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으로 정한 문화 융성. 그러나 예술인은 빈민이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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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6,000억 원”
웬만한 부자라도 상상하기 힘든 큰돈이다. 그러나 누구의 돈이고, 그 돈의 용도를 따져 보면 ‘어처구니없이 작은 금액’이라는 데에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러는지 설명해 보려한다.
‘6조6,000억 원’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올해 예산이다. 올해 정부예산 386조7000억 원의 1.7%다. 그런데 문화, 예술, 체육, 관광 등 그 많은 분야의 정책을 뒷받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라는 국책과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에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편성된 것이 이 정도란다.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문화예술정책이 푸대접을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필자는 현재 예술대학에 재직 중이며 개인적으로 관심사가 많았던 이유로 서양화, 디자인, 공예,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일러스트, 캐릭터디자인, 무대디자인, 대중가요, TV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체득한 경험들과 여러 가지 사회 현상을 접목하여 우리나라 예술의 현주소를 진단해 보면 문화관광부의 예산이 왜 ‘작은 규모’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예술인 지원 문제를 비롯해 예술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관심도, 국가적 활용 목적 동기가 다른 예술의 관점, 그리고 예술인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과제 등을 중심으로 몇 가지만 짚어 보자.
예술인들의 활동은 ‘취미’가 아니라 ‘노동’이다.
우리나라에는 예술인들의 복지를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예술인 복지법’이다. 이법이 나온 이유는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생활고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망 전 그의 메모에는 ‘며칠째 밥을 먹지 못했다. 남는 밥과 김치가 있다면 문을 두드려 달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의 애처로운 사연으로 최고은법(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생활고로 숨지는 연극인이나 예술인들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예술인들의 활동을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고 취미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에 포함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예술인들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의 작품이 발표가 된 이후든 아니면 제작 중이거나 준비 중이든 예술가는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예술인들의 복지는 매우 진입장벽이 높으며 그들이 복지혜택을 받는 것도 제한적이다. 예술인들의 복지 혜택을 받기위해서는 자격심의를 통과해야하는데 이미 작품발표 경력이 5년 이상되어야하는 경우가 많다. 신진 작가나 발표를 준비 중인 작가는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다.
예술인들은 자신들이 좋아서 한다는 이유로 참아내고 있지만 그들의 삶의 질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남아있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실태조사를 보면 평균 연수입이 1,255만 원으로 나왔다. 월평균 105만 원 정도이다. 예술인들이 과연 105만원으로 창작을 위한 재료 구입 및 준비와 생활까지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예술계, ‘노예계약’ ‘생활고’ 얘기는 아직도 그치지 않아
과거 영화 ‘쥐라기 공원’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던 당시 모 일간지에서 ‘굴뚝 없는 산업’이라는 타이틀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앞으로 산업계를 쥐락펴락한다는 내용으로 대서특필한 적이 있다. 이 기사가 힘을 받으며 음악, 무용 중심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무대디자인과가 생기고 영화 및 공연예술에 관심을 두는 사회적 분위기가 잠시 생겼었다. 이후 무관심한 분위기로 일관하다가 1998년엔 한미(韓美)투자협정에서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요구 당하면서 영화계의 강한 반발로 영화는 사회적 주목도 받고 지원체제도 생겼다.
이후 한국대중문화가 중국에 진출하여 성공을 거두면서 중국 매체에서 ‘한류’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고 해외에서 주목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한류는 2000년대 초반 잠시 주춤하다가 강남스타일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반등하고 있다. 특히 K-POP과 TV드라마는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반면 미술, 공예, 음악, 국악, 무용, 사진, 서예, 건축, 문학, 만화, 방송 등은 아직 제대로 사회적으로 실상이 소개 된 적도 없는 것 같다. 영화와 K-POP, TV방송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녹녹하지는 않다. 다른 분야에 비하여 사회적 관심을 조금 더 받고 있다는 것일 뿐이지 ‘노예계약’이니 ‘생활고’니 하는 얘기가 끊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문화예술 발전은 국력 융성과 함께 했다.”
동서고금의 역사 속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민족이나 집단에게는 예술의 발전이 함께 있었다. 고급문화와 예술의 발전을 가져온 집단은 쉽게 쇠하지 않는다. 고급문화는 단지 어떤 한가지의 요소가 누적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상과 예술적 가치가 종합적으로 결합된 상태에서 형성된다. 이집트가 그리스가 로마가 중국이 그러했다. 세계2차 대전이 끝나고 승전을 한 미국은 문화를 통해 세계의 맹주로 떠오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문화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종합적인 논의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있었다. 당시 문화 열등국이었던 미국은 유서 깊은 유럽으로부터 문화 후진국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고 있었다. 지금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당시 미국의 국가이미지는 ‘돈 많은 돼지’였다. 기업들은 국가적 위상과 기업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공고히 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앞 다투어 만들었고 미술재단 음악재단 무용재단 등의 설립으로 예술인들의 활동을 지원하며 국민에게는 문화혜택을 그리고 기업은 문화인들의 대중을 이끄는 힘을 수혈 받아 제품과 기업이미지에 가공할 만한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과거 열강들이 식민지를 만들 때 종교와 문화를 전파하여 식민지의 의식을 바꾸고 동일한 관념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종교와 문화는 피 흘리지 않는 전위부대의 성격이었다. 지금도 문화 선진국들은 동일한 관점에서 문화예술을 전 세계에 퍼트리기 위한 심도 있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수문화로 알려진 국가는 ‘국가 브랜드 가치’도 상승한다. 예술적 가치가 부여된 프랑스의 제품이나 이탈리아의 제품은 일단 믿고 사게 된다.
우리의 한류는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한국의 화장품이나 성형에 대한 인식과 매출은 최근 한류 연예인들의 성과에 힘입어 동반 상승하고 있다.
진짜로 ‘문화융성’을 위한 정책과 사회분위기의 변화를 기대한다.
‘우리가 가진 능력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국가적 논의가 필요하다. 문화예술을 활용한다면 국가브랜드가치도 많이 향상 시킬 수 있다. 필자는 국가브랜드가치에 관한 내용을 국가미래연구원 홈페이지(게재일 2016-03-09)에 올린 적이 있다. 우리는 질 좋은 상품을 국가브랜드가치가 낮아 저가에 팔고 있는 형편이다.
제4차 산업 혁명의 물결에 대해 다보스포럼의 참가자들은 힘주어 말했다. 산업의 변화에서 최소 7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산업은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감성을 활용하는 영역이기에 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어렵고 노동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천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흥이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인구수에 비해 예술인의 수가 많은 나라이다. 또한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직도 국가와 사회가 예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능력이 출중한 다수의 예술가들이 엄청난 힘으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 융성’을 국책과제로 정한 것은 시의적절 했다. 그러나 걸맞은 정책은 그다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더구나 예술인들의 삶의 질은 여전히 빈민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진짜로 ‘문화융성’을 위한 정책과 사회분위기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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