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망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 #20 : 북제 창업자 고환의 업적을 다 까먹은 아들 고담과 손자 고위 <N>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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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서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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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고연의 쿠테타(AD560)
(양음의 선수 : 고연을 집으로 내 침)
누태후는 고양이 죽었을 때 고연에게 황위를 계승시키고 싶었다. 능력도 뛰어났고 인품도 입증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은 또한 이미 나이가 열다섯이나 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친람할 수 있는 나이였다. 다만 상중에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조서를 내려 대소사 모든 정사를 삼촌인 고연과 고담에게 맡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고양의 심복이자 유조를 받은 양음은 고연과 고담 형제가 사이가 매우 가까워 장차 황제 고은의 정치에 큰 난관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결국 양음은 황제를 움직여 고연을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어떤 사람이 고연에게 이렇게 말했다.
” 사나운 맹금류가 둥지를 비우면
반드시 알을 노리는 우환이 있게 마련입니다.
오늘 어찌 왕께서 궁을 비우고 나가십니까?“
중산태수 양휴지가 고연을 위로하려고 집으로 찾아왔으나 고연은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양휴지가 왕희에게 말했다.
” 옛날 주공은 아침에 책을 100편 읽고
저녁에 선비 70명을 만나고도 부족하다고 했는데
녹왕(녹상서사이자 상산왕 고연)께서는
무엇이 두려워 빈객도 끊고 단절하시는 것입니까?“
(고연의 친구 왕희의 쿠테타 종용)
고연은 막역한 친구 왕희만을 불러 담소를 나누었다. 고연은 새로운 황제가 온화한 정치를 펴니 신하들이 모두 편안해하고 만족해하는 것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왕희가 말했다.
” 황제가 동궁으로 계실 때 흉노사람(강호아)이 스승이 되어 가르쳤습니다.
이제 나이도 어린 형편에 황제가 되셨으니
전하(고연)께서 조석으로 곁에서 도와드려야 할 텐데
이렇게 유폐되어 계시니 비록 지방으로 나가고 싶어도 그렇게 되겠습니까?
허심탄회하게 살고 싶어도
스스로 한 집안을 잘 보호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으십니까?“
고연이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왕희가 대답했다.
“ 주공이 성왕을 끌어안고 섭정한 것이 7년입니다.
그런 다음에 돌려주었으니 전하께서는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고연이 되물었다.
“어찌 나를 주공과 비교하는 것인가?”
왕희가 말했다.
“전하께서 가지고 계신 위치와 명망으로 볼 때
주공이 되고 싶지 않으셔도 그렇게 되겠습니까?”
(황제의 고민)
황제 고은은 두 친왕 고연과 고담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었다. 중요방어지인 병주를 지키게 두자니 반란을 일으킬 것이 걱정되었다. 결국 고은은 고연과 고담을 모두 데리고 도읍지 업으로 귀환하기로 했다. 왕희만 병주의 장사로 임명했다. 고연은 진양을 떠나 업으로 가면서 몰래 왕희에게 행동을 조심하라고 일러두었다.
양음은 칙서를 내려서 황군 5천을 진양에 남겨두고 만일에 대비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당시 황군은 고귀언이 책임을 맡고 있었는데 양음이 자신의 군대 5천을 따로 진양에 두고 오게 한 것으로 인해 몹시 화가 났다. 영군대장군 가주혼천화는 가주혼도원의 아들인데 황제 고은의 고모 동평공주(즉 고양의 딸)의 남편이었다. 그는 평소에 늘 이렇게 말했다.
“ 두 왕(고연과 고담)을 죽이지 않으면
어린 군주는 편안할 방법이 없다.”
네 명의 고명대신 중의 하나인 연자헌은 누태황태후가 정권을 휘두르기를 원했다. 얌음은 그동안 너무 많은 작위가 내려졌음을 고치기 위해 스스로 개부와 개봉왕을 벗어 버린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공도 없이 관작을 얻은 많은 훈신들의 공훈을 삭감했다. 양음의 이런 조치들은 당시의 어려운 조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졸지에 훈작을 잃게 된 많은 사람들은 양음을 원망하며 두 왕에게로 마음을 돌렸다. 또 다른 고명대신 고귀언도 처음에는 양음-연자헌과 한 마음이었으나 황군동원으로 이미 양음과 틀어진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고연-고담 측으로 기울고 있었다.
시중이면서 황제의 동궁 선생이기도 했던 송흠도가 황제에게 다그쳤다.
“ 두 친왕의 위엄과 권세가 이미 무거우니
당장 그들을 제거하셔야 사직이 튼튼해집니다.”
황제는 허락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 양음과 함께 그 일을 살펴보도록 하시지요.”
