있다.
그러나 ʻ기대수익비>>1’로 약정되어있는 기존의 연금 구조에 대한 부담과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를 감안할 때, 사실상 현재의 부분적립식 연금제도가 부과식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그림 3]은 국민연금의 장기재정계산에서 사용되고 있는 연평균 기금수익률 4.5%, 임금상승률 3.7%(물가상승률 2.0%, 실질임금상승률 1.7%), 장기 인구증가율 -1.5%(장기 합계출산율 1.21명)를 가정하고, 보험료율을 9%에서 18%로 인상할 경우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2050년대 중반까지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5,000조원을 상회할 정도로 크게 증가하나, 2080년경에는 결국 전체 적립금이 소진될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이러한 추산에는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예상보다 운용수익률이 높아져서 기금 소진 시점이 늦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볼 때, [그림 3]의 결과는 오히려 낙관적인 시나리오일 가능성이 크다. 잠재성장률의 지속적인 하락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운용수익률은 오히려 낮아질 가능성이 커 보이며, 최근 장기 합계출산율은 1.08명으로 하향 조정된 상황이다. 즉, 기금 소진 후 재정부담에 의해 기대수익비가 매우 낮아지는 것에 대한 불안 및 반발을 불식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2. 완전적립식 신연금 도입의 의미
따라서 본 연구는 매우 낮은 합계출산율하에서도 미래 세대에게 기대수익비 1을 보장하기 위해 완전적립식의 ʻ신연금’ 도입을 제안하고자 한다. 즉, 개혁 시점부터 납입되는 모든 보험료는 신연금의 연금기금으로 적립되고 이에 따라 향후 기대수익비 1의 연금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반면, 개혁 시점 이전에 납입한 보험료에 대해서는 ʻ구연금’ 계정으로 분리하되, 구연금에 대해서는 개혁 이전의 기대수익비 1 이상의 급여 산식에 따라 연금을 지급하게 된다. 이 경우 구연금의 적립기금으로 향후 연금 급여 총액을 충당하지 못해 재정부족분(미적립 충당금)이 발생한다. 본 연구에서는 구연금의 재정부족분에 대해 신연금과 분리하여 일반재정으로 충당하는 것을 해결방안으로 제안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구체적으로 다루도록 한다.
[그림 4]는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율의 시간 경로를 가상의 세 가지 제도하에서 추산한 결과를 비교하여 보여주고 있다:
➀ 신연금 도입(기대수익비 1 + 미적립 충당금의 일반재정 부담)
➁ 현 제도 유지(보험료율 9% + 기금 고갈 시 부과식 전환)
➂ 보험료율 18%로 인상(기금 고갈 시 부과식 전환)
만약 현 제도를 유지할 경우(➁ 2050년대에는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보이며, 기금 고갈 이후에도 기존 세대의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의 보험료율을 30~40%까지 급증시켜야 할 것으로 시산된다. 보험료율을 현재의 두 배 수준인 18%로 급증시킬 경우(➂에도, 기금 고갈 시점이 2080년대로 이연되기는 하나 그 이후 세대의 보험료율은 여전히 30~40%까지 인상되어야 한다. 만에 하나 미래 세대의 보험료율을 35%로 인상하면서 그들의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한다면, 이는 [그림 5]에 나타나듯이 그들 세대가 부담하는 보험료의 기대수익비가 0.5를 하회할 것임을 의미(장기적으로 약 0.44)하는 것으로서 도저히 수용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모수 개혁 시나리오와 달리, 기대수익비 1을 목표로 하는 신연금을 도입할 경우(➀ 연금재정은 항구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 아울러 현재까지 운용된 구연금 제도에서 발생한 미적립 충당금을 일반재정이 부담할 것을 보장한다면, 신연금 보험료율을 15.5% 내외까지만 인상해도 40%의 소득대체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개혁이 추진될 경우, 구연금 제도하에서 보험료를 납부해 온 기성세대의 기대수익비는 [그림 5]처럼 여전히 1을 상회할 것이나, 구연금 제도에 머물러 있던 기간이 짧아질수록 기대수익비는 2 내외에서 1 방향으로 수렴해 갈 것이다. 즉, 현재 60대에 이른 1960년생의 기대수익비는 2를 상회할 것이나, 현재 50세인 1974년생의 기대수익비는 1.5 내외로 하락하고, 이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2006 년생 이후 세대의 기대수익비는 1로 안정될 것이다.
