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 #19 : 우문태·우문옹의 업적을 탕진한 북주(北周)의 우문빈 <K>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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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서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
<67> 우문태 사망과 형의 아들 우문호(護) 집권(AD556)
서위의 안정공 우문태가 병이 들었다. 급히 형의 아들 중산공 우문호를 장안으로 불러들였다. 우문태가 우문호에게 말했다.
“ 내 여러 아들들이 아직 어린데
외적은 강하기만 하구나.
천하의 일을 네게 부탁하니 내 뜻을 이루도록 하거라.”
우문태가 AD556년 10월 4일 죽었다. 나이가 49세였다. 우문태는 영웅호걸들을 영입하고 그들을 잘 대접하였으므로 많은 인재들이 그를 따랐다. 성품이 호탕하면서 검소하여 허영을 싫어했고 정사에 밝고 유학을 숭상하면서 옛 것을 따르고 시행하기를 좋아하였다. 세자 우문각이 15세 나이로 관직과 작위를 그대로 계승하여 태사, 주국, 대총재가 되었다.
죽음을 앞둔 우문태의 간절한 요청을 받은 우문호는 지위가 높지 않았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려 했다. 우문호는 대사구 우근에게 계책을 물었다. 우근이 말했다.
“ 죽음을 무릅쓰고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날 여러 공들이 모여 의논할 때 우근이 말했다.
“ 안정공(우문태)이 아니었으면 오늘이 없었을 것입니다.
중산공(우문호)은 형의 아들과 친하고
또 직접 고탁을 받은 몸이니 군국의 일은 일단 그에게 위탁해야 합니다.”
무리들은 얼굴이 붉어지며 어쩔 줄을 몰랐다. 우문호가 나서서 확실하게 선언했다.
“ 이것은 집안의 일입니다.
저 우문호가 비록 용렬하나 어찌 형님의 부탁을 사양할 수 있겠습니까?”
우근의 압박을 받고서 모든 공경들이 우문호를 지도자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우문호는 기강을 바로 잡고 문무백관을 잘 위로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었다.
<68> 우문각의 북주 건국 : 周·齊·陳의 삼국시대 (AD557)
우문호는 주공 우문각이 아직 어리기는 하나 서둘러 주군의 자리에 앉혀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켜야겠다고 판단했다. 서위의 주군 공제 탁발곽에게 선양하라고 압박하여 제위를 물려주도록 조치했다.(AD556년 12월 30일) 우문각은 나라 이름을 주(북주)로 정하고 도읍을 장안에 두었다. 이로써 AD383년 탁발규에 의해 건국된 북위는 173년 만에 완전히 멸망했다. 이제 중국은 북제, 북주, 그리고 양(곧 진으로 바뀜)의 삼국으로 분할되는 시대가 열렸다.
우문각은 천왕에 올랐고 이필을 태사, 조귀를 태부 및 대총재, 독고신을 태보 및 대종백으로 임명했다. 우문호는 대사마로 병권을 장악했다. 북주의 여덟 명의 공신을 8주국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우문태를 비롯하여 독고신, 조귀, 왕(원)흔, 이필, 이호, 우근, 후막진숭이다.
조귀와 독고신은 8주국으로써 우문태와 버금가는 중신이었으므로 우문호가 정권을 장악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깊었다. 조귀가 나서서 우문호를 죽이려고 했으나 독고신이 나서서 말렸다. 우문씨 일가인 우문성이 그 사실을 우문호에게 알려 조귀는 죽고 독고신은 관직을 면제시켰다.
<69> 우문각의 쿠테타 시도 실패(AD557)
우문각은 열다섯의 나이였지만 총명하고 과단성도 있었다. 따라서 사촌 형 우문호가 병권과 정권을 모두 장악하는 것이 못 마땅하기도 했다. 이식이라는 사람과 손항도 우문태 시절부터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우문호가 실력자로 등장하면서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먼저 이식과 손항이 우문호를 참소하는 글을 올렸다.
“ 우문호가 조귀를 죽인 이후 권위가 너무 커져서
권신들과 오래된 장수들이 다투어 그에게 붙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정치현안이 모두 그에게서 결정되고 있으니
장차 신하의 도의를 지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둘러 도모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문각도 같은 생각이었고 을불봉과 하발제도 그 계획에 동조했다.
