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 대한 선진 국민 이미지, 누가 만들었나? - 예술인들의 삶은 희생이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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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가이미지는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좋아졌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 축은 문화예술인들이 담당했음을 자부한다. 그러나 성과의 뒤안길에는 영광만 있는 게 아니다. 좌절과 고통, 그리고 희생의 대가라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인! 그들의 삶은 정녕 낭만으로만 채워져 있는가? 고달픈 삶과 열악한 환경, 그리고 인식 변화의 파노라마를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예술인들의 참모습을 그려보고 실천에 옮겼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당국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이해와 협력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세계인이 사용하는 제2외국어 ‘한국어’
최근 몇 년 사이 외국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신설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우리학교의 경우도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자는 외국대학의 제안을 받고 있다. 한국은 세계 6개국에 불과한 ‘3050클럽’에 근접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이고 인구가 5천만 명 이상 되는 ‘3050클럽’은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6개국 뿐이다. 우리의 무역이나 경제 규모로도 10위권에 진입해있는 나라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력이 커져서 그런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외국 대학의 제안 내용을 들어보면 의외의 답을 얻게 된다. 이유는 드라마 대중가요의 인기가 그 원동력이다. 즉 한류의 확산으로 대한민국에 관심을 갖는 젊은 층이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수강하자는 대학생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교재의 경우도 드라마, 영화, K-POP의 유명한 콘텐츠 내용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 교육을 하는 대학뿐만이 아니라 사설 교육기관이나 단체에서도 한국문화를 배우고 즐기자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대한민국의 리모델링, 인식의 변화
과거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전면적으로 실시되면서 누구나 해외에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위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하늘을 난다는 특별한 경험과 새로운 세상과 접한다는 꿈을 안고 여행을 떠났었다. 그러나 바로 직면하는 것은 한국인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편견으로 자유로움은 사라졌었다. 특히 당시 선진국이라는 유럽이나 미국 등을 가게 되면 경계와 무시의 시선을 받았었다. 대한민국이 어느 대륙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거니와 안다해도 극빈국의 열악한 국민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야했다. 그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최근 외국을 나가서 한국 사람이라는 말을 하면 손목을 모으고 흔들며 웃는다. 강남스타일의 말 춤을 흉내 내는 것이다. 대화의 시작이 웃으며 진행되니 결과도 과거와는 현격히 차이가 날 정도로 쉽게 성과를 얻는다. 그들이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인상은 많이 달라졌다. 드라마의 힘으로 한국 남자는 자상하고 친절하며 유머감이 뛰어나고 돈도 많다는 생각을 한다. 기본 인식 체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 대한민국의 인식은 리모델링되었다.
“빌보드 차트를 아니?”
중고교시절 빌보드차트는 내 성적을 파악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했다. 최신 음악이 무엇이고 어떤 가수가 어떤 노래를 불러 인기를 얻는지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학교에서도 음악의 얘기를 하면 대체적으로 팝송을 그것도 빌보드 차트를 장식하는 노래들을 중심으로 얘기가 회자 되었었다. 버스정거장마다 있었던 레코드점에서도 빌보드 차트를 복사하여 무료로 배포했었다. 빌보드 차트를 요즘 중고등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잘 모른다. 국내 음원제공 사이트의 순위와 국내 가수의 인기 순위는 매우 잘 알고 있다.
영화의 경우도 비슷하다. 관객수가 영화의 수준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관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데이터는 된다. 최근의 영화관에서는 국내 제작 영화의 선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해외 영화가 고전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외국문화로 내 정서를 다독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와 같다.
한류문화로 혜택 받는 국민, 그러나 생활고로 목숨을 버리는 예술인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면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인식은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좋아졌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문화적으로 외국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는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불과 20여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외국에 나아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예술인들의 삶은 20년 전과 비교하여 좋아진 바가 없다. 오히려 더 열악해졌다는 의견이 많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생활고로 사망하면서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이 있지만 예술인들은 실질적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예술인복지법은 실효성이 없는 복지법이다. 근로자로 보지 않기 때문에 사회보장 제도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특별수당, 건강보험, 실직수당, 연금보조가 없다. 타 선진국의 경우 특별수당과 연금보조는 대체적으로 지급되며 프랑스의 ‘앙떼르미땅’제도는 실직급여도 지원이 된다. 이런 제도가 있어 영화, 연극, 뮤지컬 등의 프로젝트형 배우와 스태프들은 차기 작품을 제작하기 전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삶의 질을 유지 할 수가 있다.
