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까지 ‘장가들기’가 대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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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결혼(혼인)한다’는 말 대신 ‘장가간다’, ‘시집간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장가간다’는 장인 집으로 간다는 말에서 유래했고 ‘시집간다’는 시집(시가)으로 간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말의 유래와 의미를 따져보면 조선시대 혼인 풍속의 변천사를 알 수 있다. 광선은 유희춘의 손자였다. 광선이 본가에 왔다가 처가로 가는데, 동생들이 슬퍼서 우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금방 돌아올 것인데도 이렇게까지 울었을까? 광선은 남원의 김장(金鏘) 집안으로 장가를 들었다. 2월 19일 혼인을 했으니까 이때가 혼인한 지 두어 달이 지난 때이다. 처음 집에 온 것은 혼인한 지 4일 만이었다. 집안 여기저기에 인사를 하고 며칠 후 다시 장인 집(처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한 달 쯤 뒤에 두 번째로 본가에 온 것이다. 이후 40여일 동안 집에 머물다가 위에서처럼 다시 장인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글은 사단법인 역사․여성․미래가 여성가족부의 예산지원으로 실시한 ‘여성사강사양성과정’의 제9강: 출가외인은 언제 생긴 것일까? 조선시대 가족과 여성, 이순구(국사편찬위원회)를 정리한 것임.
조선시대 중기까지도 혼인 자체를 여자 집에서 하고 남자가 여자 집에 한동안 머물러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6세기 유희춘의 일기(미암일기, 眉巖日記)를 보자.
“식후(食後)에 광선이 남원에 있는 장인의 집으로 돌아갔다. 광연(광선의 동생)과 어린 누이동생 봉례가 울어 눈물이 줄줄 흐른다. 형제간에 지극한 우애의 정이 어려서부터 나타나니 우리 집안의 기맥(氣脈)이다.”(1576년 4월 27일)
중국의 친영과는 다른 조선의 ‘장가가는’ 풍속
광선이 ‘남원의 장인가로 돌아갔다(歸南原丈家)’는 표현은 단순히 장인 집으로 갔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중국의 혼인풍속인 ‘친영(親迎)’과는 사뭇 달랐다. 중국은 혼인 할 때 남자가 여자 집으로 가서 여자를 맞이해 와 남자의 집에서 혼인식을 하고 남자 집에서 생활을 시작하는 이른바 ‘친영’을 했다. 그러나 조선은 여자 집에서 혼인식을 하고 대개 여자는 여자 집에 그대로 머물고 남자가 자신의 집과 처가를 오가거나 아니면 처가에서 살았다. 그래서 광선이 남원의 처가로 가서 살게 되는 것이다.
17세기 이전 조선의 혼인은 이렇게 대체로 남자가 움직이는 시스템이었다.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혼인 후 20년 가까이 강릉이나 강릉 주변에서 생활했던 것이 그 예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혼인제 하에서 여자들의 삶은 어땠을까? 광선의 처는 어떤 생활을 했을까? 광선 처는 혼인 후 큰 변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이 유희춘가의 ‘며느리’이기보다는 그저 자기 집의 ‘딸’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을 수 있다. 신사임당이 결혼후 내내 친정이 있는 강릉에 살았던 것도 유명한 예이다.
물론 남자가 여자 집에 와 있는 만큼 여자 집의 경제적인 부담은 크다. 아이가 생겼을 경우 육아에 대한 부담도 일정기간 여자 집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경제적 부담을 진다는 것은 여자 집안이 남자 집안과 대등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조선은 오랫동안 두 집안이 공조를 통해 대사회적인 이익을 얻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런 여건 하에서 조선의 여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 부담 없이 연속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는 거주지를 바로 옮겨야 하는 중국 여자들의 상황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신사임당이 뛰어난 포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사임당이 친정 근처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은 이러한 혼인관습을 문제라고 봤다. 조선은 당시 중국적인 것을 선진적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남자 집안이 주도하는 혼인관계를 원했다. 그리하여 국가에서는 친영을 보급하려고 했고, 조선 후기로 오면 친영이 전기보다 더 강화되었다. 조선 후기 여자들이 그렇게 시집살이를 힘들어 했던 것은 그 이전까지 시집살이를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와같이 사실 조선의 여자들은 며느리 보다 딸로서의 정체성을 꽤 오랫동안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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