“ 돌아가신 밝으신 선왕께서는 이식과 손항에게 정사를 맡기셨는데
지금이라고 그 두 사람이 정사를 못 맡을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 우문호가 집권하여 스스로 주공이라고 설치고 있지만
신들이 듣기에는 주공이 섭정을 7년 했다고 하지만
폐하께서는 어떻게 이런 식으로 굽신 거리며 칠년을 버티시겠습니까?
우문각은 은밀하게 군사를 끌어들여 우문호를 체포할 차비를 했다. 이식은 장광락이라는 무사를 포섭했는데 이 사람이 그 사실을 우문호에게 고해 바쳤다. 우문호는 이식과 손항을 띄어 놓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이식을 양주자사, 손항을 동주자사로 내보냈다. 우문각은 그들을 장안으로 다시 불러들일 계획을 세웠다. 우문호가 울면서 말했다.
” 천하에 어떤 지친이라도 형제를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형제가 서로 의심한다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태조(우문태)께서는 폐하가 어리시므로 제게 당분간 후사를 부탁하셨습니다.
신은 오로지 국가와 우리 가문을 위해 팔과 다리의 역할로 봉사할 마음 뿐 입니다.
폐하께서 만기를 챙기시면서 위엄이 사해를 떨친다면
신이 죽는 날이 새로 태어나는 해가 될 것입니다.
다만 신이 제거된 후 간악한 무리들이 정권을 농단하고
사직을 뒤엎는다면 어떻게 태조(우문태)를 다시 뵙겠습니까.
간사한 신하들에 현혹되어 골육을 버리는 일을 하지 마옵소서.“
우문각은 우문호의 간청대로 이식과 손항 무리를 불러들일 계획을 접었지만 속으로는 우문호의 저의를 깊이 의심했다. 우문호가 크게 염려를 하지 않는 동안 반란세력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우문호 체포 작전을 세워 나갔고 장광락은 그 정보를 낱낱이 우문호에게 고해 바쳤다. 우문호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주국 하란상, 영군장군 울지강 등을 불러 대책을 의논했다. 그들은 우문각을 폐위할 것을 건의했다. 울지강은 황제의 호위를 맡고 있었는데 우문호는 울지강에게 궁궐로 들어가 회의를 하는 척하면서 을불봉을 체포하도록 지시했다. 울지강은 을불봉을 우문호 집으로 압송했다. 우문호는 하란상을 우문각에게 보내 강제로 폐위시킨 다음 우문각의 옛 사택에 유폐시켰다. 그리고 우문태의 장자인 우문육을 후계자로 내세웠다. 신하들은 이 문제가 우문씨의 가정 일이므로 따로 다른 의견이 없다고 발을 뺐다. 을불봉과 손항은 체포된 뒤 처형당했다.
하남 영보에 주둔하고 있던 주국대장군 양평공 이원과 그 아들 이식을 소환했다. 이원은 한참 고민하다가 소환에 응하기로 했다. 반역으로 몰리기보다는 죽더라도 충신으로 죽자는 판단이었다. 우문호는 평소의 평판과 공로를 존중하여 될 수 있으면 이원을 다치지 않게 하고 싶었다. 이원 스스로 반역을 일으킨 아들 이식을 조용히 처리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원은 아끼는 아들 이식이 모의에 가담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자 그 말을 믿고 오히려 당당하게 우문호에게 나타났다. 분노하고 당황한 우문호는 당장 우문각과 이식을 대질시켰다. 이식은 그때서야 거짓이 통하지 않음을 자각하고 사죄했다. 그 아버지 이원은 평상에 머리를 내려치면 아들의 말만 믿은 것을 사과했다.
” 상황이 그런 것을 보니 진실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이원은 오래 전 동생 이목이 자신에게 이식이 가문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할 것이니 제거하기를 여러 번 경고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문호는 이식을 처형하고 이원에게도 자살을 명하였다. 이식의 다른 동생들도 같이 죽임을 당했다. 유폐되었던 우문각도 자객을 보내 시해하였다. 그리고 영도공 우문육이 천왕의 자리에 올랐다.(AD557년 9월 28일)
<70> 고양의 형제 핍박(AD557)
북제에는 떠돌아다니던 풍문이 있었는데 장차 북제를 망하게 할 사람은 검정 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고환(欢)은 검은 옷을 입고 다니던 승려들을 생전에 만나지 않았다. 고환이 죽고 고양이 집권하고 나서 주위에게 물었다.
