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을 배회하는 불확실성의 유령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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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가 지난 6월 30일 IMF로부터 빌린 16억 유로를 갚지못한 채 시한을 넘겨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에 돌입했다. 이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뱅크런이 일어나는 등 그리스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었으며 유로존 탈퇴 여부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만약 그리스가 정식으로 국가부도를 선언하고 유로존에서 탈퇴할 경우 그리스에서 대규모 자금이 이탈하고 금리와 물가가 폭등하며 실업자가 급증하는 등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들 것이 확실시 된다. 거대한 폭풍과도 같은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유로화를 사용하기 못하게 되면 새로운 통화체제와 시스템을 새로 만들고 화폐를 찍어내고 도입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고, 삼중고를 겪게 될 것이다.
이처럼 명백하고도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데도 왜 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는 뱃장좋게 버티고 있는 것일까? 더 아리송한 것은 거액의 돈을 빌려주고 못받게 된 IMF의 어정쩡한 태도이다. 지난 5년간 IMF는 그리스에 밑 빠진 독에 물붓기로 돈을 빌려주다가 결국 돈을 못받게 되었지만 “공공기관에 갚지 못한 돈은 부도가 아니라 연체”라는 이상한 논리를 대면서 그리스가 부도가 아니라고 애써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빌려준 사람과 빌린 사람의 입장이 뒤바뀐 기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그리스의 독특한 지정학적 요인 때문이다. 그리스는 유럽국가이면서도 러시아의 영향력이 큰 발칸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터키 등 중동 이슬람국가들과 인접하여 문화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으며 동부 지중해 연안국가와도 가깝기 때문에 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 확산을 경계하는 미국으로서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국가이다.
유럽연합 국가들 역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해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본래부터 유로통화통합 자체가 분쟁 많은 유럽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추진된데다 만약 그리스를 축출하여 대혼란 국면에 빠져들 경우 경제난과 파국에 내몰린 그리스 사람들이 분노 때문에 유로존에 대해 어떤 극단적인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될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일단 탈퇴처리를 했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오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이 유럽연합의 고민이다. 국가부도를 선언하고 탈퇴했다가 나중에 협상을 통해 다시 돌아오는 선례를 만들어 버리면 그리스 만큼이나 국가 부채가 많고 경제가 어려운 이른바 PIGs(포르투갈, 이태리, 스페인 등) 국가들이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미국과 유럽의 정치적 고민을 잘 알고 있는 치프라스 총리가 위험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 현재 그리스의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을 상대로 정치적 쇼를 하는 것은 치프라스 총리 뿐 아니라 다른 유로존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와의 기싸움에 밀리는 모양새를 보이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버티는 수순에 들어갈 것이다. 판을 깰 수는 없고 그렇다고 기싸움에서 밀려서도 안될 때 나타나는 것은 불확실한 국면의 장기화이다. 그리스나 유로존 국가, 미국 모두가 자국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완전한 파국도, 속시원한 협상도 하지 않은 채 오래 오래 시간을 끌 것이 확실시 된다.
따라서 그리스 사태가 어떻게든 빠른 국면으로 해결되기를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불확실성의 유령이 유럽을 장기간 배회하게 되어 유럽이나 동유럽 국가들이 직접적 타격을 받고 이들 국가들과 거래하는 한국역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장기적인 악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유로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하락하여 대유럽 수출과 교역 전반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국가차원에서나 개별 기업,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이같은 정치적 함의를 이해하고 불확실성과 불황의 장기화에 대비하는 것이 그리스 사태를 보는 올바른 관전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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