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신(新)시대에 대한 기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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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분야 협력체제 복원, 반도체 및 첨단산업 협력 강화
지난 3월의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訪日)에 이어 일본 기시다 총리의 5월 7, 8일 한국 방문의 성과로 인해 극도로 악화되었던 한일 경제협력 관계가 복원되고 새로운 한일협력 체제를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 경제계도 △ 반도체 분야에서의 공급망 협력 강화 △ 우주·양자·인공지능·바이오 등 공동연구 협력체제 추진 △ 재무장관 회의 등 경제 분야 협력체 가동 등 한일 합의 사항을 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한일관계의 정상화는 지난 2019년 일본정부의 한국에 대한 무역관리 규제 강화 이후 야기된 양국관계의 위기를 멈추게 한 의미가 있다. 강제징용 문제로 인해 만약 일본기업의 압류 자산이 매각될 경우 일본정부는 한국경제에 실질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제재안도 검토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의 경우 일본정부는 불화수소 등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관리를 강화하고 무역관리상의 포괄허가 대상국인 화이트 리스트(현 그룹A)에서 한국을 배제하자 한국 사회가 크게 동요한 바 있다. 2022년 기준으로 1,300억 달러를 넘는 수출 실적을 올린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멈추게 될 경우 한국경제에 대한 파장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일본정부는 3개월 정도 후에 불화수소 등의 수출 재개를 허가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산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잠재적인 위험성은 큰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와 기업은 2019년 이후 소재, 부품, 장비 등 소위 소부장 분야에서 대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산화에 매진해 왔다. 실제로 불화수소 등 일부 품목의 국산화가 진전되었다. 그러나 소부장 분야에서 일본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90%, 100%에 달하는 품목도 있는 상태이며, 일본 제품 없이는 반도체 생산이 어려운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강제징용 문제로 인해 다시 한일 마찰이 격화될 경우 한국의 반도체 등 각종 첨단 제품이나 중소기업 공장까지도 멈추게 될 일본의 경제제재 조치가 단행되고(아마 이번에는 위협에만 그치지 않고) 한일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운 위기에 빠질 우려가 있었던 것이며, 이러한 위기를 일단 사라지게 한 것은 한일 정상 회담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 공급망 협조, 첨단산업 공동연구, 다양한 경제협력체제
이번에 한일 정상이 경제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공급망 협력에 합의한 것은 그동안 한일 무역관리 규제 마찰의 중심이었던 반도체 분야에서의 관계 복원이라는 측면과 함께 한일의 강점 분야를 활용한 미래 산업 개척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공급망 안정화 협력이 합의된 것은 한국의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있어서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반도체 소부장 관련 기업은 특히 후공정 패키지 분야 등에서 강점이 있다. 반도체의 미세 가공도가 2nm(1nm은 10억분의 1미터) 수준으로 미세화 되어 감에 따라 추가적인 미세 가공의 비용이 방대해지고 있으며, 입체 형태로 반도체를 적층하는 3D패키지 등의 후공정 기술의 활용이 중요하며, 이러한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서 한일의 협력은 효과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서 대만 정세도 고려하고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과 일본의 자동차, IT, 통신 기업과의 협력 체제로 확대되면 더욱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일본정부는 현재 Rapidus라는 자국산 반도체 기업을 육성하고 있으나 이 사업의 어려움(일본 내 공장의 미세가공 기술 수준이 40nm인데, 2027년까지 2nm 양산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목표 실현의 어려움), 출자한 도요타, 소니 등의 일본기업이 자사 자금의 갹출을 꺼리고 있어서 일본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이미 3,300억엔을 결정, Rapidus 사장이 2조엔을 추가 요구)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 일본 산업으로서는 Rapidus에만 기대를 거는 것은 리스크가 클 것이다.
일본 산업계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기업과 보다 강력한 개발 및 조달 관계를 구축해서 경제안보 체제를 강화하는 협력이 중요할 것이다. 일본 기업의 시스템 반도체 주문에 대응하는 전용 생산라인을 한국에 설치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협력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한일 반도체 협력 관계의 발전은 한국의 파운드리 산업의 강화, 한미일 차원의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재 각국이 경제안보를 이유로 자국 우선주의적인 반도체, 배터리 정책을 강구하고 있는데, 한일 양국은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자세로 협력할 수 있다. 양국의 이러한 협력이 각국의 보호주의적 정책을 견제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지가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일 양국으로서는 미국의 IRA 등에 대한 정보교류나 협력방안 논의 등이 그동안 부진했지만 과거에 한일 양국이 자유무역을 수호하는 입장에서 협력했던 관계를 복원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한편, 우주, 양자컴퓨터, AI, 바이오 등 첨단과학기술 분야에서의 한일 합의도 앞으로 구체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분야는 군사안보 및 경제안보 정책과 관련도 있는 예민한 분야이며, 이 분야에서의 한일 협력 합의의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으며, AI칩 등 첨단 반도체와의 연계 협력도 중요할 것이다.
우선은 최근까지도 중단되었던 한일 과학기술정책이나 산업정책 담당 부처와의 활발한 협의가 강화될 것으로 보이며, 협력 정책에 관한 합의도 중요하다. 산업자원부와 일본의 경제산업성 산하의 공공연구기관끼리의 연구협력 체제를 복원 및 재구축하면서 구체적인 기술협력 프로젝트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기초로 양국 기업, 공공연구기관, 대학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첨단 산업 기술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주 분야 등에서는 미국도 포함한 한미일 협력체제가 중요할 것이며, 우주 개발 등에서 한국의 모듈생산 역량, 일본의 소부장, 미국의 기초기술 및 설계 역량을 결집해서 우주 산업의 양산화, 규모 확대를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재무장관 회의가 재개됨으로써 양국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와 함께 양국 금융시장, 통화에 대한 신뢰성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일 양국이 경제 전반의 협력을 논의함으로써 반도체, 첨단산업뿐만 아니라 배터리, 액화천연가스(LNG), 수소사회 구축, 제3국 한일공동투자, 한일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투자 협력 등의 협력 사업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일 양국은 한중일 협력, 한중일 + ASEAN 협력에도 긍정적인 협력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 한중일 + ASEAN 차원에서의 통화 스왑 협정을 강화하는 논의도 가능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한미일의 협력이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과의 원만한 관계에서 포섭적인 경제성장이 추구되도록 유도하는데, 한일이 협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가 어렵고 한국의 수출부진이 장기화되고 각 산업의 성장이 이미 피크를 지나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탈(脫)탄소화, 디지털화, 첨단화에 매진해야 할 시점에서 한일 협력관계의 강화는 양국경제의 상호호혜적인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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