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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70에 인턴 사원으로 입사하다
손녀 뻘 아가씨를 사장님으로 모셔야 하는 호호백발 영감님!
열정이 뻗치는 서른 살 여성 CEO와 산전수전 다 겪은 일흔 살 노인 인턴 사원간의 대결!
영화 <인턴(The Intern)>의 스토리이다. <대부2>의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상큼한 앤 해서웨이가 주인공으로 할리우드에서 명함 좀 내미는 두 배우의 절묘한 캐스팅만으로도 짐작 가는 바가 꽤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30세 젊은 여성 CEO가 운영하는 온라인 패션 쇼핑몰 회사에 채용된 70세 노인 인턴 사원의 유쾌한 에피소드를 엮어 만든 코미디 물이다. 로버트 드니로는 은퇴 이후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 중국어 공부도 해 보고 요가도 배워 본다. 꽃을 기르고 요리도 해보지만 공허한 심사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발견한 시니어 인턴쉽 프로그램! 인턴사원으로 합격한 그는 깔끔히 수트 정장을 뽑아 입고 회사 식구들을 자기 가족인 듯 보살핀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어려운 질문에 명쾌히 답하고, 여기저기 조언을 아끼지 않는 백전노장 베테랑이다. 노인의 인턴기를 소재로 다루었는데, 영화적으로도 재미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대사회의 첨예한 현상과 맞닿아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서울 시민의 평균 은퇴시기는 52.6세라고 한다. 몸은 100세 시대에 접어 들었는데 은퇴는 50대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은퇴 후 인생의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이려니와, 인생 후반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심각한, 중차대한 문제가 되었다. 제 2의 인생, 제 2의 직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60세 이상만 고용합니다
'의욕있는 사람을 구합니다.단 60세 이상인 분만 가능합니다'. 일본의 금속 부품 생산 회사 가토제작소의 구인 광고 카피다. 밀려드는 주문을 납기 내에 맞추려면 주말에 공장을 돌려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주말에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또 잔업과 휴일 근무를 시킬 경우 수당 지급에 부담이 되어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것이 노인 고용이다. 이렇게 채용된 실버 직원은 단순 지원 업무를 주말에만 하고 현역 직원은 주중에 근무하는 능력별 워크 쉐어링을 실시한 것이다. 이를 통해 365일 공장을 가동시킬 수 있었고 매출도 3배 가량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동경 외곽에 있는 치바시의 빌딩관리 용역회사 마이스타 60에 들어서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만 근무하고 있다. 이 회사는 60세 이상의 기술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고용한다. 270명 직원의 평균나이는 64.5세이고 입사 첫 해 연봉은 250만엔(한화 2,400만원)이다.
맥도날드에 가면 반백의 할아버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이 분들은 젊은이들과 똑같이 주문을 복창하고 키보드를 능숙하게 두드리며 계산을 해주고 깔끔하게 유니폼을 차려 입고 커피를 담아 낸다. 미국에서나 보던 광경이 아니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지금 자주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액티브 시니어 시대
평균 연령 76세인 할아버지들이 유럽과 대만 등을 배낭여행 하는 내용으로 화제가 되었던 <꽃보다 할배>의 주인공들이다, 나비 넥타이에 멋진 정장을 입고 은퇴 후에도 호텔리어에 도전한 어느 CEO 처럼 사회경제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노인들을 가리켜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고 부른다. 은퇴 이후에도 집 안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과 여가 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노년층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연금이나 자녀들이 주는 용돈에 의존해 살던 과거의 실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건강과 외모에 관심이 많으며 문화생활과 여행 등 여가 생활을 자주 즐긴다. 또한 사진이나 그림 등 전문적 취미생활을 위해 공부하고 인터넷이나 모바일 기기 활용법을 열심히 배우기도 한다. 일부 노인들은 온라인 동호회를 운영하기도 하고 전문가 수준의 파워 블로거로 활약하고 있는 시니어도 있다.
