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이 먼 투자중심 기술금융: 그 성공을 위한 조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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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는 지난 8일 “대출”에서 “투자”로의 기술금융 외연 확장 및 생태계 조성을 담은 ‘기술금융 체계화 및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기대수익이 한정 되어있는 현 융자중심의 고위험·저수익 구조에서, 다수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고위험·고수익의 투자 중심으로의 전환을 통해 기술금융의 장기적 정착 및 활성화를 꾀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투자 자금형성 및 규모에만 집중된 ‘무늬만 투자’인 방안들로 보인다.
금융위가 제시한 방안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술형 모험자본 활성화 유도: 투자형 기술신용평가(TCB)를 개발하여 벤처케피털(VC) 등에 확산하고, 은행· 정책 금융 자금을 연계하여 ‘기술형 모험자본’을 조성하고자 한다. 둘째, 성숙단계 기업의 자본시장 접근 강화: 우수 기술기업을 대상으로 한 p-CBO (primary Collateralized Bond Obligation, 채권담보부증권) 발행 및 코넥스·코스닥 상장 특례 등을 통해 자본시장을 통한 직접금융 조달 지원을 하고자 한다. 셋째, TCB 평가 활용영역 확대: 은행 대출·투자 외 영역의 TCB 평가 활용을 확대하여 우수 기술 기업을 위한 우대를 실시한다. 마지막으로, 은행혁신성평가의 기술금융(TECH) 평가지표 개선안에 이러한 투자 규모 및 증가율을 10% 비중으로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필자를 포함한 금융학자 및 전문가들이 투자주도의 기술금융을 지지하는 데는 고위험·고수익의 투자 구조만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 아니다. 기술금융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미국 벤처투자가(VC: Venture Capitalist) 주도의 기술기업 양성을 손꼽을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이들이 단순한 자금 공급 투자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벤처투자가들은 본연의 목적으로 중점을 둔 기술과 그 기술이 반영된 상품 및 시장에 대해 전문지식을 소유한 전문가들이다. 그러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기술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지배구조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관계가 기술기업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014년 9월 말 3,215건, 18.4조원에 불과했던 기술신용대출 실적이 2015년 4월말 39,685건, 25.8조로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이렇게 과열된 양상의 배경에는 금융위원회가 은행혁신성평가의 주요 구성항목인 기술금융(TECH) 결과에 따라 정책인센티브를 부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팽배하다. 그런데, 개선된 금융위의 평가지표에는 전에 없었던 투자 규모 및 증가율이 10% 비중으로 편성되어있다. 다시금 은행들은 평가지표에 따라 기술금융 투자 실적을 급속히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 은행들이 위에서 언급한 미국의 벤처투자가처럼 기술금융 투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 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가 가장 크게 염려되는 상황이다.
또한, 현재 시행되는 기술금융 융자와 달리 투자는 기술기업의 주식을 소유하는 것인데 기술기업이 상장 혹은 합병되기 전까지 이러한 주식의 화폐적 가치는 “0”에 가깝다. 즉, 기술금융 투자는 의미 있는 수익률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장기금융인 것이다. 미국 VC의 경우, 펀드 수명이 보통 10년으로 고정되어져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과연 보수적 기업관행으로 인해 위험 회피적 성향이 강한 개별 은행들이 이러한 장기투자를 수행하고자 할지, 그리고 정책금융의 단기성과만에 초점을 둔 금융위가 조성할 기술형 투자펀드에 이러한 점이 고려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성공적인 투자중심 기술금융 정착을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들이 있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금융 시장의 체질 개선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1999년부터 2000년을 인터넷버블기라 칭하는데 이 기간 동안 미국의 많은 기술기업들이 VC의 지원을 받고 상장했다. 하지만, 결국 대다수의 신생 상장 기업들이 단기간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상장폐지 되었다. 90년대 중·후반 높은 수익률을 기록해온 VC 산업에 비숙련 벤처투자가들이 몰려들어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욕심에 아직 성숙하지 못한 기술기업들을 상장시키는 행위(grandstanding)로 인한 사태였으며 이는 VC산업 전체에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었다.
정부의 급속한 기술금융 투자펀드의 형성 및 지원으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에도 VC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미국 인터넷버블기와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의 단기적 성과위주의 기술금융 투자 방안이라면, 비숙련 VC의 유입과 함께 이러한 위기가 국내에도 촉발 되리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부실 비숙련 벤처투자가들의 비전문적 투자행위를 스크린 할 수 있는 척도 및 규정 마련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투자 중심의 기술금융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금융시장의 투자출구(exit)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 즉, 비상장 중소기업의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인수합병 (M&A: Mergers&Aquisitions) 시장의 활성화 및 기업공개(IPO: Initial Public Offerings) 시장의 안정성·활성화가 투자환경 조성에 있어서 최소한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현재 금융위는 자본시장 접근 강화를 위해 TCB 우수기업 상장특례제도를 마련하여 기술기업들의 기업공개 평이성을 도모했다. 하지만, 기업공개 시장의 성공은 상장 접근의 용의성이 아니라 상장 후 상장기업의 중·장기적 성장 및 안정성으로 평가된다. 이를 위해서는 보호예수(lockup) 기간 후 기술금융 투자자본이 빠져나간 후에도 외부 투자자들의 장기주식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기술기업의 궁극적 성공을 위한 외부 투자가들의 자발적 장기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성숙되고 검증된 기술기업이 상장되어야 하며, 상장 후 기술기업 지배구조의 건전성 및 기업정보 공개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부차원의 감시·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은행이 기술기업 투자자로서의 역할에 한계가 존재하기에 유한책임 출자자(LP, Limited Partner)로서 기술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의견이 많다. 이는 은행의 성격상 가장 바람직한 방안일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은행이 LP로서 무한책임 출자자(GP, General Partner)인 VC를 통해 기술기업에 지원하는 방식의 성공은 이중 도덕적 해이(Double Moral Hazard)의 문제를 어떻게 관리·감독 하는가에 달려있다. 고전적인 개념의 VC와 기술기업간의 도덕적 해이와 더불어 다수의 은행 LP들과 그들의 투자자금을 운용하는 VC간의 도덕적 해이가 이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이중 도덕적 해이라 하는데, VC산업이 성숙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VC투자 경험이 부족한 은행들이 VC를 효율적으로 모니터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필자는 기술금융 초기부터 투자중심 기술금융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피력하여왔다. 하지만, 금융위의 현 투자방안은 투자자금 공급 및 확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술금융 투자 환경은 단기간에 확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서두르게 되면 부작용만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계획 수립 및 체계적 방안 마련이 중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술기업 투자에 가장 적합한 숙련되고 전문적인 VC의 양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효율적인 투자출구를 위한 자본시장 활성화 및 안정화를 위한 제도 마련 및 관리 시스템 향상에 정부의 지원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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