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의 불편한 진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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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축제 중 하나가 영화제다. 영화제는 국가의 영화산업을 견인하고 영화를 예술로 인식시키는 역할을 한다. 세계 최대의 영화제로 칸, 베를린, 베니스를 일컫는다. 이들 영화제는 각각 개성이 있다. 칸은 영화의 예술성 진작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베를린 영화제는 동서독의 통합을 강조하며 창설되었다. 베니스는 최고(最古) 영화제로 베네치아 미술제에서 출발하였다.
국내 최대의 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다. 올해 20년 성인식을 치른다. 이 영화제가 요즘 시끄럽다. 시끄러운 이유는 현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부산시가 종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의의 초점이 영화제의 사유화, 부도덕성, 자금 집행 과정의 과오와 부정 등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연관된 영화제의 독립성 쪽으로 방향이 흐르고 있다. 살펴보자.
부산국제영화제는 시민과 영화인이 키웠다. 20여 억 원의 예산으로 20만 명을 동원했다. 예상치 못했던 흥행 대박이었다. 이에 힘입어 부산시는 적극 지원에 나섰다. 이제 예산 120여 억 원의 덩치 큰 영화제로 성장했다. 그런데 20년 전과 같이 관객 동원은 그대로다. 몸집만 잔뜩 커진 것이다. 불필요한 기구와 조직이 신설되고 직원 채용은 사적으로 이루어졌다. 견제 없이 성장하다보니 내부 비리가 상당한 모양이다.
부산시 감사 결과 적잖은 문제점이 도출되었다. 고위 간부가 사적으로 4백여만이 넘는 밥값을 지불하는가 하면 서울 사무소 직원은 20여일 씩 부산에 개인 업무로 체류하면서 출장비 2천4백여만 원을 불법 수령하기도 했다고 한다. 모 팀장은 품위 유지비로 화장품비 까지 공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부산영상위원장에게는 아시아영화학교 교감 명목으로 6백만을 주었다고 한다. 다 위법이다. 드러난 문제점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영화제는 직원을 대부분 사적으로 채용했다. 심지어 회전문 인사도 만연했다. 영화제 사무국장은 부설 영화연구소장으로 옮겼다가 다시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으로 취임한다. 사무처장은 임원급이다. 부산영상위원회는 정관까지 고쳐 채용했다고 한다. 물의를 일으켜 사직한 직원을 다시 영화제가 전문위원으로 위촉해서 자문료를 지급하였다. 월 1백만 원이다. 전문위원 13명 중 영화관계자는 3명 뿐 이다. 10여 명은 일반직이라 하니 다분히 자기 사람을 위한 배려로 보인다.
영화제 전용관 <영화의 전당>이 건립되었다. 애초 제시된 450여 억 원 규모가 적정선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1천 6백여 억 원으로 건축비가 상향되었다. 전시성 행정 위주의 부산시의 책임이 크다. 건립 전 이미 매년 100여 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었다. 강행했다. 영화의 전당 야외 상영장은 겨울 아이스링크 장으로 변했다. 고육지책인 셈이다. 영화제 측은 처음에 예상되는 적자를 알고 운영을 맞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슬그머니 자신들이 운영을 맡아야한다고 주장하더니 집행위원장이 영화의 전당 대표이사도 겸직하는 풍경을 연출했다.
영화제는 또한 필름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영화제의 또 하나의 축이 필름 마켓이다. 산업적 측면이다. 지금까지의 운영을 보면 실패다. 홍콩 영화제 마켓에 주도권을 뺏긴 지 오래되었다. 마켓은 칸 영화제나 미국의 어메리컨 필름마켓(AFM)이 대표적이다. 영화제는 영화연구소도 운영한다. 부산에는 <아시아영화연구소>를 비롯한 각 대학의 영화연구소가 여러 개 있다. 영화제는 필요하면 그들과 협력하면 된다. 이 같은 행태는 지역 대학 영화연구소의 역할을 부정하고 넘쳐나는 예산으로 연구기능까지 독점하겠다는 처사다.
영화제의 조직과 인력을 살펴보면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연상케 한다. 영화의 전당, 아시아필름마켓, 아시아 영화학교, 시네마테크 등 영화관을 포함한 상업 조직, 교육조직, 연구조직 등 다 갖추고 있다. 내부 조직 뿐 만이 아니라 자회사 설립에 투자하기도 했다. 조직의 확대는 권력과 함수관계다. 힘은 공공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를 능가한다. 영진위의 예산은 연 500억 원에 불과하다. 부산영화제는 열흘 행사에 120억 원을 쓴다. 영화의 전당 예산은 별도다. 누가 더 힘 센 기관인지 답은 뻔하다.