이처럼 신연금이 도입된다고 해도, 기존 세대 대비 미래 세대의 기대수익비는 여전히 낮다. 그러나 이는 기형적으로 설계된 기존 제도가 이미 약속한 지급분을 파기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발생한 부분을 일반재정으로 충당함에 따라 기대수익비가 높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설계는 최소한 미래 세대가 기성세대의 노후 보장을 위해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담(기대수익비 << 1)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결정적으로 해소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장점이 있다.
3. 미적립 충당금의 일반재정 부담 및 개혁의 시급성
이러한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구연금의 미적립 충당금을 일반재정이 보장함으로써, 신연금에 그 부담이 전가될지 모른다는 미래 세대의 불안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그 재정부담은 어느 정도나 될까? 만일 앞에서 제안한 방안으로 국민연금을 당장 개혁할 경우, ʻ구연금’ 재정부족분(미적립 충당금)의 현재가치는 2024년 기준 609조원(GDP의 26.9%) 내외로 추정된다. [그림 6]은 이러한 재정부족분의 연도별 부담 추계를 보이고 있으며, 우측 상자는 기금이 소진될 때까지 기다렸을 때의 재정투입 흐름도이다. 즉, 구연금의 기금 고갈이 예상되는 시점인 2046년경부터 약 13년간 GDP의 1~2% 수준의 재정부담이 예상되며, 그 이후에는 점진적으로 축소되어 2080년경 이후에는 거의 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논점은, 본 분석이 재정투입 속도의 하한을 표현할 뿐이라는 점이고, 이보다 이른 시점에 더 빠른 속도로 일반재정을 투입해야만 일반 재정 부담의 명목가치가 최소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연금 기금이 소진되기 이전부터 일정 수준의 재정투입이 이루어지는 개혁안을 함께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강조점은 개혁이 지체될수록 재정부족분이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점이다. 가령 연금개혁이 2024년보다 5년 후인 2029년에 단행될 경우 재정부족분은 609조원이 아니라 869조원(GDP의 38.4%)으로 급증하는 것으로 추계된다. 재정부족분 규모가 커질수록 연금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혁을 지체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즉, 연금개혁은 조기에 추진될수록 바람직하다.
4. 국민연금 vs. 사적보험
신연금은 기대수익비 1만을 보장하기 때문에 사적보험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 혹은 더 나아가 국민연금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연금은 국민 개개인이 사적보험에 가입하여 자신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대부분의 국가에서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 아닌 의무적 저축으로서의 공적연금을 운용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전 세계적으로도 사회 전반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공적연금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다. 노후 소득을 전적으로 개인의 자발적 저축에 의존할 경우, 일부 고령층의 노후 소득은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다수 국가의 경험이며, 따라서 이들을 보호하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 강제저축인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가 있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국민연금과 같은 대규모 기금의 운용수익률이 여타 사적보험의 수익률에 비해 높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이 과거 10여 년간 시장수익률을 11bp 상회하였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다만, 기금의 규모가 과도하게 커져 행정 비용이 지나치게 커지거나, 사적 금융시장을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도록 그 규모를 한정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공적연금의 존재 의의는 논리적으로 명확하지만, 정책적 의의와 별개로 국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제도에 대한 심적인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신연금 제도에 대한 국민적 참여를 제고하기 위해 향후 신연금에서 발생하는 연금 급여에 대해서는 소득세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 제공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Ⅲ. 신연금 제도의 재정안정 방안, 소득재분배 기능 그리고 제도적 유연성
신연금은 구연금 대비 재정지속성이 안정적이고 세대 간 형평성을 제고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신연금의 도입 시 이에 따른 문제들이 잔존한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문제로 제기될 수 있는 신연금의 재정안정 방안과 소득재분배 기능, 보험료율 조정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1. 확정급여형 vs. 확정기여형,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
