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의 한반도,기적의 봄을 맞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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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23일,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필자는 중국 베이징공항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고려항공에 몸을 실었다. 북한을 방문하는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을 외신들과 동행취재하기 위해서다. 그날 이른 새벽 미 국무부로부터 한통의 짧은 전화를 받았다. KBS가 취재단에 포함됬으니 워싱턴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비자를 받는대로 베이징공항으로 가 북한국적기를 타라는 일방적 통고였다. 이때부터 평양취재에 끼지못한 워싱턴의 한국언론사들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멘붕상황이 됐다. 도대체 선발기준이 무어냐고 국무부에 따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북한이 선택했다는 것 뿐 이었다.
1948년 북한정권수립이후 최초로 미국의 외교수장 국무장관이 평양땅을 밟은것만으로도 역사적 사건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예정에도 없이 한밤중 올브라이트 장관의 숙소인 백화원초대소를 전격방문해 면담이 이뤄지는등 평양의 2박3일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역사는 이미 2주전 북한권력 서열2위인 조명록 북한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김위원장의 특사로 워싱턴에 등장했을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군복차림의 결기에 찬 모습으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김위원장의 평양초청장을 전달했다. 워싱턴과 평양을 오간 교차 방문으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됐고 수교가 눈앞에 온듯했다. 그러나 ‘은둔의왕국’ 북한을 깨우는 천지개벽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임기가 끝나가면서 클린턴의 평양방문은 무산됐고 정권까지 공화당 부시정부로 넘어가면서 북한은 ‘악의축’이란 오명을 쓴 미국의 주적이 됐다. 이렇게 세상이 뒤집힐번한 한반도의 운명은 시간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로부터 18년, 올해 한반도엔 봄기운이 완연하다. 바야흐로 해빙의 계절이다. 제1막으로 끝났던 드라마가 다시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주연배우들은 모두 교체됐다. 다음달 판문점 남측 지역에선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5월엔 어느곳에선가 미북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평창올림픽이 열리기 전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일들이 전광석화퍼럼 전개된다. 비로소 달리기 시작하는 한반도열차, 그 운전석에 문재인대통령이 올라탔다. ‘운전자’론을 주장했던 베를린선언이 지나친 이상주의라고 비판받았고 운전자는 커녕 ‘코리아패싱’이란 비아냥을 받은 게 엊그제인데 남북과 미북관계는 이제 역사적 대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고 그 기회를 한국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릴레이 한반도회담, 앞뒤 회담간 어떤 바톤터치를 하느냐가 중요해졌다. 먼저 열릴 남북정상회담이 우선 판을 잘 깔아야 한다.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간 회담에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이어질 미북정상회담의 성패를 좌우할것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피할수 없는 의제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핵포기를 약속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정권의 체제와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빅딜이 이뤄질거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기대는 최고조에 올라있지만 과연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가능할것인가? 미국은 평양에 대사관을 두는 수교단계까지 상정하고 있는것인가? 결코 낙관할수 없는 난제들과 자칫 대세를 그르칠수도 있는 디테일들이 놓여있다.