영화제의 성장에 부산시의 지원이 컸다. 부산시는 영화제에 공무원을 장기 파견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한솥밥을 먹고 같이 생활했다. 오히려 소소한 잘못은 덮었으니 내부적으로 비리를 더욱 키웠다. 더 큰 문제는 민선 시장이 영화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데 있다. 2010년 시장 선거를 앞두고 시는 무려 40억 원의 예산을 증액했다. 이중 1억 원이 TV 중계료로 지불되었다. 화려한 레드 카펫에 스타 배우들과 나란히 서서 입장하고 개막 선언을 하는 모습을 중계함으로써 그의 이미지 제고에 영화제를 십분 활용했다. 근소한 표차로 허남식 시장은 삼선에 성공했다.
영화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사람들은 민선시장들 뿐이 아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수영만 영화제 개막식장을 찾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박근혜 현 대통령,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 등이 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했다. 물론 이들이 연설은 하지 않았다. 지방단체의 문화행사에서 국회의원이나 기관장들이 의례 인사말을 하는 것에 비해 세련된 모습이다. 당시 김동호 위원장은 영화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정치인들의 인사말을 허용하지 않았다. 관객 입장에서 칭찬할 만한 일이다.
차기 대통령 후보가 와도 개막식에 인사말을 허용하지 않는 이 당당한 자존심은 멋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집행위원장과 조직위원장인 부산시장의 이미지와 위상은 엄청 높아진다. 대통령 후보들과 여야 국회의원 및 국내외 VIP,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특권은 이들 뿐이었다. TV 중계는 그들의 위상과 이미지 강화에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시장의 입장에서 이미지 홍보를 위해 100억 원의 예산을 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들의 세금이다.
부산은 부산영화제 덕을 톡톡히 봤다. 영화제는 부산을 ‘영화의 도시’로 각인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영화제 열흘 동안 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부산을 찾았다. 그 때 뿐이다. 변변한 축제 하나 없는 부산 시민들은 부산영화제의 성공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도왔다. 적극 지원했다. 웬만한 잘못을 덮었다. 부산의 자랑거리로 생각했다. 부산영화제 후원회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시민들도 영화제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
영화제를 부산시민들이 다시 생각하는 이유는 영화제가 시민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을 하면서부터다. 알다시피 부산에는 산업이 죽은 형편이다. ‘영화도시’라 함은 할리우드처럼 영화가 제작되어야 영화의 도시라고 부른다. 부산은 산업은 없고 ‘영화제만 있는 도시’다. 한때 붐을 타고 대학에 영화관련 학과가 7개나 생겼다. 이제 절반은 폐과 위기에 처해있다.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으니 지원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상경한다.
부산영화제는 결과적으로 부산의 영상산업 부흥에는 실패했다. 영화제가 영상산업을 견인하겠다는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이제 시민들도 안다. 이런 저간의 상황은 온데 간 데 없다. 부산영화제 사태와 관련해서 부산시의 부당한 압력만이 부각되고 있다. <다이빙 벨>을 상영하지 말라는 부산시장의 요구가 영화제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것이 영화제 측의 주장이다. 이 문제는 영진위의 영화제 출품작 2개월 전 사전 심의와 관련하여 폭발 직전의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다.
<다이빙 벨>은 상영되었다. 문제는 영화제 사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부산시가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면 큰 잘못이다.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좀 더 근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장기 집권으로 영화제가 부패했다는데 있다. 그들의 권력은 너무 막강하다. 20년 동안 그들은 바뀌지 않았다. 시장은 두렵지 않다. 시민들도 안중에도 없다. 적폐는 직원들의 사적 채용, 도덕성 해이, 예산의 부적절한 집행 등이다. 자성(自省)은 없다. 오로지 영화제의 독립성(獨立性)만 운운한다.
영화제는 프레임 전쟁에서 부산시를 이겼다. 사태 직후 영화제 측의 대응은 빨랐다. 영화계, 정치권, 해외 영화계에 까지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영화제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주장을 앞세움으로써 여론을 선점했다. 부산시는 백기 투항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심지어 부산시의회도 많은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손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무소불위의 문화 권력이었다. 누구나 다 안다. 모럴 해저드로 부산영화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흐르는 물도 고이면 썩는다는 말이 있다. 현 집행위원장 체재는 민주화 세력이 비난했던 독재정권 18년 보다 더 긴 20년간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이 스스로 혁신안을 만들고 공청회를 개최한다니 소가 웃을 노릇이다. 부산시 감사에서 지적된 비리들을 영화제의 특수성을 감안해야한다며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표적 감사라고도 주장한다. 도덕성을 완전히 상실한 그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두렵다. “시장은 3년 남았다. 우리들은 영원하다. 우리가 시장을 갈아치운다.” 이런 말들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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