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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편법, 다양한 창작회계(creative accounting)의 활용
민주화 이후 많은 정부는 재정총량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다양한 형태의 창작회계(creative accounting)를 활용하였다. 창작회계란 진정한 회계 상태를 왜곡하는 다양한 편법들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용어다. 실질적으로는 재정사업이지만 느슨한 회계기준 때문에 재정에 계리되지 않는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에게 재정 상태에 대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지만 이를 명확하게 부각하지는 않는다. 확립된 회계기준을 준수하고 있기에 불법과 부정은 아니지만, 회계기준의 근본적인 취지와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재정운용에서 이러한 창작회계가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창작회계가 없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막대한 규모로 또 정치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등장한 것은 1998년 이후의 일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위해 집권 5년간 약 150조원의 자금을 조성하였는데, 이들은 재정과 무관한 자금이라는 의미에서 ‘공적자금’이라는 생소한 용어로 포장되었다. 당시 재정의 범위는 일반회계, 특별회계, 비금융성 기금으로 한정되었는데,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금융성 기금’과 ‘금융성 공공기관’의 부채를 통해 조성한 자금을 공적자금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공적자금은 실질적으로 정부의 부담이고 또 정부의 정책을 수행한 자금이기에 재정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역대 정부, 공적자금과 ‘비금융성 공공기관’의 부채 활용
공적자금 이외에 또 다른 형태의 창작회계로서, 재정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비금융성 공공기관’의 부채와 SOC 민자사업의 미래 부담을 들 수 있다. 공공기관은 금융성 기관과 비금융성 기관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정부는 ‘비금융성 공공기관’의 부채를 재원으로도 재정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5년간 한국전력, 도로공사, 가스공사 등 중요한 ‘비금융성 공공기관’ 10개의 부채를 통해 대략 20조원의 자금을 조성 사용하였다. 이는 20조원의 재정지출에 상당한다.
그리고 수십 년의 장기계약이 체결되는 민자사업도 초기에는 민간자금이 투입되지만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정부가 상환하는 재정부담을 안게 된다. 당시에는 이 부담이 부채로 회계처리 되지 않았지만 사실상의 부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창작회계라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5년간 계약 체결된 민자사업의 총사업비 규모는 약 40조원인데, 이 기간 중 사업에 실제로 투입된 민간자금의 규모는 5조원 이내로 파악된다. 이 또한 사실상의 재정지출로 볼 수 있다.
BTO ‧ BTL 방식 등 수많은 민자사업 수행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 역시 창작회계를 통해 재정통계에 잡히지 않는 대량의 자금을 재정사업에 활용하였다. 물론 노무현 정부 때에는 금융위기가 없었기 때문에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위한 공적자금이 조성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김대중 정부에서 조성한 공적자금을 상환하기 위해 약 50조원의 국채를 발행한 점을 감안한다면, 노무현 정부는 공적자금의 방법으로 지출을 확대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공적자금의 경우와 달리 노무현 정부는 ‘비금융성 공공기관’과 민자사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재정사업을 집행하였다. 노무현 정부 5년간 ‘비금융성 공공기관’ 10개의 부채는 대략 120조원 증가하는데, 이들은 정부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공기업이 부담한 자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민자사업의 유형으로서 기존의 BTO 방식뿐만 아니라 BTL 방식을 추가하였는데 이 BTL 방식을 통해서도 수많은 민자사업을 수행하였다. 노무현 정부가 민자사업을 통해 집권 5년간 실질적으로 투입한 민간자금의 규모는 대략 25조원으로 추정된다.
뒤이어 집권한 이명박 정부도 창작회계를 답습하였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금융성 공공기관’의 부채를 적극 활용하였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공적자금과 달리 이명박 정부는 ‘금융성 기금’의 부채를 활용하지는 않았는데, 당시에는 ‘금융성 기금’이 재정통계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명박 정부가 수출입은행, 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 산은금융지주 포함), 중소기업은행 등 ‘금융성 공공기관’의 부채를 통해 조성한 자금의 규모는 5년간 대략 160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 금액은 금융중개의 성격이 있어 그 전액을 재정과 직접 연관시키기는 곤란하지만, 그 규모는 김대중 정부의 공적자금에 버금간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성 공공기관’ 이외에 ‘비금융성 공공기관’의 부채도 재정운용에 적극 활용하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수자원공사의 부채를 재원으로 4대강 사업을 수행한 것처럼, ‘비금융성 공공기관’ 10개의 부채를 통해 5년간 대략 160조원의 자금을 조성 지출하였다. 이들은 금융 중개와 무관한 기관이기에 그 전액을 재정지출로 간주하여도 무방하다. 그리고 세 번째 유형의 창작회계로서 설명한 민자사업은 이 당시에 활성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 정부에서 시행한 민자사업에서 비롯된 지출부담으로 재정운용의 압박을 받았다.
박근혜정부, 비정상적 재정운용 ‘공기업 부채’ 관리 천명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그 이전의 정부들과 달리 창작회계로 불리는 비정상적 재정운용을 타파하는 중요한 정책을 천명하였다. 그것은 공공부문의 부채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며, 공공기관의 부채를 활용하는 비정상적 재정운용을 더 이상 답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특히 공기업 부채관리를 중요한 정책목표로 내세우고 공기업의 부채를 오히려 줄여나가겠다는 정책적 의지는 바로 이를 반영한다. 재정총량의 한계를 창작회계와 같은 편법으로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닥치며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공기업의 부채를 편법으로 증가시켜왔던 노무현, 이명박 정부의 재정운용과 비교한다면, 이는 매년 약 25∼30조원의 재정지출을 감축하는 효과를 갖는다. 더구나 ‘금융성 공공기관’과 민자사업을 활용한 과거의 재정운용 방식과 비교한다면 재정지출의 감축 효과는 이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2015년 2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2년을 맞이한다. 그 공적을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20조원을 상회하는 재정적자, 10조원을 상회하는 세수부족을 감안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재정운용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적자금의 조성, 공공기관의 부채, 민자사업의 미래부담 등과 같은 과거의 편법적 재정운용을 더 이상 답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후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창작회계를 타파하고자 하는, 이 ‘보이지 않는 정부혁신’에 우리가 지지와 찬사를 보낼 때 비로소 정상적 재정운용 방식이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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