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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파동이 남긴 한국 정치의 불편한 진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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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7월12일 19시3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1시54분

작성자

  • 김형준
  • 배제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석좌교수(정치학),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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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유승민 파동이 남긴 한국 정치의 불편한 진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결국 물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배신자 유승민 대표를 심판해달라고 밝힌 지 13일만이다. 유 대표는 사퇴의 변으로 "내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내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가치는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고 덧붙였다. 이 말은 박 대통령이 자신이 몰아 낸 것은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며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 가치를 훼손한 사람이고 자신은 헌법 가치를 지키려다 희생된 사람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유 대표는 자신은 “고통 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는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인 반면 박 대통령은 유신 시대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익숙한 낡은 보수라고 맞대응했다.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박근혜 대통령의 ‘6·25 국무회의’ 발언으로 촉발된 여권의 ‘권력투쟁’ '막장 드라마'가 2주 만에 막을 내렸다.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집권당 원내 대표를 몰아내는 전무후무한 일이 왜 벌어졌는가? 유승민 원내대표는 정말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를 지키려고 했는가? 유승민 사퇴 파동 이후 한국 정치의 몰락을 막을 길은 없는가? 

 이번 유승민 사퇴 파동이 발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이 국회법 재개정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권한이다. 문제는 대통령이 국무회의라는 공개된 자리에서 개인의 사적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유 대표를 배신자로 몰아세우고 심판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국회법 재개정이 삼권분립을 훼손한다고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자신은 정작 의원들이 뽑은 집권당 원내 대표를 물러나게 하면서 스스로 삼권분립을 붕괴시키는 모순적 행동을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사태의 더 본질적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갖고 있는 행정 독주적 인식체계 때문일지 모른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정치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정부 정책이 잘 될 수 있도록 국회가 견인차 역할을 해 국민이 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국회는) 정부와 정부 정책에 대해서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 비판만을 거듭해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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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발언 속에는 대통령은 행정을 맡고 정치는 국회가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묻어나 있다. 또한 정부는 열심히 하는 데 정치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행정 중심적 사고다. 정치의 최고 정점에 있어야 할 대통령이 행정만 중시하고 정치를 멀리하면 정치로 풀어야 할 일을 정치로 풀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정치권과 사사건건 대립하게 된다. 또한 대통령이 되면 과거 정치와 단절될 수 있다는 사고도 문제다. 박 대통령은 “과거 우리의 정치사를 보면 개인적인 보신주의와 당리당략과 끊임없는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뒤흔들어놓고 부정부패의 원인제공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에 국회에 입문한 5선 출신의 정치인이다. 어떻게 보면 박 대통령은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한국 정치의 한 복판에 서 있었던 사람이다. 

 

 한국 정치가 이렇게 망가지고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게 된 것에 박 대통령의 책임은 없는가. 아무리 지금은 행정부의 수장이라고 해도 자신이 과거에 몸담았던 정치를 폄훼하고 국회를 무시하면 누워서 침 뱉기가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를 향해 “꼭 필요한 법은 당리당략으로 묶어 두고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적인 것은 빅elf을 하고 통과시키는 난센스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더구나,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런 발언은 애석하게도 정부 자신의 무능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대통령은 정치권을 비판만 하지 말고 국민과 소통하고, 여당을 설득하고,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전력을 다 해야 한다.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에 리더만 있고 리더십이 없으면 정치는 반드시 실패한다. 

 

박 대통령 못지않게 유승민 원내대표도 편의주의적 원칙주의자의 모습을 보였다. 유 대표가 사퇴의 변에서 밝히 만큼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고 했으면 더욱 용기 있고 당당했어야 했다. 대통령의 잘못된  6․25 국무회의 발언에 대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했어야 했다. 하지만 유 대표는 정반대로 “박근혜 대통령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대통령께서도 저희들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시길 기대합니다.”라고 비굴할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말처럼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대통령을 향해 계급장을 떼고 한번 붙어 보자고 했어야 했다. 처음부터 꼬리를 내리니까 대통령이 우습게 본 것이다.

 

 유 대표의 또 다른 치명적 실수는 자신이 주도했던 국회법 재개정이 국회에서 재의에 부쳐졌을 때 의원들로 하여금 표결에 불참하도록 한 것이다. 헌법 가치를 그렇게 존중한다면 헌법에 명시된 대로 의원들에게 표결에 참여하라고 독려했어야 옳다. 대한민국 헌법 제40조에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제46조 2항에는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되어 있다. 국회법 제114조 2항에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더구나 새누리당 당헌 제82조 1항에 “의원은 헌법과 양심에 따라 국회에서 투표할 자유를 가진다.”는 ‘양심에 따른 투표의 자유’ 규정이 있다. 따라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재의결 표결 불참은 헌법을 무시하고 국민을 대표하는 독립적인 헌법 기관으로 자신의 의무와 책임감을 저버린 것이다.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의원들을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시키면서 어떻게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는가. 애석하게도 유 대표는 대통령과 마차가지로 자기 부정의 정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약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변명으로는 큰 정치를 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내각제로 운영되는 대통령제의 현실 속에서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면서 자신들이 뽑은 원내 대표를 박수로 추인해 쫒아냈다. 이번 유승민 사퇴파동을 계기로 당청 관계의 쇄신이 더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명,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둘러싼 논란으로 여권이 감추고 싶었던 치부들을 고스란히 노출됐다. 구시대의 수직적 당․청 관계가 입증되었고, 의원들은 자신들의 소신을 접고 계파 눈치 살피기에 바빴다. 한마디로 집권당의 무능과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세 마리 토끼는 잡는데 성공했다. 국회법 재개정은 폐기됐고, 배신자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 내렸고, 김무성 대표 체제를 뿌리 채 흔들면서 무력화시켰다. 당내 비박 투톱 체제에서 주눅 들었던 친박에게 용기를 주고 결집시키는 부수 효과까지 거두었다. 그런데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 가장 큰 손실은 국민이 대통령과 함께 하지 않으면서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지난 6일 국회법 재개정이 여당의 표결 불참으로 폐기되는 날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반대하는 의견이 49.4%로, 찬성하는 의견(35.7%)보다 13.7% 포인트 높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인 지난달 29일에 실시한 조사에서 ‘사퇴 반대’가 45.8%인 것과 비교해보면 반대 여론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아졌다. 이런 조사 결과는 대통령이 위헌 논란이 있는 국회법 재개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의원들이 선출한 원내 대표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몰아낸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집권당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비춰진 것은 큰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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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대통령이 얻은 것이 배신자 척결이고 잃은 것이 국민의 마음이라면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점점 멀어지는 리더십으로는 남은 기간 동안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국민을 설득하고 정치권의 협조를 얻어 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조셉 나이 교수는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라는 책에서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기대와 실제가 일치하지 않은 때 정부를 불신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가장 큰 이유는 원칙대로 할 것 같은 기대 때문이었다. 작금의 정치 혼란 상황은 이런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유승민 파동은 끝이 났다. 이제는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증오와 비판만으로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국회와 야당을 존중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대통령이 이 약속을 온 몸으로 실천할 때다. 이를 위해 행정 중심에서 정치 복원에 앞장서야 한다. 더불어, 감정보다 감동, 대결보다 양보, 비판보다 포용, 독선보다 소통, 과거보다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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