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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화가 나는가?
여름이다. 해운대 바닷가를 사람들이 걷는다. 희희낙락 대개는 쌍쌍이다. 연인, 부부, 친구, 동창, 가족 등 무리지어 다닌다. 그 대열에 끼어 함께 걸어도 즐겁지 않은 이유는 뭘까. 내 가슴 속 답답함의 실체는 무얼까? 생각해본다. 아침 뉴스를 접한다. 국내 뿐 만이 아니라 해외의 사정도 훤히 알 수 있다. 브렉시트로 난리가 났다.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휘청거리고 우리의 환율이 1300원대로 올라갈 것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그뿐 아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좌충우돌 막말 트럼프가 되면 어찌 될까 걱정이 앞선다.
국내 기사는 정운호 게이트가 뜨겁다. 엄청난 재산을 가졌다는 사실에 우선 배가 아프다. 남대문 장사꾼 출신이 더페이스 샵을 설립하여 대박을 치고 이를 5천억 원이 넘는 거액에 팔았단다. 다시 네이처 리퍼블릭을 설립해 성공했으니 사업 수완이 아주 뛰어난 모양이다. 그런 그도 결정적인 결점이 있는 모양이다. 도박을 좋아해서 쇠고랑을 차니 돈으로 변호사를 샀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하수인이 되어 거액의 수임료 반환 문제로 싸우다 둘 다 면상에 금간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웠다는 자들이 돈 앞에 맥을 못 추는 작태를 봐서일까? 만일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술 앞에 장사 없다고 매일 마셔대는 친구에게 충고를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시지 않는가. 배운 자들에게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라고 외쳐도 ‘돈 앞에 선비 없지롱’ 하고 비웃으며 널름 받아먹는 속물들을 목도하지 않는가.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집어넣은 특수부 출신 검사장은 변호사 개업 2년에 1백억 원의 재산을 불렸단다. 도대체 서민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줄만 잘 서면 출세하는가?
법조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젊은 디자인회사 사장을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앉혔다. 서른 살 그녀가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인재들이 수두룩한데 애송이한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주다니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의 아버지가 돈 많은 비례대표 국회의원 출신이라던데 빽줄이 작용했나 라고 스스로 물어본다. 군대에서부터 줄을 잘 서야 출세한다고 들어왔다. 왕년에 군 장성의 아들이 신병훈련소에 입소해서 같은 줄에 서는 바람에 덩달아 편한 부대에 배치 받은 일화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줄 잘서야 출세하는 세상인가 보다.
로또 복권은 어떤가? 잘 뽑아야 당첨인데 확률이 너무 낮다. 부동산 투기는 또 어떠냐? 확률이 좀 높아 보인다. 강남 아파트 재건축 분양권이 반년 사이 억이 올라갔단다. 천만 원 배팅해서 분양권 당첨이 되는 순간 수 천만 원을 번단다. 떴다방에 편승해 잘만 투자하면 수 천 수억 원이 그대로 떨어진단다.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 그런데 배가 아프다. 내가 못 벌어서? 그렇다. 문제는 대다수가 못 번다는데 있다. 나의 노력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직장은 불안하다. 일 하고 싶어도 일터가 없다. 사회가 모순덩어리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정도가 심하다.
한때 헬 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왜 저러나 싶었다. 아무리 싫어도 조국인데 조금 힘들다고 욕이나 하고 외국으로 떠난다고? 한심한 친구들. 이를 개선해 나갈 노력은 안하고 남 탓만 하는 나약한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닌 것 같다. 헬 조선을 외치는 이들에게 나도 동조해야 할 판이다. 이런 나에 대해 생각한다. 왜 나는 화가 날까를 생각해 본다. 목전의 이익을 위해 소신도 의리도 없이 돈과 권력의 불빛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인간들이 싫기 때문이다. 이런 타락하고 천박한 세상에 나는 화를 내고 있다.
