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을 위한 변명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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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1994학년도 입시)에 처음 실시된 수능시험은 그 후 이십여 년 동안 입시의 세계를 지배했다. 1993년 이후 이십여 년은 가히 수능시험의 시대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수능시험의 위상이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시모집 인원이 늘고 정시모집 인원이 줄었다. 올해 입시에서 정시모집이 차지하는 비중은 4년제 대학 36%, 전문대학 17.7%에 불과하다. 수시모집 내에서도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완화하거나 적용하지 않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으며, 문제가 쉬워져 입시변별력 또한 약화되었다.
수능시험의 위상은 계속 낮아질 전망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폐해가 적지 않다. 수능시험은 전국의 모든 학생을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줄세우기 하는 매우 비교육적인 시험이다. 학생들을 성적경쟁의 고통 속에 몰아넣으며 학부모에게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을 지운다. 수능시험을 위한 수업과 학습이 학생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제대로 길러주지 못한다.
수능시험은 극복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학력고사의 부활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그렇지 학력고사 시대(1982~1993학년도 입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학력고사의 최고 장점은 간단하고 단순하다는 것이다. 학력고사가 부활하면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은 상당히 경감될 것이다. 심지어는 교사의 부담까지도 줄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사교육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학력고사 시대에도 사교육은 기승을 부렸었다. 그러나 학력고사가 부활하면 그러한 사교육조차 웬만큼은 위축될 것이다.
그런데 학력고사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학력고사는 주입식 수업과 암기식 공부를 현저히 심화시킨다. 수능시험과는 그 정도가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학력고사가 부활하면 우리교육은 주입식암기식 교육의 시대로 완전히 회귀할 것이다.
대학별본고사의 부활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대학별본고사의 제일 큰 장점은 객관식선다형 시험을 벗어난 차원 높은 시험이라는 것이다. 1994~1996학년도에 존재했던 대학별고사는 분명 차원 높은 시험이었다. 대학별고사의 한 부분이었던 논술시험은 특히 그러했다. 논술고사가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만약 입시에서 대학별고사와 논술시험의 비중이 현저히 커진다면 우리교육은 주입식암기식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상당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학별본고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1994~1996학년도 입시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사교육의 폭발적 증가가 그것이다. 수능시험과 동시에 도입됐던 대학별고사가 3년 만에 폐지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대학별본고사는 특목고나 자사고 등에 현저히 유리한 시험이다. 대학별본고사가 부활하면 특목고와 자사고 진학을 위한 고교입시 경쟁은 고교평준화를 심각하게 위협할 만큼 치열해질 것이다.
결국 학력고사와 대학별본고사의 부활은 수능시험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수능시험을 대신하여 위상을 높이고 있는 입시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위주로 한 입시다. 수시모집의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입학사정관제)전형이 그것이다.
순수한 형태의 학생부교과전형은 실상 학교시험(내신)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입시다. 여기에는 뚜렷한 장점이 있다. 간단하고 단순함이 학력고사를 능가한다. 학생부교과전형이 입시의 중심이 되면 학생과 학부모가 느끼는 입시에 대한 부담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사교육도 웬만큼은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학생부교과전형에는 심각한 약점이 있다. 우선 경쟁이 매우 비인간적이다. 만약 수능시험이 폐지되고 학생부교과전형이 입시의 중심이 되면 어떨까? 당연히 수능시험에서 일어났던 경쟁이 그대로 교과성적(내신성적)을 둘러싼 경쟁으로 이전한다. 그런데 이것은 입시경쟁으로 인한 학생의 고통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킨다. 내신경쟁에서 주된 경쟁자는 같은 학교를 다니며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다. 수능시험에서의 주된 경쟁자가 얼굴을 모르는 다른 학교 학생들인 것과 현저히 다르다. 어떤 경쟁이 학생들에게 더 극심한 고통을 줄까? 그리고 치열한 내신경쟁은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완화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심화시킨다. 내신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학교시험은 점점 더 객관적 타당성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미 지금도 대부분의 학교시험은 주입식암기식 공부를 부추긴다. 그리고 학생부교과전형은 학교 간에 존재하는 현저한 학력격차를 입시에 반영하지 못한다. 물론 이것은 학교 간의 평등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학생부교과전형의 매우 큰 장점이다. 그러나 만약 순수한 형태의 학생부교과전형이 입시의 중심으로 분명하게 자리 잡으면 그로인해 불이익을 받는 학교(의 학생과 학부모)의 저항은 상당히 클 것이다. 지금은 순수한 형태의 학생부교과전형이 대학입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상위권 대학의 경우에는 순수한 형태의 학생부교과전형을 찾아보는 것 자체가 어렵다. 상위권 대학은 대부분 교과전형에 종합전형의 성격을 일부 섞거나, 학교의 수준이 드러나는 변형된 내신성적(Z점수)을 반영하거나,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한다. 하지만 상위권 대학까지 순수한 형태의 학생부교과전형이 입시의 중심이 되면 이로 인한 갈등은 우리사회의 상당한 문제가 될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입학사정관제)은 어떨까? 학생부종합은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현저히 그 위상을 높여가고 있는 입시이다. 학생부종합(입학사정관제)의 제일 큰 장점은 성적만으로 학생을 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여전히 학교성적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제는 성적만이 아닌 학생의 잠재적 역량, 발전 가능성, 창의성 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이야말로 입학사정관제의 최고 장점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입학사정관제의 이러한 장점은 현실에서는 곧바로 치명적 약점으로 전환된다.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정성의 가치를 자칫 무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어쩌면 그동안 우리의 입시가 상당히 공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입시의 공정성이 지속적으로 위협받아도 계속 그럴 수 있을까? 입학사정관들이 큰 가치를 부여한다는 학생의 잠재적 역량, 발전 가능성, 창의성 등은 쉽게 평가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학생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교사들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입학사정관들이 귀신이 아닌 바에야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 몇 장을 가지고 그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입학사정관제가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학교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는 시험으로 따지면 일종의 답안지 같은 것인데 그 내용이 학교(교사)와 학부모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자칫하면 학생의 잠재적 역량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주변(학교교사와 학부모 등)의 역량을 측정하는 입시가 될 수 있다. 둘째, 자기소개서의 내용은 물론이고 교사가 작성하는 생활기록부의 내용조차도 상당부분 과장되거나 윤색될 수 있다. 생활기록부를 완전히 거짓으로 작성하는 것이야 교육부가 감독을 잘해 막을 수 있겠지만 과장과 윤색까지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실의 세계에서 그것은 흔히 학생에 대한 애정과 열정의 다른 측면이기 때문이다. 셋째, 입학사정관제들은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입학사정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출신 학교이다. 이것은 아무리 입학사정관들이 부정해도 현장의 교사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공식적으로야 어찌됐든 입학사정관제에서 고교등급제는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다. 물론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고교 간의 현저한 학력격차를 어떻게 해서든지 입시에 반영하려는 것은 자연스런 욕구다. 하지만 입시에서의 승패가 학생이 직접 참여하는 어떤 행위, 예컨대 시험 등을 통해 결정되지 않고 자신과 아무런 관계없는 다른 어떤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심각하게 불공정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시도해 보았거나 시도하고 있는 입시는 모두 수능시험에 비해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을 상쇄하는 문제점 또한 지니고 있다.
수능시험은 분명 문제가 많은 시험이다. 우리는 수능시험의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수능시험을 대신할 믿을 만한 다른 입시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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