현행 국민연금 제도하에서도 보험료율을 충분히 인상하여 기대수익비를 1로 조정하면 연금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 정도의 보험료율 인상이 과연 수용 가능할지 의문인 데 더해 현행 연금제도하에서 기대수익비 1을 맞추기 위한 보험료율의 결정에 수반되는 불확실성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연금제도는 생애주기 과정을 통괄하여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험료 납부 개시 시점에 향후 수십 년 동안 변화할 경제환경을 조망하여 연금 구조를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대수익비 1을 맞추기 위한 연금 구조의 설계는 연금가입자가 사망할 때까지의 기금수익률, 사망률, 임금상승률, 물가상승률 등에 대한 정확한 전망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작은 오차도 누적적으로는 큰 오차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적립기금 고갈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1988년에 국민연금을 도입할 당시나 그 이후 수차례에 걸친 연금개혁 논의 당시에 오늘날과 같은 극심한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를 예상할 수 있었던 전문가가 얼마나 될 것인지 자문해 볼 수 있다. 이처럼 경제환경이 예상을 크게 벗어날 경우 또다시 소모적인 연금개혁 논의가 불거질 수 있으며, 반복적인 개혁 논의가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키면 이후 연금개혁 논의 자체가 지극히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확실성을 축소하기 위해 경제 및 인구 환경 변화에 따라 급여가 자동적으로 조정되는 방향으로의 급여 산정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입이력 등 근로이력에 의해 실질 급여가 미리 결정되는 현행 확정급여형(Defined Benefit: DB) 제도를, 신연금에서는 가입자가 납입한 보험료와 운용수익, 기대여명 등에 의해 실질 급여가 결정되는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 DC)1)으로 전환할 필 요가 있다. 수급액을 보험료 납부 개시 시점에 결정하는 DB형에 비해 연금 수급 개시 시점에 결정하는 DC형은 수십 년에 걸친 환경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불확실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적으로 우위에 있다.
그러나 DC형에서도 은퇴 시점에 개별적인 연금 급여 흐름을 확정하면, 여전히 예상치 못한 기금수익률 하락, 물가상승률 상승, 사망률 하락 등에 의해 연금재정의 지속성이 불안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방안을 추가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은퇴 이후에 주기적으로 적립액을 확인하고 연금 급여 흐름을 재계산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어떠한 경제 및 인구 충격이 있더라도 개별 연금 급여를 시시각각 조정하여 재정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실제 기금수익률보다 더 낮은 가상수익률에 따라 연금 급여를 지급하고 실제 기금수익률과의 차이만큼을 신연금 내 완충 계좌(buffer account)에 적립하여 충격에 미리 대비하는 방법이다. 완충 계좌까지 소진되면 전체적인 급여를 줄이고, 너무 많이 적립되면 급여를 올리는 방식의 자동 안정화 장치를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2. 확정기여형 신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 설계
한편, 신연금이 DC형으로 전환될 경우 소득재분배 기능이 소멸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DC형 연금제도는 개인계좌제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 기능을 탑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를 보다 구체적인 맥락에서 설명하기 위해 공적연금 제도의 존재 의의를 보다 충실히 실현할 수 있는 CCDC(Cohort Collective Defined Contribution)형 연금제도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 제도에서 각 연령군의 구성원이 납부한 보험료는 연령군의 통합계좌에 적립 및 투자되는데, 개인계좌제와 다른 점은 사망자의 가상계좌 적립액이 동일 연령군 생존자의 계좌로 이전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을 실시하면 연령군의 사회적 연대에 의해 기대여명 평균보다 일찍 사망하는 사람이 기대여명 평균보다 늦게 사망하는 사람에게 소득 이전을 할 수 있게 되어, 생존자의 평균 연금 급여를 개인계좌제보다 높일 수 있다.2)
아울러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행과 마찬가지로 개인 급여와 평균 급여 사이의 가중치를 조정하면 된다. 즉, 동일 연령군 내에서 상대적 고소득자의 연금을 상대적 저소득자에게 이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현행 제도에서는 기준소득월액 상한을 올려도 증가한 보험료 납부액은 연금 급여 수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CCDC형에서는 기준소득월액 상한을 올리면 고소득층의 적립액 및 급여 수준이 증가하여 저소득층 또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신연금 도입 이후 소득 재분배 기능의 제고를 위해서 기준소득월액 상한 인상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3. 신연금 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 조정의 유연성
위와 같이 신연금으로 연금개혁을 하더라도 향후 보험료율 15.5%로부터 발생하는 연금 급여 수준이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40%의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DC형 신연금 제도에서는 향후 경제 및 인구 상황의 변화에 따라 급여 수준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낮아져서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 가령 최용옥(2015)의 주장처럼 사망률 전망이 주기적으로 과대 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DC형 연금은 기대수명이 길수록 평균적인 연금 급여가 더 낮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에 적합한 신연금 보험료율은 정확히 15.5%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