양음은 두 왕을 내보내 자사로 삼기를 원했지만 어진 황제가 반대할까 걱정되어 고양의 부인인 이태후와 그 문제를 상의했다. 궁인 이창의가 그 일을 알게 되었다. 궁인 이창의는 고중밀의 아내인데 이태후(고양의 부인)가 서로 성이 같아서 그를 매우 아끼며 많은 일을 알려 주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다. 이창의는 양음과 이태후가 서로 의논한 내용을 이태후에게 듣고서 누태황태후에게 고해바쳤다.
(고담의 쿠테타 실행계획)
조정에서는 두 친왕을 동시에 외지로 내 보낼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고담에게 진양을 방어하게 하고 고연은 조정 최고직인 녹상서사로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두 친왕이 임명 조서를 받고 관직을 제수 받았다. 두 친왕은 상서성의 백관들을 초치하여 축하연을 베풀기로 했다. 양음이 그 초청에 응하려고 하자 고명대신 정이가 막아서며 말했다.
“ 아직 일을 헤아릴 수 없으니
가볍게 운신하는 것이 옳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양음은 이렇게 말했다.
“ 지금까지 우리는 지극한 정성으로 나라를 보필해 왔소.
상산왕 고연이 관직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요.”
장광왕 고담은 집안 노복 수십 명에게 지시하여 연회장에 매복시켜 두었다. 그리고 고관대신인 하발인과 곡률금과도 사전 계획을 약속하고 알렸다.
“ 술을 돌리다가 양음에게 이르면 내가 두 잔을 권할 것인데
그는 반드시 사양할 것입니다.
내가 술잔을 받으시라고 두 번 권하고 그가 두 번 모두 거절하면
세 번째로 내가 왜 술잔을 안 받으시는 것이지요 라고 물을 때
행동에 나서기로 계획이 서 있습니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어 양음이 붙잡혔다.
“ 여러 친왕들이 반역을 일으켜
충성되고 선량한 사람들을 죽이는구나.
천자를 높이고 제후의 힘을 깎아서
붉은 마음으로 나라를 받드는 우리가 무슨 죄가 있느냐?”
상산왕 고연은 그들을 느슨하게 대하고 싶었지만 고담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양음과 가주혼천화와 송흠도는 모두 붙잡혀 이리저리 몽둥이로 맞아서 머리에 피가 흐르고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연자헌은 도망가다가 곡륙률광에게 체포되었고 정이는 상약국에서 붙잡혔다.
고연과 고담은 피투성이 양음 등을 데리고 궁궐로 들어갔다. 황궁으로 들어가자 황제와 태황태후와 황태후가 나란히 서 있었다. 고연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 신과 폐하는 서로 뼈와 살을 나눈 지척인데
양음이 조정권세를 독단하여 사직을 흔들었습니다.
신과 고담은 국가의 일이 중하다고 생각하여
하발인, 곡률금과 함께 양음 등의 무리를 잡아들였습니다.
아직 형벌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독단으로 처리한 죄는 백번 죽어 마땅합니다.”
황제는 말이 어눌했으므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태황태후가 무기를 거두라고 명령했지만 수천 명 군사 중 아무도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누태황태후가 고함을 질렀다.
“노복 녀석들의 머리가 떨어지고 나서야 무기를 버릴 것이야?”
태황태후는 양음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하발인이 눈알이 하나 빠졌다고 말하자 기겁을 하며 말했다.
“ 양음이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기에 그 지경이 되었는가.
살려두어서 일을 시키면 잘 할 것 아닌가?”
그리고는 태황태후는 황제를 나무랐다.
“ 이들이 반역으로 내 두 아들 고연과 고담을 죽이려고 했는데
황상은 그동안 무엇을 하셨소?”
황제는 아무 말도 없었다. 태황태후는 아들인 고은을 살피지 못한 이황태후도 나무랐다.그리고는 이렇게 고연을 두둔했다.
“ 우리 아들이 일어난 것은 오직 압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런 것일 뿐이요”
황제가 마침내 말했다
“ 이 어린 목숨을 맡기고 스스로 황위를 내려갈 것이니
숙부에게 처분을 맡기겠습니다. ”
고연은 고은은 남겨두고 그의 무리들을 모두 베어 죽였다. 태황태후는 처형된 사위 양음의 빠진 눈에 금구슬을 넣어 주었다. 홍려소경 양휴지라는 사람이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 장차 천리를 가야 할 텐데
기린을 죽이고 절뚝거리는 당나귀를 채찍질해야 하다니
슬프고 가련함이 크구나!”
고연은 대승상, 도독중외제군, 녹상서사가 되고 고담은 태부 경기대도독이 되었다.