작년 6월 생활고를 비관하던 예술인들이 목숨을 버린 이후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을 시행하였다. 예술 활동이 취미인지, 전업 작가인지 구분한다는 취지로 ‘예술활동 증명에 관한 세부 기준’을 마련하여 발표하였고,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110억 원을 지급을 했다. 그러나 이 지급예산은 전체 예술인의 숫자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따라서 긴급지원과 같은 성격이 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분야마다 다르지만 5년 또는 3년의 작품 실적이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지급되었다. 1인당 월100만원씩 최대 300만원을 3500명에게 지급했는데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3개월을 지원받고 난 이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3500명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아무도 모른다. 제도의 형평성과 적합성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예술인의 활동은 보편적인 활동보다는 참신하고 혁신적이며 진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 성향은 나이와 경험을 불문한다. 데뷔와 함께 신데렐라처럼 각종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수십 년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다가 농후한 상태에서 인정을 받는 경우도 있다. 작품을 준비 중인 상태에서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려운 분야이다. 예술인들의 활동은 결과의 성과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혁신성과 진취성으로 하나의 작품만 성공하더라도 그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나타난다. 예술인들의 활동이 국익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현재 나타나고 있는 해외의 현상만 보더라도 국격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예술인들은 문화 영토를 넓히는 전위부대이다. 그들의 노력을 ‘노동’이라는 범주에서 우선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고 그에 걸맞은 사회보장 제도가 뒤따라한다. 또한 가능한 범위에서 다각도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한다.
최선책 또는 차선책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 예술인 실태조사’를 보면 연 1,255만 원의 수입을 얻고 있다. 서울은 1,819만 원으로 조금 높고 제일 낮은 전라, 광주, 제주는 826만원이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69만 원 정도 된다. 이는 필자가 2007년 한국미술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표본 조사했을 당시 80만원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도저히 살수가 없는 금액이며 작품을 준비하는 재료비도 될 수가 없다. 예술인들은 대체적으로 겸업을 한다. 활동의 특수성으로 인해 몰입도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위해 시간과 정신을 분리해서 생활해야한다.
최선책은 예술인의 활동을 군인들의 활동과 유사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군인은 국가를 방위하기도 하지만 전시에는 영토를 넓히는 주체이다. 예술인의 활동은 우리국민의 정신문화를 방위하고 있으며 문화영토를 넓히고 있다. 예술인의 긍정적 인식 제고 활동으로 인해 기업은 더 많은 제품을 해외에 팔 수 있으며 우리 국민은 더 큰 자부심으로 살수가 있다. 다방면으로 한류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현 시점과 국책으로 문화융성을 주장하는 박근혜정부에서 일반 근로자 수준의 사회보장 제도가 진행되어야한다.
차선책은 지역과 기업이 나서는 방법이다. 1992년 플로리다의 소도시를 방문했을 때 지역 유지들이 기금을 마련하여 운영하는 미술 센터가 있었다. 도자기 공방과 회화 교실, 미술 감상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였었는데 지역적 유대감을 증진시키고 치매를 방지하며 주민의 정신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 판매로 수익을 얻은 유지들이 사회 환원 차원에서 운영하였기에 무상으로 제공되었고 상당히 많은 주민이 참여했었다. 많은 주민을 교육하고 활동했었기에 해당분야의 미술인들도 상당수 참여하게 되고 수입도 보장되는 구조였다.
지역과 기업이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타당성이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기업은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지역은 지역민의 삶의 질을 제고하여 지역 회생에 이바지할 수 있다. 구리 제련소로 황폐해진 섬을 미술섬으로 탈바꿈 시켜 연간 수십만의 관광객을 모으고 있는 일본의 나오시마섬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관광지로 선정되어있다. 공공미술이나 공공 공연예술을 통해 지역 회생된 해외 사례는 수없이 많다.
몇 년 전까지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재개발이 붐이었다. 낡은 도시를 새롭게 탄생시킨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삽질이 진행되었지만 이도 세계적인 경제 환경 악화와 맞물려 중지된 상태이다. 경제 환경 변화를 기점으로 각 도시는 운영 방침이 재개발에서 도시재생 쪽으로 변하고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기업에게도 기회가 되고 예술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대학에는 기부한 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건물들이 여럿 있다. 지역에도 기업이 기부하거나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을 지자체가 유치하여 지역민들에게 제공한다면 자연스럽게 예술인들은 활동의 무대가 넓어지며 안정된 수입도 형성될 수 있다. 또한 기업도 장기적인 기업이미지 제고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실천이 필요할 때
충청예술인의 40%는 연간 수입이 0원이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의 통계보고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신진작가들도 0원이다. 예술인들이 생활고를 못 이겨 죽음으로 이른 기사가 보도 될 때에 깜짝 제도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한 공감대도 폭넓게 확산된다. 그러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져 보이는 것은 없다. 예술인들은 학사, 석사, 박사 학위의 엘리트들이 많다. 유학을 다녀온 사람도 상당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유는 자신의 예술 활동을 위해서 최저 생계를 해결해야하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이 호사를 누리자고 예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목적이 강하다. 그러기에 경제적 어려움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예술인의 활동으로 국민은 혜택을 얻고 있다. 예술인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고 해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방치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 예술인들의 말은 특별대우도 특혜도 아닌 일반 노동자와 같은 대우와 최저 활동이 보장 되는 환경을 말하고 있다.
예술인과 더불어 발전하는 문화융성국 대한민국을 꿈꾸는 것이 망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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