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 배당사고의 전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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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고였다. 하지만 구조적 사고나 음모론적 사고는 아니지 싶다. 해프닝에 가까운 사고였다는 생각이다. 6일 발생한 삼성증권의 배당사고 얘기다.
물론 우리나라 증권 사상 최악의 배당사고임에 틀림없다. 잘못 부여된 주식 배당금이 무려 112조원이나 되고, 잘못 입고된 주식수가 28억주가 넘었으니. 감독당국이 삼성증권을 검사하고, 삼성증권이 피해 보상하겠다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불법화돼 있는 무차입 공매도를 넘어 합법적인 차입 공매도까지 막겠다, 또는 증권거래 시스템 전반을 뜯어 고치겠다는 건 지나친 듯하다. 공매도의 순기능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다만 닭 잡는 칼에 소 잡는 칼을 들이대서야 되겠는가라는 차원에서다.
왜 그런가? 그날의 사고를 되짚어보면 금방 알 일이다.
그날 오전 우리사주를 갖고 있는 삼성증권 직원 2000여명이 보유한 주식물량 283만주에 주당 1000원을 배당해야 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날 이 업무를 맡은 직원이 휴가를 갔고 다른 직원이 대신 맡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직원이 ‘원’과 ‘주(株)’를 잘못 눌러 1000원 대신 1000주를 눌렀다. 상급자가 결재하면서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도 실무자가 입력한 대로 승인했다.
이렇게까지 사고로 번지지 않을 가능성은 또 있었다. 실수로 주식을 배당금으로 받은 직원들이 시장에 내다 팔지 않았으면. 하지만 사고는 순식간에 꼬여갔다. 직원 16명이 무려 501만주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 삼성증권 주식 하루 평균 거래량(50만주)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주가 급락은 당연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서둘러 같이 매각했다. 대략 200만주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는 삼성증권이 보상하면 봉합될 일이다. 증시에서 유통된 유령주식 501만주도 삼성증권이 매입해 소각하면 된다. 필자가 이 사건을 해프닝으로 보는 이유다.
물론 의문점은 있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삼성증권은 IT투자를 많이 하는 증권사라는 점이다. 그런데 어떻게 주식배당과 현금배당이 한 시스템에서 이뤄지는 배당금 지급 프로그램을 20년간 그대로 써 왔을까라는 의문이다. 대우증권 등 다른 대형증권사들은 다르기에 더욱 의문이다. 다른 증권사들은 주식 배당과 현금 배당의 계좌를 별도로 분리하는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 ‘주’와 ‘원’을 혼동하는 일이 애초부터 일어날 수 없게 돼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대형 증권사들은 주식배당을 할 때 주식 총량이 정확한지를 재차 확인하는 팝업창이 뜨는 시스템을 쓰고 있다. 가령 주식 지급 직전 ‘입고 주식이 맞습니까?’ 혹은 ‘발행주식총수의 몇 퍼센트를 넘어가는데 맞습니까?’라는 식의 팝업창만 떴어도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원래 IT투자에 대단히 열성적인 삼성증권은 왜 배당지급 프로그램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써왔을까?
둘째 의문은 직원들의 주식 매각이다. 창업자때부터 ‘관리의 삼성’으로 유명하기에 더욱 그렇다. 직원 교육도 철저한 것으로 정평나 있다. 특히 도덕성과 윤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교육한다. 그런 회사의 직원들이 회사에 보고하지 않고 서둘러 매각했다. 심지어 이 중 6명은 매도 금지 팝업창이 뜬 9시 52분 이후 매도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삼성에서 가능했을까? 이유야 어떯든 삼성이란 브랜드가 갖는 신뢰와 평판이 크게 무너졌다.
음모설이 나도는 건 이런 의문점이 풀리지 않아서다. 예컨대 ‘삼성증권 직원들이 작전을 펴려고 공매도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올 정도다. 처음부터 다 계획된 수순이었다는 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음모설은 신빙성이 약하다. 작전은 기록에 남고, 검사하면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원인은 역시 직원의 착오와 실수지 싶다. 그리고 이를 감시하고 감독할 시스템의 미작동이다. 낙후된 IT시스템도 한몫했다. 삼성증권과 감독당국이 앞으로 해야할 일도 이것이다. 내부통제시스템과 관리시스템을 점검하고 손질하는 일이다. 헷갈리게 돼 있는 배당금 지급 시스템도 바꾸는 거다.
거듭 말하지만 본질은 공매도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이것 때문에 공매도 금지를 청원할 일 아니다. 금지하겠다면 다른 이유에서여야 한다. 우리사주는 현금배당이나 주식 교부 권한을 증권사에 있기 || 때문에 이를 예탁결제원 등의 승인을 거치도록 주식거래시스템 전반을 손질 하겠다는 것도 사뭇 이상하다.
진짜 문제는 딴 데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증권사에 대한 불신이 매우 커졌다는 점이다. 만일 증권사(또는 임직원)가 악의를 가지면 시장을 언제든 왜곡할 수 있다는 게 드러났다. 현행 내부통제장치로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렇지 않아도 증권사에 대한 불신이 높던 차였다. 그동안 증권가에서는 무차입 공매도가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혹도 있었다.
그러니 “차제에 증권사 전반의 관행과 제도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과잉 대응책이 우려되는 이유다. 며칠 전 금융감독당국이 착수한 삼성증권의 현장 검사에 기대를 거는 것도 그래서다. 이번 사고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야 증권사에 대한 막연한 불신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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