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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과 성희롱의 공통점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9월06일 20시1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20시46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대학 교수, 사회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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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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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서 소위 ‘갑질’과 성희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년 겨울, 항공사 재벌3세의 ‘땅콩 회항’ 사건을 비롯한 각종 ‘갑질’의 행태가 우리 마음을 무겁게 했던 기억이 아직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건만, 최근에는 모 제약회사의 아들이 주차단속 경고장에 격분해 주차관리실 직원의 업무용 노트북을 부쉈다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갑질’에 더해, 서울의 한 공립학교에서 여학생과 신임 여교사 등을 상대로 발생한 성희롱 사건은 교장을 비롯한 해당 학교 운영진의 은폐 시도가 더해져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만들고 있다.

그밖에도 얼마 전에는 어떤 대학교의 교수가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기까지 했다는 ‘갑질’의 사례, 심지어 모 회사의 여성 상사도 여성 직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보도 등은 우리 사회의 ‘갑질’과 성희롱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에까지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자아낸다. 이 ‘갑질’과 성희롱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 권력 남용과 이기주의

가장 큰 공통점은 ‘갑질’과 성희롱이 모두 권력 남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 모두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우월한 지위에 오르면 본인의 재량권이 많아진다고 생각하여, 상대에게도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이 쓴 『승자의 뇌(The Winner Effect)』라는 책의 번역본 부제목은 “뇌는 승리의 쾌감을 기억한다”로 되어 있다. 권력은 “명석한 사람의 판단마저도 흐리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강조한다.

이 책의 3장에 애덤 갈린스키(Adam Galinsky)라는 심리학자의 실험이 인용되어 있다. 실험 참여자의 절반에게는 눈을 감고 1~2분 동안 자기가 권력을 행사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고 이것을 글로 간략히 적게 한다. 나머지 절반의 참여자들에게는 자기가 누군가의 권력 아래에 있었던 경험을 떠올려 글로 적게 한다. 그 다음에 빠른 속도로, 글씨 쓴 손의 엄지와 검지를 다섯 번 튕겨 소리를 낸 다음 수성펜으로 이마에 E 자를 쓰게 한다. 이 때, 권력 행사 경험을 글로 썼던 사람은 E 자를 자기가 보이는 방향으로, 권력 아래에 있던 경험을 글로 썼던 사람은 E 자를 상대가 보이는 방향으로 적었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것은 비록 사소할지라도 권력 행사 경험이 우리의 뇌에 영향을 미쳐 자기중심적으로 만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권력 남용에 이어 ‘갑질’과 성희롱의 두 번째 공통점은 배려가 부족한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욕구만 충족시키려 하고 타인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는 습관이 또 하나의 원흉인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배려가 결여된 이기주의는 위 실험에서처럼 뇌의 작용으로 ‘권력을 누리는 경험’에 의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즉, 권력 남용과 배려 결핍 이기주의는 서로를 강화시키는 관계에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소위 ‘우월하다고 간주되는’ 지위도 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한 학교의 교장은 교육부 장관 앞에서는 약자일 수 있으나 해당 학교의 교사와 학생에 비해서는 강자이며, 교사는 교장 앞에서는 약자일 수 있으나 신임 교사나 기간제 교사에 비해, 그리고 학생들에 비해서는 우월한 지위를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수직적인 관계에서 윗사람에게만 잘 보이려 하고 아랫사람을 무시할 때 발생한다. 윗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만큼 아랫사람의 권리도 존중할 줄 알아야 ‘갑질’이나 성희롱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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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질’과 성희롱의 차이점

권력 남용과 배려 결핍이 버무려진 ‘갑질’에 해당하는 언행에 성적인 내용이 담기면 성희롱이 된다. 사실 성희롱은 남성이 가해자,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월등히 많지만, 남녀의 지위 차이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 최근에는 그 반대의 경우도 간혹 발생하고 있으며, 동일 성별 간에도 발생 가능하다. 동일 성별 간에 발생하는 성희롱도 예전에는 군대처럼 남성 구성원이 대다수인 집단에서 남성들 사이에 발생하는 사례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직장의 여성 상사와 직원 사이에도 드물기는 하지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성희롱 가해자가 ‘상대가 어떤 것을 불편해하는가’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상대의 마음쯤은 무시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 상사와 직원이 모두 고귀한 ‘인간’이며, 인간이 서로에게 존중받을 권리는 역할과 성별의 차이를 떠나 동등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균형도 성희롱 발생의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보다 사회심리학적인 원인에 집중해 권력 남용과 배려 부족에 초점을 두고 논의하는 것이다. 권력 있는 남성이 힘 약한 여성을 상대로 성희롱을 일삼던 과거에 비해서는 상황이 조금 나아졌는지 요즘은 조심하는 남성들도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갑질’과 성희롱으로 인한 상처를 약자가 고스란히 짊어지게 되어 있는 구조는 그대로다. 강자가 먼저 변해야 이런 구조가 바뀔 수 있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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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려가 충만한 사회를 향해

‘갑질’과 성희롱이 줄어들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 “권력으로 빚어진 자기중심주의”를 벗어나야 한다(위의 책 149쪽 참조). 우월하다고 생각되는 지위에 오르기 전에 약자를 배려하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 이렇게 기본을 잘 익히고 나서 권력을 가져도 우리의 뇌는 권력에 익숙해져 배려를 망각하기 쉽다. 하물며 배려의 기본을 익히지도 않은 채 학생에 대한 권력을 갖게 된 교사, 또는 직원에 대한 권력을 갖게 된 상사는 그 권력을 행사하면서 뇌가 자연스럽게 더욱 이기적인 ‘배려 불가능한’ 상태로 변화하기 쉬울 것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이기적 개인들로 가득 찬 사회에서 참된 소통을 꿈꾸는 것은 모래알로 떡을 만들려 하는 시도처럼 요원한 길이다.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을 때 비로소 권력을 갖게 되더라도 우리의 뇌가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듯이, 좋은 교사,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든든한 주춧돌과 같은 배려를 기본 덕목으로 갖출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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