미북간 기싸움도 시작됐다. 미국은 회담이 열릴때가지 대북제재는 강도높게 지속될 것이고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면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을수도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북한 또한 관영매체를 동원해 어떤 봉쇄나 제재도 자신들에겐 통하지 않을것이라고 되받고 있다. 양측의 공방은 그러나 회담의 전제라기 보다는 유리한 협상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성격이 짙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도 정상회담 개최는 놓칠수없는 정치적 기회다. 트럼프는 이미 국내적으론 홍보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30년간 미국의 대북관계에서 누구도 못했던, 클린턴도 오바마도 하지 못했던 대단한 일을 자신이 해냈다,
김정은을 만나 ‘위대한타결’을 이뤄낼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트럼프의 목소리가 커진것은 그만큼 현재의 정치적위기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러시아의 미대선개입의혹과 참모들의 연루설로 정치적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 11월 미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를 견인해야하는 모멘텀 마련이 절실해졌다. 여기에 국민적 지지와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의 차기대선 출마시사로 위기감이 더 해지고 있다. 미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까지를 언급하고 있으니 미북 정상회담은 그 야말로 국면전환을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요, 승부수가 아닐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 또한 가혹한 대북제재와 군사적 옵션이 옥죄는 위기국면에서 벗어나 정권과 체제의 안전을 도모하는 출구를 모색할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때는 꼬마 로켓맨으로, 미치광이 늙다리로 말폭탄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 하루아침에 빨리 보고싶다로 돌변한건 결국 정치적이해득실을 따진 통큰 결단에 불과한것일까? 이번회담을 바라보는 기대반, 우려반의 시선이 있다. 영국BBC는 21세기의 정치도박이라 했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비핵화의 출발점이 될수도 있지만 미국과 세계질서의 전략적 패배로 귀결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회담보다는 게임으로, 빅딜보다는 빅쇼로 끝날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하고 있다.
그러기엔 한반도 상황은 너무나 엄중하지 않은가? 회담의 성패를 좌우하는건 진정성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정략과 게임의 룰에 맡긴다면 정작 중재자인 우리에게는 무엇이 돌아오는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이제부터 더욱 중요해졌다.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올수있는 체제와 세계질서를 기필코 구축하겠다는 역사적 소명 의식으로 미국과 북한이 회담에 임해야하고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그 방향을 이끄는 진정한 운전자('THE NEGOTIATOR')의 역할을 다해주기를 기대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대 행동의 단계로가는 ,치킨게임이 아닉라 윈윈으로 가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 이를 위한 최우선 조건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을 확보해 미북정상회담이 성공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일일것이다.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 했다. 김정일이 선대의 유훈을 말했고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반복했다. 반드시 지켜져야할 유훈은 그러나 국제사회를 미혹시키면서 북한의 핵전력을 키우고 고도화하는 시간벌기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94년 제네바 합의이후 계속되온 북한의 이중성을 미국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틸러슨 국무장관을 전격 경질해 대북강경파 폼페이오 CIA국장으로 교체한것은 이번엔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군사옵션은 연계돼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누구보다 당사자인 우리가 겪어온 일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절반은 김정은은 못믿겠지만 정상회담을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상회담은 환영하지만 김정은은 못믿겠다가 더 솔직한 여론인지도 모른다.
한반도에 해빙의 기운이 돌고 있지만 아직은 살얼음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깨질세라 조심조심 역사의 지점을 향해 간다. 정부는 빈틈없는 준비로 회담의 성공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어야 하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의 역학구도를 떠받치고 있는 주변국들과의 연대를 구축해내야 한다. 운전자인 우리가 빙판길을 무사히 통과해 목표지점까지 승객들을 태우고 가지 못한다면 국제외교의 비정한 세계는 우리의 책임을 물을것이다. 벌써 욕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대북역할에서 주변으로 밀리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주석,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하다가 돌연 일본배제(Japan Passing)로 가는 분위기에 당혹해 하는 아베총리가 그럴것이다. 우리가 강해져야한다. 국력과 국민의 힘이 모아져야한다. 정치권이 힘을 보태야 한다. 당장의 지방선거에 미칠 유불리를 따진다면 너무나 가볍고 무책임한 처신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문제다. 국민들은 초당적 협력에 박수를 보내고 표도 줄것이다. 집권당 또한 선거전략 차원이 아니라 정권을 거는 각오로 정상회담의 성공에 주도적으로 임해야 할것이다.
전세계의 유일한 냉전지대 한반도에도 기적의 봄은 오는 것인가. 북한의 핵포기-한반도 비핵화-미북수교-남북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기적을 보고 싶다. 4월과 5월 그 운명의 시간으로 다가서고 있다.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 오는 기회다. 우리는 그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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