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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검사 이야기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7월24일 16시18분
  • 최종수정 2016년07월24일 16시19분

작성자

  • 나승철
  • 법률사무소 리만 대표변호사, 前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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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16년 5월 19일, 33살의 2년차 김홍영 검사가 자신의 자취방에서 목을 맸다. 과중한 업무와 부장의 상습적인 폭언에 시달리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한 밤중에도 술자리를 마친 부장이 15분 내로 오라고 하면 택시를 타고 부장의 부름에 응해야 했다. 자고 일어나 보니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언론에 공개된 그의 자취방에는 맥주 캔 두 개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드럼세탁기에 작은 냉장고가 있는 자취방은 여느 직장인의 방과 다르지 않았다. 

 

2016년 7월 14일, 진경준 검사장이 긴급체포 되었다. 넥슨으로부터 비상장 주식을 받고 126억 원의 시세차익을 본 혐의이다. 그는 넥슨으로부터 제네시스 차량을 제공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내사 중이던 대기업의 임원을 만나 처남 명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줄 것을 요구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그는 20년 전 평검사 시절 암표를 팔아 단 돈 4천 원의 이득을 챙긴 회사원을 구속 기소하기도 했었다.

 

김홍영 검사와 진경준 검사장. 둘 다 검사이지만 너무나 다른 모습에 우리는 당혹감마저 느낀다. 김홍영 검사가 병원에 갈 틈도 없이 새벽까지 일하는 동안 진경준 검사장은 대기업 임원과 고급술집에서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을 것이다. 진경준 검사장이 술자리를 마치고 형님, 동생 하며 비틀거릴 때, 김홍영 검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자취방으로 돌아와 맥주 한 캔으로 목을 축이다가 쓰러지듯 잠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에는 출근하는 것이 지옥으로 가는 것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진경준 검사장 역시 후배검사들을 닦달하고 때로는 그들에게 폭언을 한 덕분에 검사장의 자리에까지 올랐을지 모른다. 자신이 고급술집에서 공짜 술을 마실 수 있는 것도 그 시간에 후배검사들이 밤을 새워가며 수사를 하고, 주말도 없이 일한 덕분이란 것을 망각한 채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잔 술, 두잔 술에 형님, 동생이 되어가듯 공짜 술이 어느 덧 공짜 제네시스가 되어가고, 공짜 주식이 되어갔을 것이다.

 

사람들은 김홍영 검사의 사망과 진경준 검사장의 비리에 대해 이런 저런 대책들을 쏟아낸다. 수사권을 분리하라는 둥, 검찰의 상명하복 문화를 개선하라는 둥, 성과주의가 문제라는 둥 식상한 얘기들이 신문지면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그런다고 젊은 검사들이 좌절감에서 벗어나 자부심을 되찾고 부패한 검사들이 청렴해질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문제는 이 사회가 미쳐 돌아간다는 데에 있다. 김홍영 검사가 좁은 자취방에서 쓸쓸히 죽어간 것도, 진경준 검사장이 대담하게 넥슨으로부터 공짜 주식을 받은 것도 그저 이 나라가 미쳐 돌아가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무시하며, 바르게 사는 것보다는 더 많이 갖는 것이 목표인 사회.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권력이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사회. 김홍영 검사는 그런 사회의 피해자였고, 진경준 검사장은 그런 미친 사회가 낳은 괴물이었던 것이다.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먼저 치유하지 않는 한 검찰의 권한을 축소한들, 상명하복의 문화를 개선한들 아무 효과도 없을 것이다.

 

김홍영 검사의 자취방 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내 잘못이 아니야(NOT MY FAULT)’ 부장의 매일 같은 질책과 폭언에 김홍영 검사는 자취방에 돌아와 ‘내가 일을 못하는 건가?’라며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이내 힘을 내고 하얀 종이 위에 노란 색으로  ‘NOT MY FAULT’라고 썼을 것이다. 종이를 벽에 붙이고서 그는 희미하게 웃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또 얼마간 열심히 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자신을 힘들게 했던 세상에 대한 원망 한마디 없이 혼자 남은 자취방에서 쓸쓸히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 일면식도 없지만 그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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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7월24일 16시18분
  • 최종수정 2016년07월24일 16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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