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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대통령 책임이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7월16일 20시5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1시35분

작성자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메타정보

  • 38

본문

모든 것이 대통령 책임이다?

 

 

  모든 것이 대통령 책임이다. 세월호가 터져도 메르스가 발병해도 다 대통령 책임이다. 무슨 일이 터질 때 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모든 것이 대통령 책임이라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의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지라하면 누군들 감당이 되겠는가. 전지전능하시고 만물의 왕이시며 우주의 통치자인 신(神)이라면 몰라도. 신은 보이지 않으니 우리가 욕하고 떼쓰고 하소연해도 아무런 답이 없다. 차라리 대통령이 신이라면 좋으련만. 누가 뭐래도 일체의 대꾸도 하지 않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상대가 지쳐 제풀에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비판하고 한없이 요구한다. 입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판에 앞서 상대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격노(激怒)했다’고 한다. 어느 보수 언론의 유명 칼럼니스트의 말이다. ‘격노’라는 표현은 상대의 인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단어다. 매우 과격해 보이는 표현이다. 어떤 칼럼은 ‘대통령이 두렵다’고 말을 맺는다. 이 역시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거침없이 드러낸 성난 발톱은 낯설고 민망했다” 역시 비난조다. “자기가 애써 키운 새끼가 아무리 징징대도 원망하는 순간 자식은 부모를 얕잡아 본다.”며 대통령에게 무한의 인내를 요구한다. 격노라는 표현을 쓴 칼럼니스트는 “의회의 옥죄기에 비답(批答)을 내린 통치자의 표정은 상기되었고 말은 떨렸다”고 말한다. 역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다. ‘모든 것이 다 내 탓이요’ 라며 군주의 한없는 덕치(德治)를 강조하는 듯 ‘부덕(不德)의 소치는 행방불명되었다’며 대통령의 덕 없음을 훈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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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하도 뜨거워 말의 진실을 알아보고자 했다. 청와대의 유튜브 동영상을 확인했다. 지난 6월25일 제26회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모두 발언을 했다. “신임 황교안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메르스 사태를 잘 마무리고 앞으로 신종 바이러스에 잘 대처해야 할 것이다. 국회법 개정안은 역대 국회에서 논의되었지만 위헌성 여부가 계속 제기되었다. 공무원 연금 개혁법안은 졸속 처리되고 정작 중요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 등 민생법안 등은 3년째 묶여 있다. 여야가 담합하여 민생은 뒤로 하고 자신들의 이익과 연계되는 법만을 처리하고 있다.” 며 정치권을 비판하고 있다. 나아가 정치권은 법안 처리는 해주지도 안으면서 정부가 일을 잘못한다고 비판만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이 분명 있다. 그러나 이는 하소연이지 결코 협박이나 공갈이 아니다. 읍소성 발언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대통령은 ‘정치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물론 이 와중에 ‘배신의 정치’라는 말이 등장한다.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는 말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와 정치인을 심판해달라는 말이다. 정치의 존재 이유를 천명한 것이다.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이를 저버린 거짓 정치인들을 심판해 달라는 주문일 것이다. 대통령의 말은 틀리지 않다.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언론들은 대통령이 마치 제왕적 위치에서 정치인을 협박하는 무서운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동의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발생한 갈등 사태는 오히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공천권과 당내 지분 확보를 위해 벌이는 당내 세력들의 정치적 포석일 뿐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스스로도 별로 떳떳치 못한 여당 최고위원들이 그들 손으로 뽑은 원내대표를 물러나라고 다그치는 꼴이 보기 좋지 않다. 여당 내에서 친박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과잉 충성심과 그들이 노리는 효과 역시 또 다른 자기정치를 보는 듯하다.

 

여야 모두가 내홍에 쌓여 있다. 국민들은 싸움을 원치 않는다. 싸움이 그들의 계파와 지분과 이익을 위한 것일 때 더욱 그렇다. 유승민 사퇴 파동은 여당 의원들이 그들의 손익 계산에 따라 행동하면서 파장이 더욱 확대되는 듯이 보인다. 대통령의 진정한 뜻은 정부가 제대로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가 경제 살리기 민생법안을 처리해달라는 말이다. 여러 번에 걸친 대통령의 부탁과 주문에도 경제 활성화 법안들은 휴지통에 넣고, 정부의 발목 잡을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만을 반쪽 짜리 공무원 연금법과 연계 처리했으니 화가 날만도 하다. 자신이 국정 목표로 내웠던 정책들이 여당의 도움조차 받지 못해 지리멸렬한데, 책임만을 대통령에게 묻는다면 과연 그 책임은 진정 누구에게 있는가?

 

대통령의 발언 중 어디에도 원내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말은 없다. 무엇보다 정부가 일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물론 정치권과 여당 지도부에 대한 서운함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진정한 정치인을 뽑아달라는 것이다. 해석이 이리 단순하고 그렇게 순진하단 말인가? 비웃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차적이다. 확대나 과잉 해석은 종종 아전인수(我田引水)식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국회법 개정안은 위헌, 합헌의 가능성이 모두 있는 사안이다.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국회의 권한도 존중돼야 하지만 대통령의 거부권도 정당하다. 국회는 견제도 필요하지만 선출된 대통령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 역시 국민들로 부터 비난받을 것이다. 

 

대통령은 “정치권은 국민을 위해 거듭나야한다. 정치는 국민의 대변자이지 자신의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말도 했다. 상황 인식을 잘못해서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유승민 대통령 만들기’ 그룹이 움직인다고 하고, 김무성 대표 역시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행보를 보이는 마당에 더욱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대통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선거의 여왕’이란 닉네임도 있다. 여러 번 선거를 치렀고 자기 당 사람들을 당선시켰다. 그런데 그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입지 구축만을 위해 뛸 때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배신의 정치는 심판해야 한다’ 며 선거에서 옥석을 가려달라는 주문은 차라리 인간적이다. 대통령은 공공, 금융, 노동, 교육 등 4대 분야 구조개혁과 더불어 적폐를 해소하고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계속 외친다. 그렇다.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해 경제 대통령을 뽑았다.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대통령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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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분 21초.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의 길이다. 그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예술에서 기억할 만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 가 있다. 그는 ‘음악이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4분 33초 동안 피아노 앞에서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또 하나의 음악이었다. 음악은 대위법이나 화성악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는 침묵도 음악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위음악의 태동이다. 음악은 음(音)만이 아니라 묵(默)도 함께 하는 시간예술로 개념이 확장되었다. 존 케이지의 퍼포먼스는 세계 음악의 역사를 새로 쓴 행위 예술이었다. 16분 21초. 케이지의 침묵보다는 좀 더 길었던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새삼 던지고 있다. 새로운 국면 전환과 함께 우리 정치 발전의 역사를 다시 쓰는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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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1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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