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丙申年) 새해건배사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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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에 신년 축하인사 때 빈번하게 듣는 말이 나라경제 장래를 우려하는 말이다. 경제 순환의 큰 주기가 돌고 돌아 위기의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인가?
하기야 세상 돌아가는 꼴이 18년 전 금융위기 전야 상황이 닮아간다. 그즈음에도 고위직 관료들이 나라 경제 펀더멘탈이 튼튼하다고 장담했고 최근 이임하는 경제부총리도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최근 국가신용등급을 올려준 무디스의 조치가 안도감을 주어야 할테지만 구제금융 직전에 있었던 승급발표가 위기의 진정제가 되기는 커녕 역설적으로 사고 경계음이었음을 돌이켜 보게 된다. 다른 한편, 한국의 노동관련지표가 OECD국가 중 최하위라는 보도는 당연하게 들린다. 병든 기업을 ‘국민기업’, 노조와 야합해 기업부실을 호도하는 자를 ‘전문기업인’으로 치켜 칭송하던 일부 언론의 보도가 아직 귀가에 남아있다. 대기업과 하청기업들이 위아래로 길게 엮어진 도미노 게임장치에서 대기업의 강성노조가 하청기업 근로자의 임금, 후생을 갉아먹고 산다. 먹이사슬 꼭대기의 노조는 유한(有閑)계급화, 귀족화, 세습화를 굳히고 있어서, 경찰 연행시 ‘비정규직‘ 머리띠 두른 노조위원장의 기만술이 이제는 세인의 눈을 속일 수 없게 되었다.
노동등 개혁법안들이 줄줄이 국회에 계류돼 있으나 합의 통과는 기대난이다. 왜냐하면 측근에서조차 위기 경제에 관한 한 ‘혼주’(昏主)에 가까웠다는 평가받은 당시의 대통령이 그나마 개혁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던 노동개혁, 금융개혁 등 구조조정 입법에 대해, 야당은 막무가내 버티기로 일관했다. 그 결과 위기가 왔고 그 덕분에 벌린 입에 감 떨어지듯 집권에 성공했다. 요즘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볼모잡기, 끼워 넣기, 맞바꾸기 등 모두 국익을 멀리하고 정파이익을 챙기는 작태이다. 정권 교체의 정도(正道)는 다수표 확보이지만, 지름길은 위기조성이라는 사실을 야권은 경험으로 터득하고 있다. 집권 후 위기도래의 공동책임 반성은 한마디도 없었고 구조조정이 잘 정착되기도 전에 ‘IMF 조기졸업’ 자화자찬 일색이었다. 요 며칠 대통령이 노동법 지연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 거듭 질타하지만 야당의 속셈은 다르다. 역사는 승자의 편, 아무도 버티기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될 조짐이 보이지 아니한가?
떠나는 경제부총리는 잠재적 폭발물은 후임에게 넘기고 간다. 초대 부총리는 활기는 없었으나 적어도 사고치지는 않았고, 전임은 활기는 넘치되 사고가능성을 키우고 간다. 가계부분부채를 1200조원대로 불린 DTI, LTV한도 인상도 그의 야심작이었고, 은행의 대출부실 책임 불문을 언급하던 금융당국도 동조자였다.
미국 FED 기준금리 인상이 서울 금융당국의 단잠을 깨워 이제야 은행건전성에 신경 쓰는 듯 시늉한다. 그러나 여전히 감독원조차 본분이 건전성 감독인지, 기업구조조정 독려인지 헷갈리고 있다. 그만큼 만성적 적자기업, 좀비기업이 많다는 애기이다. 한국은행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 갚기도 못하는 기업을 3471개로 본다. 금융시장에 충격이 오면 가계부문, 기업부문 모두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조선, 해운 등 대형기업의 구조조정은 부실규모가 예전 대우그룹 못지않게 불어나있어 어느 기관도 선뜻 솔선해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는 형국이다. 방만 경영의 공기업과 포퓰리즘 치닫는 지자체 모두 부실이 심각하다. 한때 승승장구하던 스마트폰, 자동차 등 수출 주력품목도 고전하고 있다. 중국의 추월 숨길이 등골에 따갑다.
역사는 과거를 복사하듯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18년 전에는 금융과 외환위기, 쌍둥이 위기였다면 이번에는 외환 쪽은 다소 걱정을 덜 수 있을 공산이다. 기업과 가계부문으로부터 촉발된 잠재적 금융위기 경제전반을 함몰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경제 못지않게 정치전망도 혼탁하다. 여당은 야당분열로 어부지리(漁父之利)덕에 손쉽게 총선 승리를 기대할 것이다. 야당은 정부의 구조조정 노력에 제동을 걸어 1997년의 결과를 2017년에 되풀이하고자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수를 노리고 있다.
산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내가 산으로 다가가야 한다는게 마호메드와 산(山)의 우화이다. 서울 정가에는 여야 모두 산이 제 발로 굴려 오기만 기다린다. 변화를 바라지 않는 ‘어르신네’를 탓하는 문대표는 친노 패러다임에 갇혀 중도보수에 호소하는 쪽으로 정책 아젠다의 개편을 금기시한다. 독선이지만 속셈은 멀쩡하다. 이러한 야당에게 질타하기만으로 움직이기를 바란다면 수읽기가 한참 부족하다. 대통령 심중에 15세기 잔다르크 같은 결의가 충만한 듯해 존경을 살만하지만, 결의와 결과 사이는 천리 길이고 존경과 실망은 지척임을 알아야 한다.
뜻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내가 산(국민)에 다가가야하고 낙타(인물)을 잘 골라 타야한다. 나에게 ‘진실한 사람’을 골라 낙점주기 하다보면, 같은 구기종목이라고 탁구와 농구 경기에 선수기용이 헷갈리는 수가 있다. 낙하산 인사의 허점이 그러하다. 다음 대선에도 대통령의 ‘진실한’ 후보 찾기로 혼선을 빚으면 20년 전 결과가 되풀이 된다. 야당에게 물실호기이다.
‘병∙수∙발’, 이것이 나의 새해 건배사이다. 병신년에, 수북수북 복이 내려, 발전하는 살림이기를 기원하는 마음의 발로이다. 또한 더욱 악화되는 대내외 환경 속에서 국민 경제의 질병이 깊어가는 가운데, 공직사회에 시간 끌며 폭탄 돌리기를 노리는 풍조가 엿보인다니, 환자 수발과 재활의 책무는 누가 질 것인가? 공직자는 복지부동, 하는 척 마는 척, 선 듯 나서는 자 드물다. 설사 나서고 싶어도 향후 감사기관의 근시안적 지적, 국회 청문회, 염량세태(炎凉世態)와 곡필(曲筆)이 부담된다. 환자의 치료, 간병과 재활을 돌보던 인원이 되레 수난을 겪었던 사례가 반복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새해에는 정치경제의 병수발이 잘되도록, 용기있고 지혜로운 간병인이 다수 나서 구조조정 병수발이 잘되기를 기원한다. ‘병∙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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