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 시대정신(zeitgeist) <6> 호주의 날, 침략의 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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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날인가. 침략의 날인가. 해마다 1월이면 호주에서 치열하게 불붙는 논쟁이다. 나라 자체가 하나의 대륙인 광활한 땅, 유럽인의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된 건 1788년 1월 26일이었다. 1,400여 명의 죄수와 해병, 정착민을 태운 11척의 영국 선박이 동부 연안에 정박했다. 이날이 호주의 건국기념일인 호주의 날(Australia Day)이다. 이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이들은 침략의 날(Invasion Day)이라고 주장한다.
호주 원주민은 애버리지니(Aborigine)와 토레스 해협인(Torres Strait Islanders)으로 나뉜다. 합쳐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Indigenous Australian) 혹은 최초의 국민(First Nations)으로 불린다. 수만 년 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왔다. 지구 어느 대륙과도 다른 신비로운 자연 속에서 부족별로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발전시켰다. 유럽인과의 조우는 비극이었다. 학살과 전염병이 휩쓸고 간 뒤 90%의 원주민이 사라졌다. 이제는 호주 인구의 3.8%에 불과하다. 대부분 사회의 최하층으로 궁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탄압과 차별의 역사는 끈질겼다. 이들은 1967년이 되어서야 시민권을 받았고 1984년에 와서야 완전한 투표권을 인정받았다. '원주민 동화 정책'이라는 명목으로 원주민과 백인 사이의 혼혈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떼어냈다. 19세기 후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있었던 일이다. 10만여 명의 아이들이 강제로 입양되거나 수용됐다. 원주민 언어를 쓰면 매질을 당했다. 사냥감처럼 잡혀 온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고 언어와 문화를 잃었다. 이들을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s)’라고 한다.
< 원주민 혼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1934년 입양 공고>
“나는 중앙에 있는 소녀를 원하지만, 다른 사람이 데려가기로 했다면 다른 아이도 상관없습니다. 튼튼하기만 하다면”이라고 쓴 메모와 중앙에 있는 소녀의 X표식이 눈에 띈다.
ⒸPhotograph: Corbis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 <오스트레일리아>에 이 세대에 속하는 혼혈 소년이 나온다. 소년은 경찰에 쫓기다 엄마를 잃고, 폭격이 쏟아지는 태평양 전쟁 중 외딴섬에 수용되지만 '착한 백인' 주인공 덕에 동화 같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현실은 영화와 달랐다. 1987년 출판된 <니웅가의 노래>를 보자. 애버리지니 혼혈 3세인 샐리 모건의 자전적 소설이다. 어린 시절 샐리 모건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는 어디 사람이에요?
아이들이 뭐라고 그러니?
별소리 다 해요. 이탈리아라고도 하고, 그리스라고도 하고, 인도라고도 해요.
인도라고 하렴.
샐리 모건의 엄마와 할머니는 낙인과도 같던 원주민 혈통을 철저히 감추며 살았다. 뒤늦게 이를 깨닫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작가의 여정과 그 끝에 실상을 드러내는 ‘도둑맞은 세대’의 삶의 여적이 소설의 내용이다. 모건의 할머니는 죽음 앞에 이르러 비로소 털어놓는다. 가축처럼 끌려간 백인 가정에서 노예로 살아온 삶, 백인 주인의 능욕으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빼앗기며 살아온 고통의 삶을. 모건의 책은 ‘도둑맞은 세대’의 은폐된 역사를 캐내어 세상에 알렸다. 책이 출간된 후 20년이 더 지난 2008년, 호주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문명과 야만을 제멋대로 구분하고 다른 것을 야만이라 부르며 맘껏 짓밟았던 역사는 신대륙이라 불리던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같은 시기, 15만 명이 넘는 캐나다 원주민 아이들도 가톨릭 학교 등의 시설에 격리되었다. 많은 아이들이 구타와 인권 유린, 성적 학대에 내몰렸다. 아이들의 유해 1,200여 구가 몇 개의 기숙학교에서 발견되는 일이 2021년에 벌어지기도 했다. 이듬해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이 캐나다를 방문했다. 교황은 기독교인이 원주민에게 저지른 악행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서 이루어진 번영은 원주민의 피와 눈물 위에 쌓은 탑이다. 그 깊고 어두운 상처를 헤집을 때마다 쓰리고 욱신거리겠지만 딱지가 생기고 새살이 돋도록 환기하고 보듬는 일이 후손에겐 과업으로 남아 있다. 지난해 10월, 호주 정부는 원주민을 호주 최초의 국민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대변할 헌법 기구를 세우는 내용의 개헌안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투표는 60%의 반대로 부결됐지만, 논의는 하나의 씨앗이 되어 또 다른 봄날에 싹을 틔울 것이다.
호주 최대의 국경일인 1월 26일 건국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매년 그랬듯이 한쪽에선 ‘호주의 날’을 기념하는 퍼레이드와 불꽃놀이, 야외콘서트가 펼쳐질 것이고, 한쪽에선 ‘침략의 날’을 규탄하는 시위와 추념식이 열릴 것이다. 논쟁은 첨예하고 갈등은 피할 수 없겠지만 침묵보다는 훨씬 아름답다.
소설 <니웅가의 노래>에서 ‘니웅가’는 애버리지니 말로 ‘인간’이란 뜻이라고 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구분하고 멸시하고 짓밟은 역사는 백인과 원주민만의 것이 아니다. 결코 과거만의 일도 아니다. 우리가 먼 나라 호주의 건국기념일과 그 논쟁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훗날 그 상처를 후손에게 떠넘길 차별과 폭압의 역사가 ‘지금, 여기’에서 쓰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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