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잡는 것이 아니라 담아내는 것이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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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정치권에서 늘 회자 되는 말이다. 그만큼 권력이란 무상함을 비유한 것이다. 이러한 무상함을 빗대어 운정(雲庭) 김종필은 정치를 허업(虛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새누리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대위•혁신위 출범 무산은 다시 한번 정치가 무엇인지를 되짚어 보게 한다.
모든 권력은 속성상 욕망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이런 욕망이 지나치면 집착이 되고, 그 집착은 조급증을 낳게 마련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조급증이 심해지면 무슨 일이든 파국을 부르게 마련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도 마찬가지다. 움켜 잡으려 집착하고, 조급증이 발동되면 잡으려던 권력은 멀리 달아나고 주변을 혼돈으로 빠뜨리는 파국에 이른다.
불교에서는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인연과 합쳐지는 것을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물건이란 본래부터 내가 가졌던 것이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게 마련'이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권력도 그러한 시절인연에 속한다. 인연이 다해감에 따라 권력의 속성도, 강도도 변하기 마련이다. 이를 따라가는 것이 순리요 세상의 섭리다.
그런데 권력에 도취한 일부 정치인들은 그런 순리를 망각한 채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독선적 행태를 보여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엊그제 일어난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전국위원회 무산 사태가 아닌가 싶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1996년 유력대선주자였던이회창은 대중적 인기는 높았지만 당내에는 세력을 만들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허주(虛舟) 김윤환은 ‘영남 후보 배제론’을 들고 나왔다. 당시 다른 대권 예비 주자들의 심한 반발을 샀으나 여권에서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다. 이후 ‘이회창 대세론’이 형성되면서 '신인 정치인'이었던 이회창을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만들었다. 하지만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회창의 권력욕으로 인해 허주는 공천을 받지 못하고 낙선하고 만다. 이러한 순리를 거스르는 인연이 이회창으로 하여금 1997년에 이어 2002년 대선에서도 권력을 손에 넣지 못하는 응보를 겪게 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야당의 경우, 친노계에 의해 탄생한 열린우리당의 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2003년 11월 ‘새롭고 깨끗한 정치실현’, ‘중산층과 서민이 잘 사는 나라구현’, ‘더불어 사는 따뜻한 사회건설’, ‘한반도 평화통일’의 강령으로 전국 정당을 표방하면서 창당하였다. 전국 정당이라는 미명아래 호남에 대한 소외정책과 ‘국민의 정부’ 부정, 그리고 자기만이 절대선이라는 독선과 아집으로 소수파를 담아내지 못하고, 결국은 2007년에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합당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여야의 사례에서 보면 권력을 잡은 쪽이 그렇지 못한 상대방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권력을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자를 포용하고, 자기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야 시절인연에 따라 권력도 따라오고 담아내는 그릇도 커진다. 만약 가진 자의 포용과 자기 희생이 없으면 권력의 시절인연이 다해가는 속도는 그만큼 빨라질 수 밖에 없다.
최근의 새누리당의 비대위•혁신위의 무산은 권력을 잡으려 하는 형태지 담아내려는 것은 분명 아니다. 친박이 바라보는 권력의 속성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두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생각은 권력이 이양될 때 여당 후계자보다 야당에게 권력을 넘기는 것이 자기 지분을 보장받기 쉬운 우리의 정치지형 때문이 아닌가 한다. 친이계는 없어졌지만 친노계는 살아 있는 현실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된 계파로 강하게 응집하는 것이 자신들의 권력(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대의(大義)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한 소의(小義)적 정치 행태에 불과하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다. 1992년 14대, 2000년 16대, 2016년 20대 국회의원선거 결과는 여소야대를 엮어냈다. 정치권은 국민들이 왜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주었는지 다시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민은 항상 더 겸손한 자의 편에 선다는 사실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진공묘유(眞空妙有)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상태에서 나를 버리고 상대방을 담아낼 때만이 새로운 시절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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