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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수용가능한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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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7월17일 18시39분
  • 최종수정 2016년07월18일 06시13분

작성자

  • 안석교
  •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명예교수

메타정보

  • 53

본문

 

I. 사회적 시장경제의 몇가지 당위성

  경제문제가 누적되고 장래의 경제발전에 관한 비관적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속적이고 건전한 경제발전을 위한 제도적/경제체제론적 대안으로써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특히 이 문제가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되면서 사회적 시장경제는 사변적 담론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실천적 의미로 다가서고 있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의 관심대상이 아닐수 없다.

첫째, 독일은 선진공업국가들 중에서 사회적 안정과 경제성장을 조화롭게 추구한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이룩한 라인강의 기적과 노사화합은  오랫동안 여러 나라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선진공업국가들중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평화가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제도적 장치가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독일은 그동안 유럽통합의 주역을 담당해왔을 뿐만 아니라 유럽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사회적 시장경제는 무엇보다도 독일통일을 실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통일이후 동서독 주민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통합을 실현하는데 있어서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회적 시장경제제도를 통한 <효율과 형평>의 조화는 당시에 동독 주민들이 자유의사에 의한 표결과정을 거쳐 서독체제로의 편입을 선택한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동독은 큰 부작용 없이 서독체제에 편입되어 갔으며 동서독 주민의 소득격차는 예상보다 빠르게 해소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특히 통일을 역사적 과제로 안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설득력 있는 독일제도의 장점으로 간주되고 있다.

 

  II.  사회적 시장경제의 내용과 특징

  그렇다면 사회적 시장경제가 갖고 있는 기본 성격과 특징은 무엇인가.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학파의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사상에 기초한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명제에서 출발한다. 

  첫째, 개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회적 진보를 실현하는데 있어서 시장경제체제 이외의 대안은 없다. 시장경제의 핵심적 요소로써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보장되어야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제도는 소유에 따르는 부작용을 유발시킨다. 그 하나는 소득의 집중현상이며, 다른 하나는 기업경영에 있어서 노동자들의 소외현상이다. 독일은 이러한 문제들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생산적 자산에 대한 노동자들의 접근을 촉진하며, 노사공영을 통한 경제민주화의 길을 열었다.

  둘째, 시장의 경쟁질서는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스스로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한 시장균형이나 자생적 질서로써의 시장질서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이미 A. 스미스 역시 기업인들이란 내생적으로 경쟁제한적 성향을 갖고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경제력 집중의 위험에 경종을 울렸다. 이러한 배경에서 사회적 시장경제체제하에서는 반카르텔법을 비롯한 경제력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질서정책적 제도를 마련하였다. 나아가서 사회적 시장경제제도는 정부가 다양한 이익집단의 영향에서 초월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강조하는 작고 강력한 정부는 시장의 순환체계에 대한 개입을 극소화하면서 이익집단의 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정부를 지칭하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시장기제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며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주의의 완전한 실현, 힘의 불균등 배분에 따른 사회적 불균형의 완화 그리고 시장소득만으로 생계가 어렵거나 시장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계층에 대한 지원 및 사회적 통합은 국가의  몫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적 시장경제체제가 강조하는 원칙은 문제해결의 일차적 책임은 당사자 에게 있다는 점이다. 시장경제하에서 국가는 보완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쳐야한다는 것이다. 이를 국가개입 부차성의 원칙이라 한다.

 

III. 사회적 시장경제는 수용 가능한가

    우리는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부문에 걸쳐  서구의 제도를 이식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대표적인 예가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이다.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역사적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역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요구했다. 끊임없는 노사갈등과, 체제를 둘러싼 이념논쟁이 그것이다. 이러한 서구의 제도들은 아직도 제대로 착근했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며, 특히 한국의 문화적 가치, 전통가치관이 서구제도를 수용하는데 있어 얼마만큼 상호조응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경우도 예외일 수 없다. 즉, 이 제도 역시 독일적 문화와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를 이식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이러한 문화적 토양의 차이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 중요한 차이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반적으로 유럽사회, 특히 독일의 사회문화적 특징 중 하나는 사회구성원간의 강한 연대의식이다. 사회적 시장경제 역시 이러한 의식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선진국보다도 앞장서서 독일이 사회복지체계를 도입하고, 사회적 한계집단의 통합, 노사공영제도를 비롯한 경제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는 바로 그러한 연대성의 문화적 토대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우리사회에는 이기주의적 축적의 가치관이 지배적이다. 혈연이나 지연과 같은 전통사회의 가치관은 시장사회를 특정지우는 익명의 관계 속에서 연대성에 기초한 공동체 정신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Fr. 푸쿠야마가 지적하는 불신의 사회인 것이다.

  둘째,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사회적 시장경제는 국가에 의한 시장의 경쟁질서 창출기능을 중시한다. 시장의 경쟁질서는 질서를 지키는 질서의식을 전제로 한다. 독일인들의 문화적 유전인자 속에는 여러 학자들이 지적한바와 같이 질서와 원칙을 중시하는 요인들이 내포되어 있다. 독일의 질서자유주의는 바로 이같은 시민사회의 질서의식을 전제로 한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지고의 질서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독일적 질서를 사용할 정도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질서의식은 대단히 취약하다. 여러 연구기관들의 연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한국의 법치는 선진국가들중 거의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Fr. 하이에크가 강조하는 <공정한 행위의 일반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는 법정의의 실현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갈등과 거래비용이 상승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주체들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능력과 사회적 책임의식이다.  사회적 시장경제가 그동안 원만하게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한 이익추구>라는 파트너정신과 고도의 사회적 책임의식을 전제로 한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독일은 선진국가들 중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희생된 노동시간은 가장 적다. 또한 지난 10여년간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상승률 역시 여타 선진국에 비해 현저하게 낮고 생산성상승률을 밑돌고 있다. 이와 같은 이익집단의 집단이익에 우선하는 사회적 책임감은 사회적 시장경제의 성공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선진국가들 중 가장 낮은 실업률로 제조업의 국제경쟁력 1위를 고수하면서 유로경제를 견인하는 능력 역시 그러한 사회문화적 토양에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이상에서 제기한 조건들은 비단 사회적 시장경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그동안 전근대적 제도와 낙후된 법치의 전통 및 윤리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압축성장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제도의 낙후성이 경제발전의 질곡으로 작용하는 단계에 진입해 있다. A. 스미스는 그의 대표적 3대저서, 도덕 감성론, 법학론 그리고 국부론에서 시장경제의 작동조건으로써 윤리질서-법질서-경제질서의 유기적 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교훈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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