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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사회와 정부의 역할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1월17일 17시09분

작성자

  • 최승필
  •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행정법, 금융경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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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고 난 후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금번 대통령 탄핵 소추는 그 원인과 결과에서 있어서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탄핵은 법적행위이지만 본질은 정치행위이다. 정치는 대립되는 이해 속에서 확실한 목표를 이끌어내고 민의를 기반으로 이를 수행해나가는 일이어서 기본적으로 불확실성과 갈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국가가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행정조직을 법정화하고 전문 직업집단으로서의 공무원제도를 채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권한대행 체제하에서 AI 대응 미흡과 같은 정책집행상의 실패가 드러난다는 것은 행정시스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언제부터 행정조직을 법정화하고 직업공무원제도를 두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대체로 국가의 역할이 팽창되고 행정수요가 증가하였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쯤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이 시기에 직업공무원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독일에는 제국(Reich) 사무를 담당하는 관리들을 규율하기 위한 제국관리법이 있었으며, 프랑스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와 같은 기관에서 전문관료들을 배출하였다. 영국 역시 메리트(merit)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능력 중심의 공무원제도를 채용하였다. 그러나 왕정시대까지만 해도 여전히 공무원은 왕에게 충성하는 왕권의 중추였다. 그래서 왕의 학자들은 왕과 공무원간의  관계에서는 기본권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불침투이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공화국에서 직업공무원제도의 중심 가치는 정치적 중립성이며, 이는 선거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고 행정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핵심요소이다.   

 

우리의 경우 60년대 경제개발시기부터 지금까지 행정조직과 공무원의 역할은 지대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인적·물적 인프라가 부족한 시기에 정부만이 대체로 재화활용에 자유로운 영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정조직은 비대해지기도 하고, 정치화되기도 하며, 외부적 상황에 둔감해지고 안주하는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위기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국가조직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변화를 외면하라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기술혁명을 비롯한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가조직의 운영원리에 새로운 개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아이콘으로 부르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은 정보와 통신, 컨텐츠 그리고 하드웨어가 모두 결합된 영역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 역시 통합적 시각에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의 인구절벽과 출산율 정책은 단순히 홍보 내지는 지원금 및 조세감면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 주거, 고용안정의 정책이 하나의 패키지로 움직여야 하는 사안이다. 출입국관리업무는 법무부의 소관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외국인 정책의 문제는 국경을 넘어선 외국인의 관리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화적 이슈이면서, 생산인력으로서의 고용문제이기도 하다. 3천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를 살처분한 AI에 대한 대응 역시 농식품부와 타 부처간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그 조치가 늦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책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 관련 부처들간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의 제도는 특정한 사안이 나오면 이를 규율하기 위하여 법을 제정하고, 제정된 법은 소관법률의 형태로 특정 부처에 소속되며, 특정부처는 해당 업무에 대해서 배타적인 권한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소관법률 중심의 정책운영은 책임성 평가에는 유용하나 조직간 협력을 제한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총리실을 중심으로 정책조율기능이 강화되어야 하나 우리 정치현실에서 총리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다. 결국 대통령의 권위에 기대어 대통령 비서실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이는 부처간 소통과 협력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을 막고 타율적 의사결정에 기대었다는 점에서 통합적 문제해결에 한계를 보인다. 아울러 담당부처보다 대통령 비서실에게 기형적으로 과도한 권한이 부여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새로운 정책목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의 검토가 필요하다. 하나는 정책목표를 중심으로 칸막이를 제거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부조직법을 만들어야 하며, 또 다른 하나는 각 행정청간 협력을 위한 횡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횡적 거버넌스가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 법으로 정한 행정조직의 칸막이를 여닫이문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OECD와 UN의 보고서들은 이를 “수직적(vertical) 거버넌스에서 수평적(horizontal) 거버넌스로의  전환” 이라고 일컫는다. 궁극적으로는 횡적 거버넌스의 구현을 목적으로 하나, 각 국가의 정부형태 내지는 정치문화에 따라 계선형 조직이 발달했다면 그 중간 내지 과도기적 단계로 사선형 거버넌스를 검토할 수도 있다. 횡적 거버넌스에 대해서는 책임성에 취약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성과분석 체계의 개발, 투명성 및 석명활동의 강화를 통해 이를 보완할 수 있다. 

 

새로운 거버넌스로의 전환은 권한의 분할과도 맞닿아 있다. 권한의 분할은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간 관계에서는 분권의 문제로 귀결된다. 주민밀착적 행정이 강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 역시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사무와 재원을 어떻게 분할하고 협력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 한 단면이다. 2015년, UN 경제사회이사회가 공표한 ‘부응적이고 책임성 있는 공공거버넌스’ 보고서 역시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횡적 협력체계의 구성을 주장하고 있다. 

 

국가의 역할 중 일부를 민간이 수행하도록 하는 규제의 공유 내지 민관간 공동책임영역의 확보는 복잡해진 현대행정에서 중요한 화두이다. 지난해 말 촛불집회에서 우리는 정치적 기반으로서 민의를 확인하였다. 행정의 중심에서도 민간의 역할은 중요하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서는 정부가 가지는 기술에 대한 정보보다 민간이 가지는 정보가 더욱 클 수 있다. 과거의 인허가제체제는 행정청이 인허가 대상에 대해서 그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사회에서는 정부가 민간보다 우월적으로 정보를 선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며 오히려 민간과 정보의 균점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규제권한의 분점이 발생하며 종국적으로 민간과 정부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행정이 필요하다. 

 

엘빈 토플러는 기업은 100마일의 속도로, 관료들은 25마일의 속도로, 정치는 3마일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이야기 하였다. 최근의 탄핵정국에서 그간의 경과를 돌이켜보면 정치는 3마일의 속도도 채 못 내고 있었다. 행정 역시 그 주어진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충분한 속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새로운 기술과 경제환경은 정부에게도 보다 빠르고 유연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100마일로 달려가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경제주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해도 그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는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 이것이 국민이 기대하는 것이고, 또 정부의 당연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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