” 무슨 색이 가장 검은가?“
주위에서는 칠그릇이 가장 검다고 답변했다. 고양은 ‘칠그릇’의 칠이라는 음이 숫자 일곱의 칠과 음이 같으므로 자신의 형제 중에서 일곱 번째 아들인 고환(渙)이 그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고양은 사람을 보내 업에 있던 고환을 진양(태원)으로 소환했다. 고환은 사람을 죽이고 도망쳤지만 결국에는 붙잡혀 왔다.
고양이 태원공으로 있을 적에 자주 콧물을 흘렸는데 바로 밑의 동생 영안왕 고준이 주변에 이렇게 말했다.
” 어찌하여 둘째 형님(고양)의 콧물을 닦아드리는 사람이 없는가?“
고양은 자신이 콧물을 흘리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고준을 괘씸하게 생각했다. 고양이 황제가 되고 자주 술에 취하여 행패를 부리자 고준은 가가운 사람들에게 말했다.
” 둘째 형님은 술 때문에 실덕을 많이 하신다.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그것을 제대로 간하는 사람이 없으니 걱정이다.
특히 적국 북주가 버티고 있으니 더 걱정이다.
말을 타고 가서 급히 말씀을 드리고 싶어도
폐하께서 제 말을 들으실지 모르겠다.“
고양은 이 말을 전해 듣고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침 고준이 들어와 고양과 같이 동산을 거닐면서 고양이 옷을 벗어 던져버리자 고준이 놀라서 말렸다.
” 이런 행동은 인주가 마땅히 하실 일은 아닙니다.“
고준은 양음을 불러서 황제의 처신에 대해 절절히 간언하지 않는 것을 힐책했다. 양음은 그 사실을 고양에게 고해 바쳤다. 자신의 근거지인 청주로고준이 돌아가서 다시 편지를 올려 고양의 처신에 대해 간절하게 충언을 올렸다. 고양은 참지 못해 고준을 불러들였다. 고준 또한 병을 핑계로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고양은 직접 가마를 타고 고준에게로 가서 잡아들였다. 그리고 고환이 갇혀있는 철창 감옥에 같이 가두었다.
<71> 북제 북예주자사 사마소난이 북주에 투항(AD558)
북예주자사 사마소난은 날로 심해지는 고양의 횡포와 포악함이 걱정됐다.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면 자신도 위태로울 것은 뻔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처가 고환의 딸이었으므로 고양은 처남이기도 했다. 사마소난은 몸을 극도로 낮추고 주민의 환심을 사는데 주력했다. 그런 모습을 본 처 고씨는 그 사실을 북제 조정에 고해 바쳤다. 사마소난의 당질 사마서도 어사중슨 필의운과 사이가 안 좋아서 북제 조정의 의심을 받고 있었다.
자신의 동생 고환과 고준을 가두는 마당에 매제인 자신을 가두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불안을 느낀 사마소난은 측근을 장안에 보내 북주에 망명할 것을 은밀히 타진해보도록 했다. 북주 조정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북예주는 지금의 하남 형양 땅으로 북주와 북제가 경계를 이루는 핵심 요충지였다. 북주에서는 주국 달해무와 대장군 양충과 기사 5천을 보내 사마소난을 영접했다. 북주에서는 사마소난에게 소사도라는 직책을 내렸다.
<72> 고양의 만행(AD558)과 분투하는 동생 고연(AD558)
고양의 명령으로 2년 만에 완성한 삼대(세 개의 거대한 누각)를 시찰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양은 장난삼아 칼로 도독 울자휘를 찔렀는데 그가 죽고 말았다. 상산왕 고연은 형 고양의 주벽이 과도하다고 크게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 그 순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 네가 있다고 이 좋은 술을 어찌 금할 수 있을까보냐.“
고연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한참 지켜보던 고연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술잔을 땅 바닥에 팽개치며 말했다.
” 네가 나를 극도로 혐오하는 것 같으니
이것이 모두 술 때문이다,
앞으로 술을 내게 가져오는 사람은 목을 칠 것이다.“
그리고는 사용하던 모든 술잔을 부셔버렸다. 그런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고양은 똑같은 주벽을 반복하였다. 고연이 다시 한 번 간언을 올리려고 준비했지만 친구 왕희가 극구 말리는 바람에 멈추었다.
상서령 고연은 고환의 여섯 째 아들로 엄정하고 강단이 있었다. 조그마한 잘못도 종아리 채찍을 때릴 정도로 규율이 세었다. 고양은 그런 고연을 싫어했다. 고연에게 맞거나 질책을 받은 사람들을 다 세워 놓고서 칼로 위협하면서 고연의 잘못을 지적하라고 윽박질렀지만 아무도 고연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다. 결국 고양은 고연을 방면했다.
