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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을 영화가 재미없는 이유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2월17일 17시5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56분

작성자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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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을 영화가 재미없는 이유

 영화는 두 종류가 있다. 재밌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 제7의 예술인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895년 뤼미에르가 만든 <열차의 도착>과 함께 탄생한 영화는 파리의 지하에 있는 그랑 카페에서 여러 편의 단편영화와 함께 상영되었다. 고작 52초 남짓의 이 영화는 기차가 그랜드 역을 향해 달려 들어오는 장면을 좌측 앵글에서 포착한 원 씬 원 커트의 작품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영화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단순한 활동사진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열차의 도착>은 지금 대중들의 눈에는 아무런 감동이나 흥미로움을 자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공간의 평면성에 익숙한 19세기 관객들은 마치 화면 속 기차가 튀어나와 자신들에게 달려올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카페 밖으로 뛰쳐나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시각 매체는 촬영기, 영사기, 스크린 등 세 요소가 있어야 가능하다.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 영화는 바로 이들 세 가지를 만들어낸 과학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인간의 예술적 욕망이 결합한 결과이다.

 

 3D 영화의 등장은 시각적 재현성 성취를 위한 인간 욕망의 발로이다. 인간은 보고자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 한다. 때로는 더욱 미세하게 가끔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서 보고자 한다. 말하자면 가시 영역의 확대와 축소를 원한다. 인간의 호기심 때문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현미경이고 망원경이다. 영화는 이차원의 평면에 투영되는 환영적인 삼차원을 더욱 현실에 가깝게 재현해 보려고 노력해왔다. 마치 회화에서 원근법의 발견으로 사물을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시도처럼 3D 영화는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려는 기술적 장치이다.

 

 최근 여름 극장가를 달구고 있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을 3D로 보았다. 이 영화가 흥미를 끄는 이유는 1968년 <혹성탈출> 시리즈가 탄생한 이래 지속적으로 영화 혹은 TV 시리즈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역사적 생명력과 SF 장르의 영화가 주는 스토리 상상력의 모험, 그리고 입체영화 본연의 사실의 극대성이라는 이유에서였다.

 

 3D 영화의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인간의 눈이 보는 것처럼 대상물을 하나의 카메라가 아닌 두 대의 카메라를 이용하여 마치 우리의 시각처럼 사물을 포착한 후 이를 다시 특수 안경을 이용하여 망막에 삼차원으로 재현하는 것이 3D 영화의 원리이다. <혹성탈출> 이 영화를 보면서 기술적으로 3D 영화는 이제 대중들이 수용할 만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매우 정교하여 입체용 안경을 착용하고 보는 데 따른 어지럼증이나 시각적 교란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혹성탈출>은 디지털 영화에 더해 3D 입체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 인간이 만든 바이러스로 오히려 인류는 거의 죽고 극소수의 사람만이 살아남아 생존을 위한 처절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 한편 진화를 거듭한 유인원은 그들의 영역에서 살아가던 중 인간들이 생존을 위해 수력 발전소 가동을 위해 유인원의 영역으로 들어서면서 싸움이 시작된다. 유인원의 영역에 인간의 출입을 허용한 우두머리 시저의 결정에 불만을 품은 2인자 코바는 시저를 죽음의 경지로 몰아넣고 자신이 리더가 된 후 인간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여 전쟁을 벌인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시저는 다시 코바를 죽이고 전쟁을 평화로 이끈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내용과 함께 형식이 중요하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며 <혹성탈출>은 메시지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3D 영화의 형식을 차용하였다. 이 영화는 입체영화가 주는 시각효과로 관객 흡인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의 개연성과 메시지의 전달은 매우 미약한 편이다. 영화의 주제가 전쟁보다는 평화, 그 평화를 위한 지도자의 신념이 중요하며, 와중에 배신이라는 어휘가 스토리 전개의 키워드라면 주제 전달을 위한 내러티브 구현은 뭔가 흡족치 않은 부분이 있다.

 

 <혹성탈출>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 공허한 이유는 영화 속 캐릭터가 전형적이라는데 있다. 유인원 종족의 우두머리 시저는 너무 인간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우두머리 자리를 넘보는 코바는 전형적인 악한으로 묘사되고 있다. 한편 인간의 무리도 폭력성이 강한 악한과 이를 제지하는 착한 사람으로 인물이 양분되어 있다. 소위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설정이다. 마치 우리가 창의적 두뇌가 사라진 앵무새 같은 인간을 싫어하듯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이 전개하는 권선징악적 스토리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충분히 재밌을 영화가 재미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보다 인간 해석의 스펙트럼이 좁고 도식화된 영화는 작품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시네마스코프나 와이드 스크린처럼 새로운 기술만으로 관객들을 유인하고 만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재밌는 영화는 시각 효과에 더해 인간의 욕망에 대한 탁월한 해석을 등장인물을 통해 내러티브 속에서 녹여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 분야 뿐 만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와 커뮤니티 곳곳에 유인원의 대장 시저와 같은 힘과 리더십, 그리고 평화의 이념과 상생의 생명성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지도자를 찾고 싶다. 유인원보다도 못한 인간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배신의 권력 투쟁을 통해 얻은 오염된 권력을 남용하는 사악한 자들의 몰락도 보고 싶다. 어느 조직, 어느 집단에서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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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2월17일 17시5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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