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남한산성, 오늘의 사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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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엄동설한의 남한산성이다. 청군에게 포위된 채 밤잠을 설친 인조가 영의정 김류에게 묻는다. “비가 저리도 왔는데 병졸들이 다 젖었겠구나. / 아닙니다. 비에 젖은 자는 반이 채 안됩니다. / 비가 온 산을 고루 내리는데 어찌 반만 젖었다 하느냐?/ 그럼 차라리 눈이 왔으면 나았을 것입니다./ 아니, 비가 오는데 괜히 눈 얘기는 하지 말라, 어찌하면 좋겠느냐?...”
인조의 걱정에 병조판서 이성구가 거든다. “적병들 또한 깊이 젖고 얼었으니 적세가 사납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다 적의 추위로 내 군병의 언 몸을 덥히겠느냐? 병판은 하나마나한 말을 하지 말라.” 병판이 대꾸한다. “비가 올만큼 왔으니 해가 뜰 것입니다./ 아니, 군병이 얼고 젖었는데 병판은 해뜨기만을 기다리는가? 병판이 기다리지 않아도 해는 뜬다. 해가 뜨면 적들의 옷도 말릴 것이다. 어찌하면 좋겠느냐? ” 이 대목에서 영의정이 끼어든다. “전하, 자꾸 신들더러 어쩌랴 어쩌랴 하지 마시옵소서. 어쩌랴 어쩌랴 하다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옵니다./ 알았다. 내가 하지 않을터니 경들도 하나마나한 말을 하지 말라. 그러나 어찌해야 하지 않겠느냐?”
막장 코미디 한 토막 같지만 엄연한 역사의 한 대목이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망연자실하게 된다. 1636년 남한산성에 고립된 무능한 인조는 저열한 신하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억센 겨울비에 젖은 채 성을 지키는 군졸들의 안위를 걱정한 인조와 논쟁을 벌이는 당시 조선 지배층의 무능은 배신감을 넘어 실소마저 자아낸다. 저런 류의 인간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살아간 조선 민초들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널리 알려진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한 대목을 줄여 옮겼다.
인조반정으로 권력을 틀어쥔 조선의 지배층은 광해군이 어렵사리 유지해 온 등거리 외교전략에서 벗어나 청과의 한판 싸우자고 큰 소리를 친다. 그러나 1636년 12월 청태종이 쳐들어 오자 항전도 한번 못해 보고 남한산성으로 줄행랑친다. 이 과정에 수많은 백성들은 도륙되었으며 아이들은 길바닥에 버려져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 그해 병자년은 혹독한 추위가 오래 계속되어, 굶주림에 병들고 얼어 죽은 군졸은 셀 수조차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지배층은 논쟁만 벌인 것이다. 이어진 인조의 굴욕적인 항복의 전말은 너무나 치욕스러워 옮기기조차 두렵다.
느닷없이 수백년전 얘기를 꺼낸 것은 사드를 둘러싼 우리 사회가 지금 너무 어지럽기 때문이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젊은 날 조국의 미래에 대해 많은 회의를 가지고 살았다. 지긋지긋한 최루탄, 강제 휴교 등등은 지금도 기성세대의 가슴에는 우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 왔고 마침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나라안팎의 상황은 무척 걱정스럽다. 사드를 둘러싼 정치권의 싸움은 끝이 없고 패권주의에 사로잡힌 중국의 겁박은 극에 달하고 있다. 우리 안의 갈등은 이제 싸늘하다 못해 살벌하다. 기득권의 부패는 인내심을 넘고 있고 경쟁에서 낙오된 자들은 벼랑끝에 내몰리고 있다. 여러 지표에 보듯이 한국인의 삶은 OECD 국가 중 바닥이다. 불행하게도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자랑스런 세대다. 일제 강점, 국토분단, 수백만명이 죽어 간 동족간 전쟁 등등 지구상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험란한 세월속에서 지금의 이 나라를 만들었다. 그런 소중한 나라가 국가안보까지도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권의 흥정물이 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불행하다. 나라의 존립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다. 국가안보앞에 모두가 겸손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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