고양은 고연이 왕희에게 독촉하여 간언을 올린다고 의심하여 죽일 참이었다. 고연이 왕희를 불러서 말했다.
” 왕 박사, 내가 한 사건을 만들어
나도 살고 자네도 사는 계획을 만들었네.
내일 내가 자네의 몸에 피멍이 들도록 내려치는 일이 있을 걸세.
자네는 끝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게“
다음 날 고연은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에 왕희에게 20대의 채찍질을 내려쳤다. 황제 고양은 몹시 화가 났지만 왕희가 매를 이미 매를 맞았으므로 죽이지는 않았다. 머리를 깎게 한 다음 갑방에 배치하여 갑옷을 만들게 하였다. 고연 또한 간쟁한 것을 이유로 매질을 당하고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할 지경이었다. 고양과 고연의 생모가 누태후가 울면서 부르짖었다.
” 만약 이 애기(고연)가 죽는다면 이 늙은 에미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
누태후는 직접 고연에게 가서 조금이라도 먹어서 원기를 찾으면 장차 왕희를 구해 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마침내 고양이 어머니의 간청을 받아들여 왕희를 풀어주었다. 고연은 왕희를 붙들고 울면서 말했다.
“ 내 호흡이 멈출 것 같았는데 다시는 자네를 못 볼줄 알았다.”
왕희가 대답했다.
“ 어찌 천도신명께서 전하를 집에서 죽게 하겠습니까. 지존이 친 형님이시고
누태후께서도 음식을 드시지 않고 계시니
전하께서 누태후를 조금이라도 생각하신다면 서둘러 음식을 드셔야 할 것입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연은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었다. 고연은 녹상서사로 복직되었고 관직에 새로 제수된 모든 관료들이 고연의 집에 문안차 들렀지만 왕희의 권고를 받아들여 일절 인사를 받지 않았다. 고연이 왕희에게 부탁했다.
“ 주상이 기거가 일정하지 못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오.
하지만 일전에 내가 노여움과 질책을 받았다고 해서
주상에 대한 간언을 중단할 수는 없소.
그대가 글의 초안을 써 주면 내 시간을 봐서
다시 극력으로 간언을 올릴 것이오.”
왕희는 고연을 위해 열 가지 일을 조목조목 바치면서 말했다.
“ 지금 나라와 조정에서 믿을 것은 오직 전하 뿐 입니다.
하나 오직 필부의 절개만 가지고 무작정 나서시면
조정과 사직이 위태로움을 경시하시면 안 됩니다.
광약(미치게 하는 약,즉 술)은 사람을 마비시키는데
칼이나 활이 어찌 형제간의 우의를 알겠으며,
하루 아침에 이치를 거스리는 화가 닥칠 것입니다.
전하의 가업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며 황태후는 누가 보살필 것입니까?”
고연이 흐느끼며 말했다.
“어찌 이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그 다음날 고연이 왕희를 붙들고 말했다.
“ 내 어제 깊이 생각해 봤는데 지금 중지하는 것이 옳겠네.”
즉시 왕희가 써준 열 가지 간언 요목종이를 불태워버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고연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옳은 말을 올리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도리요 나라에 대한 도리이며 가문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고양은 장사를 시켜 고연을 뒤로 묶은 다음 번득이는 칼로 위협하며 말했다.
“ 이렇게 시킨 것이 누구냐?”
고연은 이렇게 말했다.
“ 천하 사람들이 다 알면서도 말을 하지 않기에 제가 나선 것입니다.
제 스스로가 아니면 누가 시킬 사람이 있겠습니까.”
고양은 동생 고연에게 수십 대의 장을 내려쳤다. 고양이 술기운에 나 자빠지는 바람에 고연은 죽음을 면했다.
고양은 여러 친척집을 드나들며 황음한 짓을 벌였지만 오직 상산왕 고연의 집 부근에서는 정신을 차리고 허툰 짓을 하지 않았다. 상서좌복야 최섬은 조정에서 가장 자주 간언을 올린 사람이었는데 고연이 최섬에게 말했다.
“ 지금 누태후께서 잠자코 계시고
우리 형제들도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소,
오직 좌복야께서 범안(犯顔: 황제 면전에서 간언올림)하여
안팎 사람들이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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