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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 #19 : 우문태·우문옹의 업적을 탕진한 북주(北周)의 우문빈 <D>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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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10월07일 16시50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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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서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19> 이주조와 고환의 광아(하북성 융요) 대전(AD531)

 

고환의 참모 손등이 고환에게 주군을 세우지 않으면 영이 서지 않으므로 서둘러 황제를 세우자고 강청했다. 고환은 장무왕 원융의 아들 안정왕 원랑을 황제로 세우고 신도성 서쪽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원(탁발)융은 탁발황의 증손자로 AD526년 9월 갈영과의 전투에서 죽었다. 고환은 시중, 승상, 도독중외제군사가 되어 북위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다.

AD531년 10월 13일 이주중원과 이주도률은 곡사춘, 하발승 가현지와 더불어 대군을 이끌고 올라와 양평(하북성 관도현)에 진을 쳤다. 이주조는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여 광아(하북성 융요)에 주둔했다. 고환은 반간책을 써서 이주조 군영에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 이주세륭이 이주조를 죽일 계획이다.“

 

동시에 이주중원의 군대 속으로는 이런 말을 퍼뜨렸다.

 

  ” 이주조가 고환과 함께 이주중원을 죽일 것이다.“ 

 

이런 소문이 돌자 이주조군대도 내려가지 못하고 이주중원 군대도 올라오지 못했다. 이주중원은 하발승과 곡사춘을 보내 사실이 아니며 헛소문이라고 타일렀다. 이주조는 기병 300을 이끌고 이주중원 군막으로 들어와 상황을 확인하였지만 이주중원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말을 돌려 돌아갔다. 이주중원은 하발승과 곡사춘을 급히 보내 오해라고 설득하려했지만 이주조는 두 장수를 잡아 가두어버렸다.     

고환은 이주조의 대군을 걱정하여 싸움을 망설이고 있었다. 부장 단소가 이렇게 말했다.

 

   ” 군사 무리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사력을 얻는 것이고 

     그들이 강하다고 하는 것은 천하의 마음을 얻는 것

     (所谓众者,得众人之死;所谓强者,得天下之心)입니다.

     이주씨가 천자를 시해하였고 공경신하들을 도륙하였으며

     백성에게 포학하여 대왕께서 군사를 일으키신 것이어서

     마치 끓는 물에 눈을 들이대는 것과 같은데

     어찌 그들에게 강성함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걱정이 된 고환이 말했다.

 

  ” 적은 수를 가지고 큰 것을 대적하니 

    하늘의 명령이 없으면 움직이기 어렵다.“ 

 

단소가 다시 강조했다.

 

  ” 제가 듣기에 ‘

    작은 것이 큰 것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작은 것이 정도이고 큰 것이 음란할 때다‘(小能敌大,小道大淫)하였습니다.

    또 하늘은 가까이 하는 사람이 없고 오직 덕망이 있는 사람이 돕는다’

    (皇天无亲,唯德是辅)고 하였습니다.

    이주씨는 천하를 어지럽히고 안으로 영웅들의 마음을 실망시켜서

    지혜로운 사람은 그들을 돕지 않고 

    용맹한 사람은 그들을 위해 싸우지 않아서

    이미 인심이 물러났습니다.

    어찌 하늘의 뜻이 돕지 않는 것이겠습니까?“

 

고환은 적은 군대를 가지고 광아에서 이주조의 대군을 격파하고 갑병 5천을 포로로 잡았다.

 

<20> 곡사춘과 하발승의 이주씨 제거 모략(AD532)

 

인심을 크게 잃은 데다 같은 이주씨 종족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본 곡사춘이 비밀리에 하발승에게 말했다.   

 

  ” 저렇게 민심을 잃은 사람에게 우리가 채용되어있으니

    우리 미래도 며칠 남지 않은 것 같소.

    그들을 도모함만 못하지 않겠소?“

 

하발승이 말했다.

 

  ” 이주조와 이주천광이 각기 한 지방을 거느리고 있으니 

    그들을 하나 하나 제거하려면 매우 어렵지 않겠소?“

 

곡사춘이 말했다.