다만, DB형과 달리 DC형은 보험료율을 조정하면 그 비율만큼 연금 급여 또한 변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보험료율 조정에 대한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보험료율 인상은 국민 부담률을 높이는 정책이기 때문에 적정 수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수적이지만, 급여 수준이 변하지 않는 DB형보다는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보인다.
4. 신연금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수용성
신연금은 재정안정성을 담보하기 때문에 신연금 제도에서의 보험료율 인상은 현행 DB형 연금제도에서의 인상보다 국민들의 거부감이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전히 9%에서 15.5%로의 6.5%p 보험료율 인상을 일시에 실시하는 것은 가입자에게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ʻ9% → 12% → 15.5%’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이나, 0.5%p씩 13년 동안 인상시키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소득대체율을 현행 제도와 비슷하게 보장하는 상태에서 보험료율을 개혁 시점에 일시에 인상하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재정부족분이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단계적으로 인상된 보험료율과 관련하여 사업장 가입자의 경우 개인과 기업이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 단계적 인상으로 인한 재정부족분을 정부가 부담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민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Ⅳ. 결론 및 요약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 인상이 필수적이지만,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험료율 인상 수준으로 기금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설령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보험료를 인상시킨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구조를 유지하는한 미래 세대는 해당 세대가 기여한 보험료만큼의 연금(즉, 기대수익비 1 수준)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고 세대 간 형평성을 최대한 지키며 지속성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대수익비 1을 확보할 수 있는 완전적립식의 신연금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본고는 다음과 같은 연금개혁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 특정 시점에서 구연금제도 정지
(2) 구연금의 미적립 충당금(현재 기준 609조원 내외)은 일반재정이 보증
(3) 기대수익비 1의 신연금제도 도입
(4) 신연금제도는 확정기여형(DC형)으로 설계하여 재정안정성 담보
(5) 신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확보하기 위해 동일 연령(코호트) 내에서 소득 이전이 가능한 CCDC형 도입
이와 같은 본고의 제안이 국민연금 구조개혁에 대한 우리 사회의 건강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중요한 점은 부족한 연금기금에 대한 일반재정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축소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개혁이 가급적 조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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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이강구 · 김도헌 · 신승룡,『공적연금제도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개혁방안』, 한국개발연구원, 2023(근간 예정)의 내용을 요약 및 재구성하여 작성되었다.
1) 완전적립식 연금제도는 다양한 DC형 연금제도 중 한 가지일 뿐이다. 가령 스웨덴의 NDC(Notional Defined Contribution) 연금제도는 DC형이지만 완전적립식은 아니다.
2) 다만, 유족연금의 인정 범위에 따라 그 급여 수준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추가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보건복지부,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 2023. 10. 30.
이강구 · 김도헌 · 신승룡, 『공적연금제도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개혁방안』, 한국개발연구원, 2023(근간 예정).
최용옥, 『장수리스크 측정과 관리방안에 대한 연구』, 정책연구시리즈 2015-18, 한국개발 연구원, 2015.
<자료>
통계청, 「장래인구추계(2020 인구총조사기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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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KDI FOCUS 2024 Vol.129] (2024.2.21.)에 실린 것으로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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