시여, 침을 뱉어라
시인 김수영은 ‘시여 침을 뱉어라’라고 외쳤다. 시가 어디에 침을 뱉을 것인가? 부패한 권력과 부패한 돈과 부패한 정신에 침을 뱉을 차례다. 불로소득자와 투기꾼과 졸부들에게 침을 뱉어야 한다. 부정하게 뇌물을 받는 탐관오리들에게 침을 뱉어야 한다. 이를 일벌백계(一罰百戒) 징벌하지 못하는 부도덕과 무능에 침을 뱉어야한다. 부동산과 사채놀이와 투기로 그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자들에게 침을 뱉어라.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집값 떨어진다고 아이들을 차별하는 자들에게 침을 뱉어라.
또 하나의 얘기가 있다. 대학원을 나와 시간강사를 하다 강의가 없어진 나의 제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부인과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학교로 가는 길목이 막혔단다. 일반 아파트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통과 못하게 출입문을 막아 빙 돌아 걸어서 학교에 간단다. 신문에서 보았던 얘기를 며칠 전 제자로부터 직접 들으니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는 아이들이 받을 상처 때문에 월세 60만원을 내고서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를 갔단다. 잡다한 알바로 버는 그의 수입은 150만원에 불과하다. 월세 내고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돌아서니 눈물이 핑 돈다.
한때 베스트셀러 시인이자 대학원 나온 엘리트 최영미가 사회수급대상자가 되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바로 내 옆에 이런 제자가 있었다. 잘 사는 자들은 그들의 부를 절대로 빼앗기려고 하지 않는다. 못사는 사람도 빼앗기기 싫다. 그런데 그들은 빼앗길 것 자체가 없다. 이판사판 될 대로 되라. 욕도 하고 한 판 사고(事故)라도 치고 싶어진다. 그래봤자 내 인생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으니 갈 때 까지 가보자는 심보다. 이런 생각 가진 자 국민의 반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상대적 박탈감의 정도가 심해지면 뒤집힌다.
세상 뒤집히기 전에
세상 뒤집히기 전에 가진 자들 해야 할 일이 있다. 검사, 판사, 국회의원, 교수, 의사, 공무원, 고급 군인 등 우리 사회의 지배층들 정신교육부터 좀 하자. 국민교육헌장이 아니라 가진 자 정신개조헌장이 나와야 할 판이다. 박정희 시절 시인 김지하의 오적(五賊)이 탄생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신오적(新五賊)은 발표되지 않는가. 나라가 살려면 정치가 바로서야 하는데 그 꼴이 가관이다. 새누리당은 이미 지리멸렬 풍지박살이 난 모양새다. 국민의 당은 돈 횡령하고 리베이트 받아먹는 구태를 저지르고도 반성이 없다. 참신함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더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의 무개념 처신에 어안이 벙벙하다.
브렉시트로 전 세계가 난리를 치고 있고 귀족과 하층민의 계급대립이 첨예했던 나라. 지금도 보수당과 노동당이 서로 정권을 주고받는 영국. 이런 나라에 멋진 감독이 있다. 지난 5월 <나, 다니엘 브레이크>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이다. <레이닝 스톤>, <엔젤스 셰어> 등 사회의 소외계층과 노동자 계급의 얘기를 줄곧 다룬 그가 다시 칸의 영광을 안았다. 그가 고발한 것은 부의 불평등이었다. 상위 1%에 대한 99%의 저항.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독점한 듯한 세상에 여전히 약자의 편에 선 그의 목소리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신오적(新五賊) 시(詩)가 탄생하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살만한가 보다. 시인(詩人)은 잠수함의 토끼처럼 산소가 부족한 우리 사회의 징후를 감지한다. 그러나 시인보다 먼저 국민들에게서 기미(機微)가 보인다. 지난 4.13 총선이 그걸 말하고 있지 않나. 국민들은 죽지 않았다. 지켜보고 있다. 침을 뱉을 시기가 온 것 같다. 정치에 침을 뱉어라, 부패한 경영자와 관료에 침을 뱉어라, 탐욕스런 부자들에게 침을 뱉어라. 침 세례를 받는 이들이여, 세상 뒤집히기 전에 함께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말 좀 해보시게. 행동으로 좀 보여주시게.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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