<93> 고연의 등극(AD560)
북제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한 상산왕 고연은 대승상에 도독중외제군사에 녹상서사가 되어 군권과 행정권을 모두 꿰찼다. 주변에서는 고연에게 서둘러 황위에 오르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고연 스스로는 그럴 필요나 의욕이 별로 없었다. 양음 세력을 제거한 것은 그들의 전횡을 막자는 것이지 자신이 황제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고연의 친구 왕희는 고지식하기만 한 고연이 딱했다. 승상부의 육묘라는 사람이 사자로 파견되면서 왕희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 대승상께서 서둘러 보위에 오르도록 재촉하십시오.”
왕희는 육묘의 말을 고연에게 전해주었다. 고연이 이렇게 되 물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대위에 오르라고 한다는데
어찌 조언심은 애초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가?”
조언심은 양음이 죽고 나서 양음의 일을 맡아하던 중서령이었다. 왕회가 틈을 내어 조언심에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조언심이 이렇게 대답했다.
“ 나도 그 예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네만
입 밖으로 내기가 조마조마했었네.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입도 열리지를 않았어.
마침 그 예기를 자네가 꺼냈으니 나도 용기를 내서
죽기를 각오하고 말씀 올리겠네.”
조언심마저 황위에 오르기를 촉구하자 고연은 그 문제를 태황태후에게 말씀드렸다. 곁에 있던 조도덕은 골육간의 황위찬탈이 되는 것이라고 말렸다. 태황태후도 그렇게 판단했다. 한 참 지난 뒤 고연은 그 문제를 다시 태황태후에게 가져갔다.
“ 천하 사람들이 인심이 안정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갑자기 어떤 변고가 어디서 발생할지 몰라서 두렵다고 합니다.
서둘러 명칭과 지위를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태황태후가 마침내 결정을 내려 고은 황제를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고연을 올려놓았다. 고은은 제남왕으로 깎여 별궁에서 거주하게 하였다. 태황태후는 고연에게 당부했다.
“제남왕에게 다른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라.”
죽이지 말라는 말이었다. 고연은 진양(태원)에서 등극했다. 누태황태후는 누황태후로 깎이게 되었고 이씨황태후는 문선황후로 부르게 했다.
<94> 고연의 최측근 삼인방 : 왕희, 양휴지, 최할
고연이 황제가 되면서 오랜 왕희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고연이 말했다.
“ 경은 어찌 자주 볼 수가 없게 되었는가?
지금부터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종이에 적어 두었다가
틈을 내어 즉시 내게 달려와서 올리도록 하라.”
고연은 조칙을 내려서 상서 양휴지와 홍려정 최할과 왕희 세 사람이 매일 직무가 끝나면 황제의 침전으로 달려와서 역사, 정책, 조세, 예술, 문학 등 모든 문제를 같이 의논하고 토론하도록 했다.
고연은 식견이 높고 도량이 넓었으며 사무를 정확히 이해하고 더욱 부지런하게 정사를 돌보았다. 고양의 나쁜 정책들을 과감히 혁파했고 재정을 튼튼히 하려고 노력했다. 다만 너무 세밀한 것 까지 간섭하여 자잘하다는 비판이 따라다녔다. 고연이 그런 세평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 정말 그렇다.
생전 처음 만기를 다루다보니
빠뜨리는 것이 없을지 항상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있으면
그 때에는 또 소홀하다고 비판이 있지 않을까 두렵다.”
고연의 고종사촌 고적현안에게 고연이 이렇게 물었다.
“ 고적현안은 나의 고모의 아들인데
신하로써가 아니라 가족으로써 허심탄회하게 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적현안이 이렇게 말했다.
“ 폐하께서는 허망한 말씀을 많이 하시는 편입니다.“
고연이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고적현안이 답했다.
” 폐하께서 예전에 문선황제(고양)이 말채찍으로 사람을 때리는 것이
잘못이라고 항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지금도 똑같이 그렇게 하시니 허망한 말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고연이 고적현안의 손을 붙잡고 사과하면서 물었다.
” 또 다른 할 말은 없으신가?“
고적현안이 말했다.
” 폐하께서 너무 자잘하시니 황제가 아니라 동네 말단 관리 같으십니다.“
고연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법도가 무너져서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고연이 왕희의 의견을 물어보자 왕희 또한 고적현안의 말이 맞다고 지적했다. 고연은 그제서야 고집을 꺾고 자잘하다는 주변의 비판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누태후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으며 황제의 격의를 좇지 않아서 신하들이나 가족들과 사이가 매우 편하고 좋았다.
<95> 왕희라는 사람(AD560)
고연은 왕희를 매우 존중하고 높게 생각했다. 당연히 그에게 시중이라는 조정의 최고 중책을 맡기고 싶었지만 왕희가 번번이 그것을 거절했다. 왕희가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젊었을 때부터 정부요직에 오른 사람을 많이 봐 왔는데
젊었을 때의 의지를 끝까지 뒤집지 않고 간 사람을 보지 못했소.