 

  ” 그 문제라면 쉬운 문제요. “ 

 

먼저 이주세륭을 설득하여 이주천광이 고환을 공격하도록 움직이게 했다. 걱정에 싸인 이주천광이 하발승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묻자 하발승은 고환은 형편없는 군대라서 이주씨가 마음을 합하기만 하면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다. 다만 지금은 이주씨 의견이 서로 다르므로 먼저 관중(서안부근)까지 가서 근거지를 견고히 한 다음에 기다렸다가 힘과 마음을 합하여 고환을 공격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주천광은 듣지 않았다. AD532년 3월 이주천광은 군대를 몰고 장안을 떠나고, 이주조는 진양을 출발하고 이주도률은 낙양, 이주중원은 하남성 활현을 출발하여 네 갈래 20만 대군이 고환이 있는 업으로 집결하였다. 이주천광의 대군은 하북성 안양시 주변 원수(洹水)를 끼고 진을 쳤다.  

 

고환은 이부상서 봉륭지에게 업성을 맡기고 업성 서부에 군진을 펼쳤다.(AD532년 윤3월19일) 고환의 군대는 다 합해도 3만을 넘기지 못했으므로 숫적으로 불리했다. 둥글게 진을 치는 원진을 만들고 죽기를 각오하고 20만 대군을 맞이했다. 이주조가 고환에게 배반했다고 나무라자 고환이 답했다.

 

  ” 원래 군대를 일으킨 것은 황실을 돕자는 것이었다. 

    지금 천자(죽은 원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주조가 말했다.

   ” 영안(원자유)이 천주(이주영)를 억울하게 해서 내가 복수한 것 일 뿐이다.“

 

고환이 외쳤다.

 

  ” 내가 예전에 천주장군의 계책을 들었을 때 너도 거기 서 있었지 않느냐.

    천주장군이 배반한 것을 왜 모르느냐.

    그리고 주군이 배반하는 신하를 죽인 것이 어찌 복수의 대상이 되느냐.

    오늘부터 의리를 끊을 것이다.“

 

이주조와 고환이 결전을 펼쳤다. 고환은 중군을 맡고 고오조는 좌군, 고악은 우군을 거느렸다. 처음에는 고환이 불리했으나 고악이 500기병으로 이주조의 예봉을 꺾었고 곡률돈은 흩어지는 군사를 모아 이주조의 배후를 쳤으며 고오조가 천명의 기병으로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이주조를 율원에서 대패시켰다. 이주조의 부장 하발승과 두덕은 고환에게 투항했다. 이주조는 진양으로 퇴각했고 이주중원도 활현으로 돌아갔다. 이주언백은 군사가 패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물려 황하대교를 지키자고 건의했으나 이주세륭이 허용하지 않았다.   

 

고환의 대도독 곡사춘은 이 기회를 타고 이주씨를 절멸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두 배의 속도로 군사를 몰아 낙양으로 진격했다. 곡사춘은 황하대교 북쪽 성문을 지키고 있던 양숙연을 거짓으로 설득하였다.

 

  ”  이주천광이 서쪽 사람이므로 낙양을 약탈하고 

     도읍을 장안으로 옮기려고 생각하고 있소.

     나를 받아들여 그것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오.“

 

양숙연은 곡사춘의 말을 믿고 그의 군사를 받아들였다. 곡사춘은 성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황하대교를 장악한 다음 이주씨 군사를 모두 죽였다. 이주천광과 이주도률이 군사를 시켜 곡사춘을 공격하였으나 큰 비와 지친 몸 때문에 이길 수가 없어서 곡사춘의 군대에게 사로 잡혔다. 곡사춘은 바로 장수 가현지와 장환을 기병과 함께 낙양으로 들여보내 이주세륭을 기습 체포하였다. 달아나던 이주언백도 사람들에게 잡혀 들어왔다. 낙양 서문 밖에서 이주세륭과 이주언백의 목을 벤 다음 잡힌 이주천광과 이주도률과 함께 고환에게 보냈다. 이주천광의 장수 후경이 안정왕에게 항복했고 이주중원은 양나라로 투항했다.  이로써 이주씨 세력은 완전히 소탕되었고 고환이 주원의 새 강자로 군립하게 되었다.

 

<21> 고환이 절민제 원공의 폐위(AD532)

 

이주천광은 고환을 치려고 했을 때 동생 이주현수를 장안에 남겨두고 진주자사 후막진열과함께 동쪽 낙양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주천광의 부장 하발악은 반드시 패할 것을 알고 후막진열을 남겨두게 한 다음 이주현수를 처치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발악의 부하 우문태가 하발악에게 말했다. 

