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는 움직인다' 무엇을 담고있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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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현장에서 경험한 사실은 객관적 기술이 필요하다.
저자 송민순은 33년간 직업외교관으로 활동을 해 왔다. 그는 1975년 외무부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2008년 2월 외교통상장관직을 끝낼 때까지 국ㄴ내에서는 외교부 안보과장, 북미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 6자회담 한측 수석대표 직을, 그리고 해외에서는 서베를린, 싱가포르 그리고 폴란드 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저서 “빙하는 움직인다”는 이 기간 동안 핵문제를 둘러싼 남북한과 동북아 6개국간의 협상과정을 역사의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 내고 있다. 핵문제가 남북한을 넘어 동북아 국가사 힘겨루기의 핵심요인으로 부상하는 과정 전체를 지켜봐 왔다. 그 회오리 한 가운데에서 협상가로서의 역할과 체험을 회고하고, 아울러,국제관계라는 먹이사슬 속에서 불가항력적으로 강국들의 눈치를 보는 한국의 위상 때문에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한계를 느꼈다는 소회를 스스럼없이 드러내 놓고 있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내는 사람들은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출판의 시점에 초점을 맞춘다. 수많은 자서전과 회고록이 혼자서 출판되고 혼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출판된 책이 쟁점의 한 가운데에 서는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판매부수에서는 분명히 득이 된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책속의 표현이나, 잣귀가 정쟁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분명 최근 정쟁의 태풍의 눈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공식적으로 이 책이 발간된 2016.10.7.일은, 2017년 12월 대선을 1여년 앞두고 있는 시점인 동시에 최순실씨와 우병우 민정수석과 둘러싼 의혹으로 매일 여당과 여당간의 이전투구가 정점을 이루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발간된 저서인 만큼, 애초에 저자가 의도한 대로 남북한과 동북아 역사의 현장에서 경험하고 활동한 내용들이 객관적으로 소개되고, 이것이 훗날 한반도 통일 정책에 참고하기를 바라는 여망은 정쟁이라는 거대한 파도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 상황에 대한 일말의 안타까움과 가급적 저자의 출판의도에 충실하기 위해 정쟁의 꼬투리를 찾는 탐정이 되는 재미보다는 저자의 경험과 활동이 북한 비핵화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시각에서 책의 내용을 평가하고자 한다.
국제관계는 동물의 왕국이다. 협상기술이나 애국심을 넘어서는 것이 국제관계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후의 느낌에 대해 몇 가지 말하고 싶다.
첫째, 저자는 오랜 외교관의 경험에서 습득한 know-how와 노련함으로 협상에 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외교관’ 이라기보다는 군사작전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의 자세로 자기 임무수행에 임해 왔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저자 특유의 일처리 스타일, 일 욕심그리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앞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때로는 불가피한 의견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저자의 노력이 국가 이익에 얼마나 보탬이 되었는지는 역사가 평가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자기 임무를 수행해 왔다는 느낌은 지울 수 가 없다.
둘째, 국제관계는 오직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라는 적나라한 현실을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정치학자 Hans Morgenthau의 국제관계 고전, “Balance of Power”를 읽는 느낌이다. 국제관계는 동물의 왕국이다. 오직 힘 있는 자만 살아남는다. 아직도,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강대국이 감정적으로 우리쪽에 누가 더 가까운가에 따라, 우리편을 들어 줄것이라는 유아적인 의존심을 가진 몽상가들에게는 확실한 일깨움이 될 필독서 이다.
셋째, 저자가 주장하는 정책은 어느 시기의 특정 정당 정책에 기울어지거나, 지지하기 위한 설명으로서 제시된 것이 아니라. 현장 경험을 통한 자신만의 확신에 찬 논리에 근거한 주장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의 입장과 더 가까운 입장이지만, THAAD 문제나, 작전권 전환문제에서는 지금의 여당 입장과는 다르다. 직설적인 화법과 자신감에 찬 논리가 꼬투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 눈에는 자칫 오만으로 보일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시각으로 본다면, 저자의 “빙하는 움직인다”는 지금 논란이 되고 8 페이지(464-454 페이지)의 북한 인권문제로 끝나지 않고, 대선을 앞둔 1년 내내 정쟁의 빌미로 이용되어 질 수 있는 휘발성 발언이 여기 저기 눈에 띈다.
