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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지사 사직과 일본인의 정치 수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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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6월30일 17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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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중호
  •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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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사 직에서 물러난 이유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도쿄도(東京都)지사가 2016년 6월 21일자로 임기 도중에 사직하였습니다. 정치자금으로 가족여행을 하고 개인취향의 미술품을 구입하는 등 공사(公私)혼동이 있었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마스조에 본인은 정치자금규정(規正)법에 위반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정치활동이었다고 변명하는 모습은 서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촌극이었습니다. 일본 대중매체가 떠들썩하게 다루었던지라 도쿄도 만이 아니라 전국을 시끌벅적하게 하였고, 결국 마스조에는 여론의 마녀사냥에 밀려 사표를 던졌습니다. 

마스조에는 도쿄대 조교수를 거쳐 국제정치학자로 TV토론에서 인기를 얻은 다음 정계에 진출하였습니다. 똑똑하기로 치면 일본 정치가 중 그를 당할 자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그가 왜 백기를 들고 물러나게 되었을까요? ∙∙∙∙∙∙. 일본정치에서는 ‘의리와 인정(人情)’이 중시되고, 실질적인 골품제(骨品制)가 아직도 건재합니다. 수상이 되기 위해서는 큰 파벌의 유력자가 되어야 함은 물론, 성골(聖骨)이나 진골(眞骨)집안 출신은 되어야 엄청나게 유리합니다. 마스조에에게는 ‘의리와 인정’을 함께 해줄 이렇다 할 정치파벌도 없었고, 골품제에 들어갈만한 집안 배경도 없었습니다. 대중적 인기가 정치 자산의 전부였던 그였기에, 인기가 지탄으로 변하자 금새 쓸쓸한 뒷모습으로 사라져야 했습니다. 

 

당랑거철

마스조에와는 대조적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의 집안 배경은 빵빵합니다. 아베의 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수상이고, 아버지는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무부 장관이며, 그의 친척들도 쟁쟁한 정치가 집안입니다. 그는 자민당 내 중추파벌인 호소다(細田)파를 지지기반으로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익보수성향의 ‘일본회의(日本會議)’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일본회의는 아베가 특별 고문으로 되어 있고, 전국을 9개 블록으로 하여 47개의 도도부현 본부, 240여개의 지부를 갖는 거대조직입니다. 국회의원 간담회(약 290명), 지방의원연맹(약 1,800명), 일본여성회, 경제인동지회 등이 이 조직내에 포함됩니다(아사히(朝日) 신문 2016년 6월17일자). 

자민당이 2009년 선거에서 패배하여 정권을 잃었을 때 마스조에는 자민당을 뛰쳐나와 신당을 창당하였고, 자민당과 그 소속 의원들을 싸잡아 욕했습니다. 당시 욕먹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 현 자민당 간사장인 타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입니다. 정치는 생물이고 세월은 돌고 도는 법. 마스조에가 궁지에 몰리자, 타니가키는 ‘올커니’ 하고 핏대를 올리며 도지사직을 사직하라 밀어붙였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마스조에를 사직하게 만든 결정타는 아베 수상의 전화였다고 합니다. 여론이 악화되다보니 동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 악영향이 있을거란 판단하에 마스조에를 잘라내기로 한 것이지요. 이처럼 마스조에는 자민당 파벌이나 골품 집안에는 한낱 당랑거철(螳螂拒轍: 사마귀가 앞발 들고 수레바퀴에 대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중앙 정계의 역할 분담

2012년 말 아베 정권 재집권에 혁혁한 공을 세운 주역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과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전 경제산업성 장관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직접 수상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아베 도련님을 그 자리에 앉히고, 자신들은 실권을 잡는 쪽으로 선회하여 정치 생명을 살아왔습니다. 예컨대 스가는 일본 동북지방 아키타현(秋田縣) 출신입니다. 예로부터 동북지방은 핵심 정치무대에서 벗어나 있었고 메이지(明治) 유신 때는 막부 두둔세력이 강했던지라 지금까지도 찬밥 신세가 많습니다. 거기에는, 천황에게 통치권을 돌리는(봉환하는)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도쿠가와(德川) 막부와 신정부 간에 싸움이 일어났고 신정부측이 이겼다는 역사적 배경도 자리합니다.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이라는 일본의 관용어 표현대로 이와테현(岩手縣)을 제외한 동북지방(아오모리(靑森), 아키타(秋田), 야마가타(山形), 미야기(宮城), 후쿠시마(福島))은 여태껏 수상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메이지 유신 때 신정부가 이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 아베 수상 출신지인 쵸슈번(長州藩), 즉 현재의 야마구치현(山口縣)입니다. 야마구치현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로부터 현 아베 총리까지 8명의 수상을 배출한 돌출지역입니다. 골품 집안 출신인 아베는 도련님 수상이 되고, 비(非)골품 유력정치가는 도련님을 모시는 장관이나 비서관으로 앉아 외풍을 막아줍니다. 절묘하다면 절묘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는 아베 정권인지라 장기집권을 하고 있습니다. 

 

두더지 잡기와 여우 살리기: 변죽만 울린 정치 수준

비리로 치면 아마리 전 장관이 더 큰 문제가 되니 그를 임명한 수상에게 화살이 돌아와야 마땅합니다. 아마리는 도시재생기구(UR)로부터 뇌물을 받고 영향력을 행사해 알선이득처벌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고소를 당했었습니다. 장관직을 사임하기는 하였지만 불기소 처분을 받고 정치적으로 유야무야(有耶無耶) 처리되었습니다. 도련님과 가신들 간에는 어느 정도 실수를 해도 ‘의리와 인정’의 암묵적 봐주기가 통용됩니다. 미스조에 도쿄도지사의 사직 문제가 한창 불거져 나왔을 때, 아마리는 슬그머니 정치활동 재개를 선언하고 나섰습니다.두더지를 잡으며 여우를 살리는 격이었습니다. 

아베 수상을 비롯한 자민당 의원들은 도지사 선거에서 마스조에 지원유세를 하여 그의 당선을 도왔습니다. 일본 국민과 대중매체는 마스조에 도지사 지지책임을 물어 아베 수상이나 자민당을 비판하고 나서야 함에도 그러지는 못하고 두더지 잡기로 변죽만 울려댔습니다. 마스조에의 공사혼동이 ‘서민 감각으로 보아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입을 맞춘 듯 잔챙이만 물고늘어졌습니다. 정치의 몸통과 직결된 아마리 전 장관의 불기소 처분을 문제 삼아 아베 수상의 임명책임을 추궁했어야 하는데 제대로 다그치지 못한 채 두루뭉술 넘어갔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몸통한테 대들 배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일본에선 ‘비판’이라는 말 자체를 입에 담기 꺼려하고 정서적으로도 아주 내키지 않는 쪽으로 반응합니다.

 

냉혹한 정치 세계

마스조에를 옭아맨 정치자금규정법은 70여년 전인 1948년에 만들어진 법률입니다. 규칙이란 뜻의 규정(規定)법이 아니라 나쁜 점을 바로잡는다는 규정(規正)법입니다. 동 법은 제정 후 조금씩 개정되어 왔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와 같은 ‘고무줄 법’입니다. 일본에서는 숭숭 새는 소쿠리라는 뜻의 자루(ざる)라는 말을 사용하여 ‘자루법’이라 합니다. 마스조에 도지사 사직 사태는 동 법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서민 정서를 거스르면 상황에 따라 정치생명을 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득실을 따져 득이 되지 않는다 판단되면 밑동을 자를 수 있다는 것이 정치세계의 냉혹한 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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