 

  ” 이주천광이 가까이 있고 또 후막진열은 아직 반란의 생각이 없습니다. 

    후막진열의 부하들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도록 설득하면 

    자연스럽게 행군속도도 더뎌지고 또 이준천광의 의심도 사게 되어서

    후막진열이 결국 모반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하발악은 기막힌 책략이라고 생각하고 우문태를 후막진열의 군영 안으로 들여보내 군사들을 설득하였다. 후막진열이 마침내 생각을 고쳐서 하발악과 함께 장안을 역공하여 이주현수를 사로잡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AD532년 4월 18일 고환은 절민제 원공과 함께 낙양의 북쪽 망산에 도착했다. 그러나 크게 성공한 고환은 원공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이 없었다. 황족으로서의 계보가 멀기도 하고 민심이 어떻게 따라 줄지도 걱정이었다. 따라서 측근들에게 이주씨가 세운 절민제 원공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보도록 지시했다. 고환의 측근들은 절민제의 생각과 학식이 범상치 않으므로 장차 통제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교체하기를 바랐다. 고환이 백관을 모아놓고 의견을 물었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기무준이 나서서 절민제가 현명하다고 크게 칭찬했다. 고환의 측근들은 현명하기로 따진다면 고환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오랑캐가 추대한 사람이 어떻게 황제가 되느냐고 반박했다. 고환은 절민제를 숭훈불사에 유폐했다. 

 

이주씨를 무너뜨리는 계략을 짰던 곡사춘이 하발승에게 말했다.

 

  ” 지금 천하의 일은 나와 그대에게 있을 따름이요.      

    먼저 다른 사람(고환)을 제압하지 않으면 곧 제압당할 것이오.

    고환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 도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소.“

 

하발승이 말했다.

 

  ” 계획은 우리가 세웠으나 큰 공로를 세운 것은 그(고환)요.

    그를 해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할 것 같소.

    그와 며칠을 함께 묵었는데 

    그가 공을 높게 생각하며 고마워하고 있소.

    걱정이 너무 지나친 것 같소.“

 

곡사춘은 고환을 제거할 생각을 접었다. 고환은 원공을 대신할 종친을 물색하다가 숨어있던 전 상서좌복야 평양왕 원수를 모셔왔다. 그는 원굉의 손자이고 효명제 원후의 사촌동생이었다. 황실 적통에 가장 가까운 종친이었으므로 원공을 설득하여 양위하게 하고 원수를 황제로 모셨다.(AD532년 4월 25일) 이 사람이 효무제 출제다. 폐위된 절민제 원공을 전폐제라고도 한다. 고환은 대승상, 천주대장군, 태사가 되었고 정주자사를 겸하였다.

 

<22> 하발악, 고환의 소환 거절(AD532)

 

낙양에 들어와 옛 황제 원공을 폐하고 새 황제 원수를 세운 고환은 기주(하북성 기주 부근)자사 하발악을 징소했다. 하발악은 이주천광과 함께 행동한 사람이었으므로 들어가면 죽을 지도 몰랐다. 하발악이 망설이면서 양에 투항할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설효통이 말했다.

 

  ” 고환은 지금 안에서 영웅호걸을 어루만지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공과 군사를 가지고 다툴 계제가 아닙니다.    

    또 관중의 여러 세력들은 공에게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쉽게 손발을 묶어서 다른 사람에게 통제를 받으려고 하십니까?“

 

하발악이 말을 끝내지 않은 설효통의 손을 잡고 말했다.

 

  ” 그대의 말이 참으로 옳소.“

 

하발악은 고환의 부름에 겸손한 말로 응하지 않고 자신의 영토 기주를 굳게 지키기로 했다. 고환은 군대를 이끌고 정주(도읍은 업)으로 돌아갔고 잡혀있던 이주천광과 이주도률의 목을 베었다. 북위 황제 원수는 유폐된 절민제 원공을 독살하고 원흔을 태사, 원심을 태보, 원보거를 태위, 원단을 사공, 그리고 장손치를 태부로 임명했다. 고환은 천주대장군을 극구 사양했다.

