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 창조금융인가 찬조금융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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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여 미래 성장 가능성은 크지만 현재의 신용도가 낮아 자금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자는 취지의 기술금융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철학인 창조경제의 핵심 정책금융이다. 최근 금융위의 발표에 따르면, 2014년 7월에 도입된 기술신용대출은 486건, 1,922억에서 2015년 7월기준 68,581건 44.2조원으로 급속히 증가하는 가시적인 성가를 이루었다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 성장의 이면이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은행의 기술금융 신용대출은 기술신용평가기관(TCB; Tech Credit Bureau)이 작성한 기술평가등급을 토대로 대출을 실행하는 구조이다. 그렇다면 TCB 평가서의 기술력등급 평가항목은 재무제표와는 별개로 순수 기술성 및 기술경영과 연구개발능력에 중점을 두고, 보유 기술의 시장성과 사업성이 수반되는 평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 TCB는 중소기업의 보유 지식재산권과 기술 인력에 대한 양적평가에만 의존하는 구조로써 질적 차별성은 부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술평가에 신용평가에 사용되는 재무비율 항목이 다수 존재하며 그 비중 또한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어떤 현상이 발생하였나? 기존 신용등급에 의한 대출이 기술금융으로 단순히 이름만 바꿔 행해지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즉, 은행이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검증된 기존의 고객을 대상으로 TCB평가서만 발급받고 기존의 대출상품을 기술금융으로 둔갑시켜 기술금융 실적을 늘리는 것이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5년 6월말 기준으로 국내 17개 은행의 기술금융 대출 비중에서 기존 거래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5.4%나 된다. 특히, 특수은행의 하나로 기술금융의 선두주자라 평가받는 기업은행의 경우 90%가 넘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42조의 기술금융 대출 규모 중 기술에 의한 신용대출이 아닌, 담보 혹은 보증대출의 비중이 60%나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량신용등급으로 분류되는 BBB등급 이상의 기업들이 대부분의 기술금융 지원 대상인 것이다. 이들은 굳이 기술평가를 받지 않아도 낮은 금리로 신용대출이 가능한 기업들이다. 하지만, 신한은행의 경우 이런 기업들이 기술금융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기업은행도 78.7%, 우리은행도 61%를 차지한다. 고객의 입장에서도 기술금융으로 전환 시 저리의 해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TCB 평가 항목에 있어 특허 같은 주요기술자산이 없어도 상위등급을 받을 수 있다 보니, 기술과는 거리가 한참 먼 예식장, 숙박업소, 부동산임대 업체 등이 기술금융의 혜택을 받는 일도 빈번히 발생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몇몇 미팅, 회의 및 세미나에서 은행 및 정책 부서 담당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언급을 종종 들어왔다. “어차피 우리 중소기업을 돕는 일인데 뭐가 문제냐?”,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몇 개 인줄 아느냐? 그 중에서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 몇 개나 될 것 같으냐?”, “목장갑에 빨간 페인트칠도 기술이다”. 그렇다면 좋게 표현한다면 “광범위한 기술금융”, 엄밀한 표현으로는 “무늬만 기술금융”이 왜 문제인가? 첫째, TCB 평가서에 대한 신뢰성 결여다. 이곳저곳 기술금융의 이름을 빌리다 보니, TCB 평가서에 대한 수요는 급속히 증가하고, 평가 인력은 한정된 상황에서 평가서 작성에 소요되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TCB로 지정된 기관은 4곳의 한정된 인력에 불과하나, 7월 한 달간 행해진 기술금융실적건수는 5,378건이다. 늘어나는 수요만큼 기술금융 인프라 확립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이렇다보니 양질의 기술력 평가가 어렵게 되고, 평가서에 대한 신뢰성 또한 결여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은행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존의 신용등급에 의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둘째, 인센티브의 문제다. 양질의 기술력 개발 및 성공적인 사업화를 위해서는 그 기술에 대한 시장의 정당한 평가와 원활한 자금공급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 기술금융의 기술력평가 시스템 하에서는 이러한 양질의 기술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없으며, 기술력이 없는 타 중소기업과의 차별화 또한 크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중소기업들은 힘들게 기술개발에 노력할 인센티브를 상실하게 되며, 기술혁신기업의 생성과 생존이 위헙 받을 수 있다. 셋째, 기술금융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의 문제이다. 엄밀한 의미의 양질의 기술력 질적 평가가 전제되지 않은 양적확장에만 중점을 둔 기술금융이란 이름의 정책금융은, 다음 정권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둔갑하여 명맥을 잃을지도 모른다. 이미 시작부터 몇몇 금융기관에서는 어차피 다음 정권에서 끝날 기술금융에 대한 투자에 미온적이다. 기술금융 관련 직책이 대부분 임시 계약직이라는 점을 주목해볼만하다.
정책이란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이 가장 중요하다. 본연의 목적에 맞게 잘 짜인 시나리오에 의해 추진되어야한다. 기술금융은 본연의 취지에 맞게 엄격하게 실행되어야 하며, 비기술 중소기업 지원책은 다른 정책금융에 의해 지원되어야 한다. 기술개발이 대기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탄탄한 기술 중소기업의 성장이 국가경제 성장의 핵심이다. 이들의 기술개발 및 사업화를 통해서 국가 경쟁력이 향상되고,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며, 소득불균형이 완화되는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본연의 취지대로의 엄격한 집행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책의 실적을 부풀리는 찬조금융이 아니라 창조금융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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