내 원래 성격이 허술하고 느려서
국가 정책을 맡아 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런데도 주군께서 은혜를 내려서 맡기시려고 하니
어떻게 보은해야 할지를 모르겠소.
일을 하다가 만일 미치기라도 한다면 벗어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요직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드러질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요.“
우문호가 우문육을 독살(AD560)
북주 세종 우문육(AD534-AD560)은 우문태의 아들이면서 우문각의 배다른 형이었다. 총명하고 식견과 도량을 가져 민심이 크게 다르던 사람이었다. 우문호는 그런 그가 두려워서 엿과 떡에 독을 타서 올렸다. 우문육의 나이가 27세 였다. 우문육은 떡에 독이 든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온 몸으로 독이 퍼지는 동안 입으로 유조를 내렸다.
” 짐의 아들은 너무 어려서 나라를 감당할 수 없다.
노공 우문옹은 나의 큰 아우로써 능력과 도량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 북주 세가를 받들 수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 아이일 것이다.“
노공 우문옹(AD543-AD578)은 우문태의 부인 질노태후가 낳은 사람으로써 우문육을 낳은 요씨나 우문각(AD542-AD557)을 낳은 문황후 원씨와 배가 달랐다. 그렇지만 우문옹을 많이 아껴서 항상 곁에 두고 정사를 같이 의논하고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침착하고 입과 행동이 무거웠지만 놀라운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문육이 이렇게 말했다.
” 동생은 별로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말을 하기 만 하면
항상 꼭 들어맞는 말만 하는구나.“
<96> 고담의 불만(AD561)
고연이 고담과 어울려 쿠테타를 일으킬 때 태자자리를 고담에게 약속했는데 그것을 어기고 고연의 맏아들 다섯 살짜리 고백년을 태자로 책봉했다.(AD550년 11월) 업을 지키고 있던 고담은 불만이 가득했다. 게다가 국가기밀을 담당하는 사람으로 고원해를 쓰고 유주자사에는 선비족인 고적복련을 임명하고 영군장군에는 곡률광의 동생 곡률선을 등용하여 노골적으로 고담의 권한을 억눌렀다.
당시 항간에는 업 지역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는 말이 돌았는데 업에는 유폐되다시피 한 전 황제 고은 즉, 제남왕이 살고 있었다. 따라서 듣기에 따라서는 전 황제 고은이 다시 부활한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했다. 지난 쿠테타 때 군사를 동원하여 칼에 피를 직접 뭍인 고귀언이 불길하게 생각하여 고연 황제에게 고은을 진양으로 소환하라고 요청했다. 업에 주둔하고 있는 고담은 자신에게도 피해가 오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어 고원해에게 물어보았다. 고원해는 걱정할 것 없다고 잘라 말했다.
” 누태후께서는 만복을 누리시고
지존께서는 우애가 누구보다도 깊으십니다.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고담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마음 놓고 있는 것이 어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방도이냐고 고원해에게 반문했다. 고원해는 하루 동안 생각해 보겠다고 제안했는데 고담은 그를 자신의 거처에 묶어두고 방도를 강구하라고 했다. 고원해는 밤새 서성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고담이 밤늦게 불쑥 나타나 물었다.
” 좋은 계책이 생각났소?“
고원해가 이렇게 말했다.
” 세 가지 방도가 있소.
하나는 기병 몇 명을 데리고 진양으로 가서 먼저 누태후를 찾아가 호소한 다음
황제를 뵙고 병권을 모두 돌려 드리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 죽기를 각오하고 정사에 일절 간여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최상책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위세와 권력이 너무 커서 비난이 크니
청주와 제주의 두 주 자사를 주셔서 홀로 편안하게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하십시오.
이것은 중책입니다. “
고담이 하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고원해가 대답했다.
” 말을 하면 곧 죽을까 두렵습니다.“
고담이 다그치자 고원해가 입을 열었다.
” 제남왕은 적통인데 주상께서 태후를 빌어서 그것을 빼앗았습니다.
이제 문무관료를 소집하여 제남왕을 징소하라는 조칙을 보여주고
고귀언의 목을 베고 제남왕을 높이 세워
반역을 토벌하는 것이 만 년에 한 번 오는 기회입니다.“
고담이 소리 높여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평소 겁이 많고 소심하며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스스로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방술사 정도겸을 불러 점을 치게 했는데 결과는 오히려 엉뚱하게 나왔다.
” 거사는 이롭지 않고
오히려 가만히 계시는 것이 길합니다.“
다른 무격들도 그렇게 말했다. 고담은 내심 반기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제남왕을 호송하여 진양으로 보냈는데 고연은 그를 짐독으로 죽였다.(AD561년 9월) (계속)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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