感性메시지는 힘이 세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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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은 “의학 법률 경제 기술이 삶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수단이라면 詩, 美,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다” 라고 일갈한다. 시가 있고 문화가 흐르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시와 낭만 같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줄어가고 있다. 각박해지고 팍팍해진 것은 살기가 힘들어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거울 속에 비춰진 일그러진 우리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왠지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경제, 기술, 돈과 권력 같은 서슬 퍼런 우리의 일상은 시와 노래, 낭만과 사랑으로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파열하여 공중분해 될지도 모른다.
낭만이라는 말은 “Romance”에서 왔다. 로맨스, 로망스, 로망 등으로 읽히는 말을 일본 사람들이 “浪漫”이라고 썼고 이 한자를 우리는 우리 발음대로 “낭만” 이라고 읽은 것이다. 이 말은 처음에는 “로마적인 것”을 뜻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본래 의미와는 다르게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또는 ‘사랑에 관련된’ 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낭만적인 것, 즉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것 또는 사랑에 관련된 것이야말 로 우리가 평소에 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업무의 핵심이기도 하다. 잘 구성된 커뮤니케이션, 잘 만들어진 광고 또한 대체로 정서적이고 감정적이며 사랑에 관련된 것이고 그래야 소비자들에게 공감이 된다.
지난해 애플은 신제품 아이패드 에어(i Pad air)를 출시하면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명대사 일부를 광고에 인용했다.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화려한 연극이 계속되고 네가 시 한편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여러분의 시는 어떤 것이 될까’
더 가벼워지고 더 날렵해지고 기능이 더 좋아졌다는 설명은 없다. 휘트먼의 시를 인용하면서 마지막에 ‘어떤 상황이던 당신의 한 줄/삶 그리고 i Pad’ 라는 카피 한 줄로 마무리한다. 제품 특성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아이패드가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하드웨어 적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이 먹힌다는 것을 애플사례에서 볼 수 있다.
요즘 소비자들은 자신이 마케팅의 타겟이 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자기 자신이 컨트롤 당하고 싶지 않을 뿐 더러 소위 마케팅에 엮이는 것을 꺼린다는 말이다. 반면에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것에는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따라서 기업들이 직접적인 메시지는 숨기고 간접적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감성적 어프로치 수법을 쓰는 것이 트랜드가 되었다. 그래서 감성, 또는 이야기를 파는 시대라고 한다. 소비자는 제품이 아니라 이야기를 산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제품, 가격, 유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기업의 독점적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의 보급으로 정보환경이 평등해지고 누구나 쉽게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되면서 시장에서의 파워가 소비자한테 넘어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어떻게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것 인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공감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공감을 부르는 감성 메시지의 힘은 정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마찬가지로 통한다. 최근에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한 장례식장에서 부른 노래가 SNS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찰스턴 경기장에서 열린 총기 난사 희생자 장례식에서다. “범인은 희생자 유족이 자기를 용서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 이라며 이것이야말로 ‘신의 은총’이라고 추도사를 읽어 내려가던 오바마가 잠시 침묵하더니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ging grace 놀라운 은총)’를 부르기 시작했다. 영결식장을 가득 메운 6,000여명의 추모객이 일제히 일어서 대통령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참석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뭉클했을 것이며 이 광경을 뉴스로 접한 국민들은 얼마나 깊은 감동을 받았을 것 인가. 워싱턴 포스트 지에서는 “슬픔과 은총이 뒤섞인 오바마의 특별한 날”이란 기사에서 “역대 최고의 사회 통합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인종주의라는 사회 갈등과 증오 현상을 용서와 사랑으로 바꾸는 현장이었고 대통령의 감성적인 노래로 강력한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만들 수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들의 감성을 건드려 공감을 불러내는 데 특출한 재능을 가진 것 같다. 대선 캠페인에서 마지막에 눈물을 보임으로써 재선에 성공한 에피소드도 있지만 지난 4월에는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서의 ‘분노 통역사’ 이벤트로 친근감 있는 대통령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출입 기자단과의 만찬에서 코미디언 키건 마이클 키를 분노 통역사로 대동하고 나타나 먼저 오바마가 운을 떼면 통역사인 마이클 키가 재빨리 그의 속마음을 통역한다. 오바마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백악관 출입 기자단 만찬과 같은 전통이 중요하다” 고 말하자 분노 통역사 키는 “이런 만찬은 대체 뭐냐? 내가 왜 이 자리에 참석해야지?” 하고 과장된 몸짓으로 불평하는 식이다. 연설과 코미디의 결합 형태로 쇼를 연출한 것이다. 언론인들 앞에서의 공식 만찬 연설도 유머스럽게 소화해내는 오바마의 스킨십이 대단해 보인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 풍토와 비교해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남을 쓰러트려야 내가 산다고 하는 이전투구가 난무하고 다분히 전투적인 정치로는 절대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 연설 중에 시를 읊고 논쟁 중에 유머를 섞는 그런 낭만적인 정치 분위기를 그려 보는 건 너무 먼 얘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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