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팀의 “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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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내딛는 발걸음은 누구에게나 상쾌한 경험이다. 책무의 중압에 눌린 듯 늘 피곤한 모습을 보이던 현오석 다음으로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며 뛰고 있다. 전임자보다 정권핵심과의 근접거리가 가까우니만큼 그의 추진력에 기대를 걸어볼만 하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길이 과연 어떤 길인지 궁금하다. 취임 전후 내뱉은 몇 마디로 새 경제팀의 노정(路程)과 도착지를 미리 점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취임을 축하하는 덕담을 기대반 우려반의 촌평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대중매체 보도에 따르면, 최 부총리가 언급하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이란 것이 과연 “지도에 없는” 길인지 의심스럽다.
어제(7/21) 부총리가 한은총재와 회동하고 금리인하를 종용한 것으로 보인다. 역대 경제 수장치고 중앙은행 금리조정을 당부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으니 굳이 새 길이랄 수 없다.
다음, 크게 보도되기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의 상향조정이다. 특히 LTV 규제를 70%까지 완화(인상)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주택구매의욕을 자극해 부동산 시장을 부추겨 결과적으로 내수경기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뜻이다. 해외경기가 주춤한 상황에서 적정한 수준의 내수시장 부양은 필요하다. 그러나 가계부문이 후유증 없이 감당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가계 빚이 이미 1000조원을 넘어섰으니 말이다. DJ정부시절의 가계부채 폭탄문제도 사실은 좋은 뜻에서 시작된 나쁜 귀결이었다. 리만 사태 이후 미국 경험에서처럼 주택가격 폭락 후 집 팔아도 빚 갚지 못하는 “잠수”(潛水, underwater) 상태의 집에 짓눌려 파산한 가계들이 얼마이던가? 좋은 약도 적정한도를 지나면 독이 된다.
지난 날 내수가 부진하면 부동산 카드를 만지지 않은 정권이 없었고 부작용이 없이 지나온 전례가 드물었다. 부동산 부문은 새 경제팀 여러 가지 정책조합 중 하나일 뿐이다. 여기에 지나치게 무게를 실을 일이 아니다.
아마도 대중 포퓰리즘의 인기 챠트 순위 1위는 기업 사내유보금 과세일 것이다. 국내 기업의 주식배당율이 국제적으로 최하위 수준(1.1%)이다. 기업들은 그들의 주인인 주주에게 배당금을 높여야 할 시점이 된 듯해 보인다. 배당금이 높아지면 가계(주주)의 가처분 소득 증가라는 직접 효과와 주가 상승에 따른 부(富) 증대라는 간접효과를 통해 민간부문 소비 부추김에 긍정적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재계에서는 상장주식 상당부분을 외국인 보유하고 있어 국부유출이라 엄살도 있지만, 반면에 외국인의 한국 디스카운트를 일부 해소해 증시 활성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
문제는 사내유보 과세란 방법밖에 없느냐이다. 국내 10대 그룹사들의 사내유보금 규모가 515조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전세계 굴지의 대기업들(애플, 구글 등)이 거의 예외없이 천문학적 돈을 자국내는 물론 해외 계열사에 쌓아두고 있어 관계 당국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 대기업의 경우 국내 세율이 해외보다 높아 영업이익을 국내 이체하지 않고 있다).
기업사내유보 누적의 근본원인은 뭐니 뭐니해도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신 성장 동력, 새로운 먹을거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찾는다 해도 투자소요액 규모가 엄청나고 경쟁기업에 앞서 자금을 투입해 기회를 선점해야하기 때문이다. 외국경쟁기업과의 특허로 분쟁, 제품 성능하자 소송 등 법률다툼에 대비해야하고,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에 대항하는데도 높은 자금 방어벽이 필요해 보인다. 투자실행 여부는 기업의 몫이지 정부의 소관이 아니다.
특히 대기업들이 현재 혼란 상태에 빠져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일부 그룹 총수들이 이런저런 비리로 수감되어있거나 중질환으로 입원치료 중이다. 더구나 간판 그룹 삼성과 현대는 승계문제에 걸려 있다. 경제력 편중이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장점이던 신속한 의사결정, 과감한 위험부담 등 특징이 근래에 실종된 조짐이 엿보인다. 독일 경제의 자부심인 중견기업(Mittelstand)들도 대를 이어 계승되어온 가족 기업들이라는 사실에서 시사점을 읽어내야 한다.
이러한 외부적 내지 내부적 불확실 상황에서는 기업유보금 과세 운운은 신중해야 한다. 1991년 비상장사 대상으로 도입되었다가 이중 과세 비판으로 폐지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과세보다는 인센티브로 접근함이 바람직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어려운 경제문제를 주로 경제순환 관점에서 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금리, 부동산 시장 등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현실은 순환적 문제이기보다는 구조적 문제이라고 보아야 한다.
최 경제팀은 긴 호흡으로 경제를 보아야 한다. 경제운용에 약효 빠른 처방을 기대할 수 없다. 현 정부의 구호가 창조경제가 아니던가? 기업들이 경제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열심히 뛸 수 있도록 관료들의 먹이사슬 노리개인 촘촘한 규제를 풀어주어야 한다. 최 부총리는 여의도 경험을 살려 경제입법들을 가로막고 있는 여의도 정치권의 교통체증을 푸는 것을 제 1차 책무로 삼아야 한다. 국제교역의 비교우위를 저울질해 제조업에서 불요불급한 규제를 풀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고, 특히 서비스 부문(영리 의료법인, 교육법인 등)에서 판세를 바꾸는 사람(game changer)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수첩인사 리스트 순위로 보거나 현정부 잔여기간으로 보거나 때마침 판세를 바꿀 적임자로 선택되었으리라고 본다.
과거 YS정부는 개혁을 기치로 내세워 인기몰이에 능란했다. 20여년 세월 지난 지금 여전히 남아 국민의 일상어휘로 살아있는 것은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부르는 정도의 개혁이다. 높았던 기치가 정권말기 외환위기로 무참히 꺾이었다. 박 정부는 무엇으로 남을까 고민해야 한다.
근래 세계경제의 공조화, 동조화가 흐트러지고 있다. 일부 경제 예측자들이 2017~2018년경 세계적 경제위기 도래의 징조를 조심스럽게 예고하고 있다. 빗나가기를 바라지만, 위기 유사한 사태가 엄습한다면 현재처럼 짧은 시야의 임기응변 가지고는 화를 피하기보다 화를 키우게 된다. 그러기에 비상시 대체할 무기를 미리 비축해두는 슬기를 발휘해야 한다. 중앙은행도 비상무기를 남겨둬야 하고 기업부문 재무구조 약화도 막아야 하고, 가계부채 부담을 가중화시키는 오류도 피해야 한다.
경제에는 새로운 길이 따로 없다. 모든 길은 뭇사람이 걸으면서 때로는 잘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자주 넘어지고도 한 길이다. 머리 속의 신선한 첫 눈길은 현실의 햇볕을 받으면 진창이 되고 만다.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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