 

<23> 고환의 이주조 소탕(AD532-AD533)

 

이주씨 무리 중에 아직 제거되지 않은 세력은 태원을 중심으로 활약한 이주조였다. 북위 조정에서는 대도독 고적간과 표기대장군 고륭지의 10만 대군이 이주조를 토벌했다. 고륭지는 고환과 만나서 함께 이주조 군대를 격퇴시켰는데 이주조는 수용(산서성 삭주)으로 도망쳤다.

이주조가 다시 노략질에 나서자 고환은 반격한다고 하면서도 군사를 중지시키기를 여러 번 하였다. 우둔한 이주조는 고환의 군사가 겁을 먹고서 싸울 생각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방비를 게을리 하였다. 고환은 이주조가 연초 연회를 열 것을 고려하여 급하게 선발대를 파견한 다음에 대군을 이끌고 뒤를 이어갔다.(AD532년 12월)    

다음해 초 고환의 장수 두태가 연회를 열고 나태해 있던 이주조를 급습하였다. 궁산으로 도망갔던 이주조가 좌우에 명하여 자신의 목을 자르고 투항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그러지 못하였다. 결국 이주조는 자기가 타던 백마를 죽이고는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고환은 이주조를 후하게 장례를 치렀다. 이주조의 졸병들과 이주영의 처자를 거느리고 있던 모용소종은 고환에게 투항했는데 평소 그가 의로웠으므로 고환이 후하게 대해줬다. 그리고 이주조가 수용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고환과 내통했으나 그러지 않은 장량의 절개를 가상하다고 여겨 자신이 있는 승상부의 참군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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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곡사춘의 고환 제거모의(AD533)

 

투항한 이주중원의 참모 교령과 장자기를 고환이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시중 곡사춘이 매우 불안했다. 곡사춘은 조금 전까지 고환을 제거할 생각을 가지고 하발승과 의논을 했던 사람이었다. 곡사춘은 원보거, 원비 왕사정 등과 함께 북위 황제 원수를 움직여 고환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황궁 내에 도독부곡을 설치하여 무사 수백 명을 추가로 엄선하여 수행병으로 삼았다. 황제와 마음이 맞은 곡사춘은 황실과 온갖 정무를 장악했고 군사는 하발악에게 관중대행대, 그의 형제 하발승에게 도독삼형등칠주제군사라는 직책을 주어 고환을 견제하도록 했다. 당시 신도에 있던 시중 고건이 부친상 때문에 사직하자 황제는 그것을 허락함과 동시에 고환을 제거할 의사를 밝히고 동참하는 언약을 얻어냈다.  

   

황제가 궁내에 도독부곡을 설치하고 고환제거 작업을 착착 진행하자 고건은 마침내 친척들에게 황제와 곡사춘과 하발악과 하발승과 완사정과 원사필의 무리들이 연합하여 고환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고 고환에게 알리도록 했다. 고환은 그 사실을 듣고서 고건을 병주로 불러 면담을 했다. 고건은 이참에 황제로부터 선양을 받으라고 권했지만 고환은 펄쩍 뛰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리고는 황제에게 고건을 시중에 복직시켜 줄 것을 요청했지만 황제는 거절했다. 

 

고건이 서주자사직을 얻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결국 서주자사가 되었다.   

 

고건이 서주자사로 나갈 때 황제는 고환제거 계획이 드러난 것을 깨닫고 고환을 불러서 고건이 자신과 함께 고환을 제거하기로 한 약속을 했다는 사실을 고환에게 알려주었다. 매우 불쾌한 고환은 고건과 교환한 모든 서신을 황제에게 보여주었다. 황제는 다시 고건을 소환하여 고환제거 소식이 누설된 것을 꾸짖었다. 고건이 이렇게 반문했다. 

 

  ” 폐하께서 스스로 서기 위해 변란을 꾸미신 것인데

    신하더러 반역을 했다고 꾸짖으십니다.

    주군이 죄를 내리니 누가 거역하겠습니까?“

 

사약을 받고 고건이 죽었다. 황제는 동시에 동서주자사 반소업에게 고건의 동생 고오조를 죽이라고 지령을 내렸는데 고오조는 형이 죽은 것과 자신을 제거하러 온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서 건장한 장사를 길에 매복시켰다가 반소업의 칙서를 훔쳐가지고 고환이 있는 진양으로 도망갔다. 고환은 머리를 싸 감고 곡을 하며 고건이 죽은 것을 애통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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