왜 액티브 시니어가 주목 받고 있는 것일까? 수명 연장이 가장 큰 요인이다.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생활 환경이 좋아지면서 기대 수명은 100세까지 늘어나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의 주축으로 꼽히는 베이비 부머 세대의 일에 대한 열망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2013년에 삼성 은퇴연구소가 실시한 <50대의 퇴직 후 일에 대한 인식과 욕구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1%가 계속 일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일자리를 원하고 있지만 일 할 기회가 부족해 정작 사회에 설 자리가 없다는 게 문제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퇴직 후 오랜 기간 수입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의 삶의 질은 점점 나빠지고 있으며,
자살하는 노인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시니어 인턴쉽 제도의 필요성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시니어 인턴쉽 제도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2011년에 보건복지부에서 처음 도입한 신규 사업이다. 급속한 고령화 사회에 부응하여 노년층에 경제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한 직종에서 노인을 위한 일자리를 발굴하기 위한 제도인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시니어 인턴쉽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재원을 지원하고 지자체에서 우수인력 선발과 교육을 담당하며 민간 기업이 노인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인건비의 일부를 분담하는 고용창출 모델이다. 한국 맥도날드, AJ렌터카, CJ GLS 등에서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일부의 노인에 해당하는 것이고 대부분의 노인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헤리덴트는 <2018 인구 절벽이 온다>라는 그의 책에서 "늙어 가는 세대와 관련해서는 기대 수명이 지난 수십 년간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단순한 사실을 현실적으로 자각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60대 초반에 퇴직하기를 원하지만 지금은 70대 초반까지 퇴직을 연장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 사실을 받아 들인다면 일할 수 있는 젊은 인구는 점점 줄고 은퇴해 쉬고 있는 인구는 점점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대대적인 노후 복지 위기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섞여야 시너지가 난다
캐나다의 커피전문점 팀 호튼스(Tim Hortons)에 가면 노인 종업원들이 주문을 하면서 '트리플 트리플'을 큰 소리로 복창한다. 크림 세 스푼, 설탕 세 스푼을 넣어 달라는 뜻이다. 다방 커피처럼 고소한 맛이 나는 커피다. 재미있는 것은 젊은 바리스타들과 노인 종업원이 함께 어울리면서 가게 분위기도 좋아지고 효율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다같이 힘을 합쳐 잘해 보자는 팀스피릿과 서로 존경하고 도와주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그렇다. 회사의 조직도 마찬가지다. 여성용 화장품 회사에서 구매 결정권을 여성들이 가지고 있고 여성 심리를 잘 알고 있다고 하여 여성들로만 마케팅 팀을 만들면 과연 잘 굴러갈까? 자동차 판매회사에서 패기가 있고 활동력이 왕성한 젊은 사원들로만 팀을 꾸리면 좋은 성과가 나올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남자와 여자, 기혼과 미혼, 시니어와 주니어가 적당히 섞여 있어야 분위기도 좋고 시너지도 난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조화롭게 일한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훌륭한 업무성과가 탄생하지 않을까. 고령자들의 사회활동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지역사회의 역량도 강화할 수 있는 일자리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시니어 인턴제도를 더 확대해 간다면 좋을 것 같다. 청년 일자리도 없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니어 인턴은 경험이 풍부한 반면에 인건비 측면에서 매우 저렴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것은 기본이다. 승진이나 보너스 등에 크게 영향 받지 않고 큰 욕심도 없다. 최근에 발표된 어느 언론사의 조사를 보면 해고하고 싶은 사원 1순위가 팀워크 저해 사원이고 2순위가 회사에 대해 불만이 많은 직원, 3순위가 근태 불량 사원이라고 한다. 결국 태도와 인성이 업무 역량보다 중요하다는 얘기 아닌가? 적어도 시니어 인턴은 이런 블랙 리스트에 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젊은 사원들은 기피하지만 시니어 인턴이 잘할 수 있는 업무를 분류하여 전체 직원 중에 2~3%라도 시니어 인턴을 채용한다면 어떨까. 경험, 내공, 연륜.. 그런 것에서 우러나올 수 있는 진심 어린 조언. 젊은 세대에서 나오기 힘든 부분들이 분명 그 노인들에게는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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