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책과 두 개의 연못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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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조선시대의 큰선비이자 명행정가로서 길이 이름을 전한다. 그는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구석구석 살피는 ‘깨알행정’을 펴는가하면 하급관리들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악용하여 사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요즘말로 하자면 ‘시스템 행정’을 편 관리이기도 했다.
그 다산이 18년간 생활했던 전남 강진 다산초당의 앞 마당에는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을 대나무 통에 흐르게 하여 아래의 작은 연못에 흘러 떨어지도록 해 놓은 장치가 있는데 이 대통물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정민교수가 쓴 일침(一針)이라는 책에서 ‘이택상주(麗澤相注)’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부터다. 주역에 연원이 있는 ‘이택상주’의 이(麗)는 ‘붙어있는’, ‘짝’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두 개의 연못(澤)이 연결되어 서로 물을 대주면 영원히 썩지 않고 마르지 않는 것처럼 선비들이 서로 토론하고 상대에게 자극을 주어 함께 발전하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 선비의 집에는 두 개의 연못을 연결하는 상징물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토론과 소통을 중요시 했던 옛 선비들의 의지가 새삼스러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요즘정치, 요즘행정에 토론과 소통이 더 부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모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심의, 의결, 자문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국무회의에서도 토론이 거의 없다고 한다. ‘괜히 큰 소리내는 사람으로 비칠까봐서’ 혹은 ‘자기 부처일도 못 챙기면서 왜 남의 부처일에 참견하느냐는 비난을 받을까봐서’ 등등의 이유로 행정부처간에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장관과 수많은 배석자들이 참석하는 국무회의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른바 ‘녹실회의’(구 경제기획원의 부총리실 옆방)니 ‘청와대 서별관 회의’니 하는 관계부처 장관회의가 수시로 열려 대통령 혹은 수석장관 주재로 열띤 소그룹 토론이 벌어졌다. 찬, 반양론이 활발하게 오가고 시장의 반응을 참고하여 주요 결정이 내려지곤 했다. 이런 소그룹 토론이라도 자주 해야 하지 않는가.
열린 토론행정이 최근에 더 필요한 이유는 민간시장이 커지고 경제주체들의 수용태도가 복잡해져서 정책파장이 당초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경로를 걷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장의 글로벌화로 해외반응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정부의 결정으로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되면 외국정부가 즉각 WTO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외국기업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ISD(Investor-State Dispute), 즉 투자자의 대(對)정부 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금융개혁도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정책결정을 내려야 할 때 ‘연못과 연못’을 연결하여 충분한 토론을 거치고 예상가능한 모든 부작용에 대해 누군가가 반대의 목소리를 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정부나 기업이나 큰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대진영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 혹은 그룹을 내부적으로 만들어 이들이 제기하는 도전을 통과하도록 제도화 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진영의 역할을 맡은 사람 혹은 팀은 충실하게 반대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시장조사를 하고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기 위한 질문을 만든다. 강한 반대진영이 존재할수록 보완을 통해 완벽한 정책이 나온다.
국내에서도 마케팅이 활성화된 기업은 하나의 제품을 출시시키기 위해 내부관련자, 내부의 비 관련자, 외부의 소비자, 전문가 등 몇 개의 그룹으로 게이트(gate)를 만들어 모두 통과하도록 하고 게이트에는 기업의 고위직은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나의 제품을 시장에 내 놓는데도 이렇게 정성을 들이는데 하물며 국가전제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내놓을 때 최소한의 반대나 토론도 없이 진행되거나 국무회의가 각 부처가 실시하는 정책의 통과의례가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모든 부작용을 검토해서 내린 최종적인 행정조치와 일방적인 부처 생각만으로 강행된 조치는 그 효과와 방향성이 전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두 개의 연못을 연결하여 학문과 지혜의 물이 흘러넘치게 했던 옛날 선비의 지혜를 온고지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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