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정부'와 '무능한 정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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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의 결정이 반드시 현명하지만은 않다. 역사는 많은 기대 속에 취임한 대통령이 초라하게 퇴장하는 경우가 있음을 보여준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로 당선된 지미 카터는 4년 후에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에게 참패하는 치욕을 당했다. 그러가 하면 대통령이 암살을 당하거나 질병으로 사망해서 대통령을 승계한 부통령이 더욱 좋은 대통령이 되는 경우도 있다. 윌리엄 매킨리가 암살된 후에 대통령이 된 시어도어 루스벨트, 그리고 워런 하딩이 사망한 후 대통령이 된 캘빈 쿨리지가 오히려 훌륭한 대통령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좋은 대통령을 만나는 것 역시 일종의 운(運)일지 모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누가 보더라도 대통령을 할 만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반대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모두 '나쁜 정부'였다. 노무현 정부는 대북 정책과 사학법 개정,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으로 임기 내내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충돌했다. 결국 대통령 지지도는 폭락했고 2007년 대선에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과 중도를 표방하고 국민들을 부자로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자신들에 대한 비판적 언론을 탄압하면서 4대강 사업, 해외자원 개발 등을 무리하게 추진했다. 오만과 독단으로 점철된 이명박 정부는 '나쁜 정부'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원래 비판적이었던 세력 뿐 아니라 지지를 했던 계층에서도 '나쁜 정부'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대통합과 경제민주화 등을 내걸고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서 당선됐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의 박 대통령의 행보는 당선 전과는 100% 다르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대부분 파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선공약 파기가 의도적이었는지, 아니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스텝이 꼬여서 그리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뢰와 원칙'을 내세웠던 박 대통령이 대선공약을 이 처럼 무더기로 파기할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공약을 파기하고 '경제 살리기'에 나섰지만 별다른 비전이나 업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금리 인하로 부동산 경기가 약간 살아나는 것 외에는 모든 지표가 나쁘다고 보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평가다. 창조경제도 공허한 슬로건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중국 방문과 미국 방문을 시작으로 야심차게 시작한 순방외교도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밀월관계,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라는 벽에 봉착해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쯤 되면 경제와 외교에 무능한 정권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작년 봄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과 올해 들어 일어난 메르스 사태는 박근혜 정권이 위기관리에 한없이 취약함을 잘 보여 주었다. 두 사건을 들어서 박근혜 정부가 유독 해상안전과 전염병 방역에 취약하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박근혜 정권이 위기관리에 취약함을 잘 보여 주었다고 할 것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위기관리에 취약할 것임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인데, 그것은 물론 인사 실패와 불통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특성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난맥상은 인사실패로부터 시작됐음을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경륜은커녕 소신과 경험도 태부족한 사람들을 기용하고 대통령과 내각, 대통령과 참모 간에 소통이 안 되다보니 정부가 제대로 기능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폐지했던 해양수산부를 다시 부활시키기로 했으면 새로운 부서를 작동시킬 수 있는 역량있는 인물을 장관에 임명했어야 하는데, 행정부 국장 감도 못되는 인물을 장관으로 임명해서 정부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런 상황이면 부처에 기강이 설 수가 없고, 그 결과 우리는 세월호 사건 때 해당 부처가 얼마나 무능한가를 잘 알게 되었다. 메르스 사건에서 국민들이 목격한 모습도 세월호 때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부처를 이끌만한 자질이 못되는 특정 분야 전문가를 장관으로 임명하다보니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실패와 소통 부재 등 시스템 실패가 초래한 참사다. 인사와 의사결정 시스템에 고장이 난 '무능한 정부'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혹자는 '무능한 정부'가 '나쁜 정부' 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말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능한 정부'는 그 자체가 '나쁜 정부'임을 알아야 한다. 국정운영에서 '무능'은 변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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