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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11월30일 19시3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8시02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대학 교수, 사회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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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현재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 중 하나는 흑백논리다. 아마도 우리 문화가 ‘불확실성 회피 성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불확실성 회피 문화와 수용 문화

네덜란드의 문화심리학자 호프슈테드에 따르면, 한국은 그가 조사한 76개국 중 불확실성 회피 지수가 23~25위 사이로서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높은 국가에 속한다. 불확실성 회피 문화의 가장 큰 특성은 ‘낯선 것을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세계의 문화와 조직』 개정판 참조: Hofstede, Hofstede, & Minkov, 2010; 차재호 · 나은영 역, 2014). 그래서 스트레스와 불안 수준은 높고 행복감은 낮다. 또한 애매한 상황과 익숙하지 않은 모험을 두려워하며,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참을성이 부족하다. 또한 실효성이 없는 규칙도 감정적으로 필요해 한다.

 

반면에 불확실성 수용 문화는 낯선 것을 호기심 있게 바라본다. 나와 ‘다른’ 것을 반드시 ‘틀린’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트레스와 불안 수준이 낮으며 행복감이 높다. 애매한 상황에 대한 인내력도 비교적 높고, 익숙하지 않은 모험을 즐기기도 하며, 규칙은 꼭 필요할 때만 두는 경향이 있다.

불확실성 회피 문화의 높은 자살률은 사회의 높은 불안 수준을 반영하는 하나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일랜드 심리학자 린(Richard Lynn)이 선진 1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살률, 간경변증으로 인한 사망률(알코올 중독의 지표 중 하나), 사고사율, 인구 1만 명 당 수감자 비율 등을 합해 사회의 불안 정도로 보았을 때, 일본이나 프랑스처럼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높은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불안 수준을 보였으며, 뉴질랜드, 영국, 아일랜드처럼 불확실성 수용 성향이 높은 나라들이 더 낮은 불안 수준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성을 수용하는 관용 문화의 필요성

이와 같은 특성을 지니는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집단주의와 합쳐지면 ‘내집단 편애’가 발생한다. ‘우리 집단’에 속하는 사람이면 믿을 만하고, ‘그들’의 집단에 속하면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흑백논리가 ‘너는 흑, 나는 백’이라는 자기중심성, 또는 ‘너희는 흑, 우리는 백’이라는 내집단 중심주의와 연결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구조에서는 패자가 되는 순간 끝이라는 생각에 단지 ‘이기기’ 위한 사생결단의 분위기가 팽배하기 쉽다. 양보하면 죽는다는 생각에 도무지 중간을 허하지 않고, 다양성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의견의 스펙트럼은 넓고 다양하건만, 이쪽인지 저쪽인지 정체를 밝히지 않는 상황을 참지 못한다. 이쪽과 의견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혹시 배신하지 않을까 의문을 품는다. 이처럼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상대편에 붙었다고 오해하는 상황에서는 거국적인 화합이 요원해진다.

애매한 상태, 중간의 상태도 엄연히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의견이다. 실제로 많은 국민들은 평소에 특별히 이쪽, 저쪽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저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선거철이 되면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는 집단 정체성이 뚜렷해지는 상황이 되고, 그러면 모든 것을 양극화된 관점에서 생각하도록 강요받는다.

 

총선이 불과 몇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나눗셈과 덧셈의 정치학이 분주해졌다. 여당과 야당 모두 같은 당 안에서는 친○계와 비○계,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나눗셈의 정치학’이 성행하고, 세력이 불리하다 싶으면 다른 세력과 연합하는 ‘덧셈의 정치학’이 또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대박’이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건만, ‘대박’과 ‘쪽박’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는 양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염려스럽다.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 관용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전 지구촌의 왕래가 바로 옆의 이웃 드나들 듯 잦은 요즈음, 어찌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힘 주기와 힘 빼기’라는 글에서 우리가 조금은 힘을 뺄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했듯이, 이 글에서는 흑과 백 사이에 다양한 의견의 스펙트럼이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아군과 적군으로 선명하게 나누는 것이 습관화되면 다양한 의견의 스펙트럼이 보이지 않게 된다. 아군 쪽의 의견도 다양하고 적군 쪽의 의견도 다양하건만, 그 다양성을 무시한 채 계속 양극화의 길로 치달을 경우 발전적인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광복 70년을 딛고 미래 한국 700년을 설계하는 이 시점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는 미래 한국의 풍성한 열매를 위해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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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11월30일 19시3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8시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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