넷째, 저자는 김대중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대북 문제를 협상의 최전선에서 다루었지만, 그 중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인간적 존경심을 강조하고 있다. 노대통령이 누구보다 북한 비핵화 실현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노력을 경주해 오신 분인데, 이것은 자신이 대통령이 그렇게 하실 수 있도록 진심어린 간언과 설득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애써 감추지않고 있다. 이런 면모가 보는이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분석을 가능하게 하지만, 일견 저자의 강한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정쟁의 도구로 관심을 끌거나, 이념논쟁을 부추기고자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서술했다는 것이다. 객관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구상을 하고 쓰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현재에도 그 당시 함께 일한 분들이 지금도 정계, 관계, 학계 등 여러 분야 에서 국가를 위해 힘쓰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기술이 사실과 차이가 날 경우에는 본의 아니게 국가에 누를 끼친다고 생각하여, 사실 확인과 표현의 정확성을 위해 10차례의 수정과 교정을 거친 후 출판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핵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으며, 향후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북한은 당근만 먹었다. “당근”은 핵 괴물로 둔갑했다
책은 전체 4부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제 1 부에서는 저자가 북한 핵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86년 김일성 사망 오보 사건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거쳐, 1999년 페리 프로세스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동안 자신이 활동이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91년 9월 27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전 세계 전술핵 무기 철수 통보는 붕괴 직전의 소련이 우크라이나 등에 배치된 핵무기를 러시아로 철수 하는데 따른 상응조치의 일환으로 미국의 해외배치 핵무기를 철수 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전술핵무기 철수 과정을 남북한 모두에 활용하여 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 선언”을 채택하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즉,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은 미국이 한국의 핵 활동을 억제하는 장치로 활용된 것이었다. 이때 ‘남북 기본합의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도 체결되었다. 이후 북한은 1992년 1월에 국제 원자력 기구(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와 핵 안전 조치를 협정에 서명하였지만, IAEA 사찰 요구에 불응하면서 이듬해 NPT 탈퇴와 IAEA 안전조치 협정의 파기를 선언했다. 이러한 북한의 행동을 미국이 통제가능한 NPT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이 제네바 합의 이다.
제네바 합의를 통해 미국과 북한은 서로 다른 벼랑끝 전술로 각자의 목적을 달성했고, 일본은 한반도 문제에 일정한 발언권을 갖게 된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경수로 건설문제로 제네바 합의 이행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1998년 8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자, 클린턴 정부는 다시 한번 북한 핵 폐기를 끌어낼 돌출구를 모색하게 된다. 이것이 페리 프로세스 이다. 페리 프로세스는 북한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압박보다는 먼저 인센티브를 주면서 접근하여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대남 의존도를 임계점까지 끌어와서 북한이 핵을 폐기하도록 한다는 논리에 근거를 두고 뼈대를 만들어낸 3단계 이행 절차서 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미국에게 설득하고 지지를 얻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선 당근, 후 채찍’ 이라는 한국의 햇볕정책을 미국측이 받아들임에 따라, 클린턴 정부는 페리프로세스라는 대북 정책을 택하게 되지만, 2002년 부시정권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비밀리에 시도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제네바 합의의 무효화를 선언하였다. 부시 행정부는 미북 제네바 합의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기에 이행되기도 어렵고, 북한에게 이용만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중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제네바 합의가 파기 되지 않고 이행되었더라면 한반도 정세는 크기 달라졌을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지 않았다면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북한이 베트남처럼 개방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갔던지, 아니면, 북한이 개방하지 못하고 붕괴해서 한반도가 혼란에 직면했더라도, 제 3의 길이나, 통일의 길은 더 빨리 열렸을 것이다 라는 것이다. 즉, 북미 수교가 되었다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지금보다는 훨씬 클 수 있기 때문에 북한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페리프로세스가 미국 정권의 대북 정책의 변화에 의해 좌절된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워 하고 있다. 알이 베기도 전에 태풍에 의해 쓰러진 벼이삭을 보는 심정으로.
그러나 이것은 페리 프로세스에 열정을 쏟은 저자의 안타까움의 발로 일뿐 이라고 생각된다. 국내 정권의 변화에 따라, 믹구의 대북 정책이 바뀌듯이 한국 역시, 정권 변화에 따라 대북 정책이 바뀜으로 결코 페리프로세스의 순조로운 이행을 예측하기는 쉽지않다. 뿐만 아니라, 설사 페리 프로세스가 제대로 이행되었다손 치더라도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한 수천억의 경제 지원 자금을 삼키고도, 2002년 우라늄 농축개발을 가능성을 뻔뻔하게 주장하는 북한이 과연 우리의 ‘당근’이 커진다고 해서 핵을 완전히 포기했을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고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 2부에서는 저자가 6자 회담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하고 쓸모있는 수단이라고 강하게 믿는 동시에 2005년 9.19 공동 성명을 이끌어 낸 6자 회담의 한국측 협상 대표의 한 사람으로써 상당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9.19 공동성명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거대한 첫 걸음’이라고 묘사하면서, 동시에 북핵문제 해결에 사활의 무게를 두었기에 9.19 공동 성명 도출이 가능했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9.19 성명 채택후 11년이 지난 2016년 현재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저자의 노력과는 상반되게 북한의 핵 능력은 훨씬 진전되었고, 핵 불포기 정책은 더욱 강화된 이 시점이야말로, 9.19 공동성명 합의 이행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라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미북 중심에서 6국의 참여로 확대시킨 9.19 공동 성명을 통해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포기하고 NPT에 복귀하면서 IAEA 안전조지를 이행하도록 6개국은 협력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더 나아가서는 북한이 합의를 성실히 이행할 경우에는 경수로 건설도 고려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성명 바로 다음날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경수로를 제공받는 즉시 NPT에 복구하겠다“고 하면서 6개국이 북한 핵포기에 대한 보너스로 제안한 경수로를 도리어 핵포기의 전제조건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이유는 공교롭게도 성명발표 다음날 미국이 BDA (델타 아시아 은행)에 예치된 북한자금 2,500만달러에 금지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이 제네바 합의 이행자체를 끌어갈 생각은 없고 오직 북한의 뒤통수 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 미국은 의도적으로 9.20일 금융제재조치를 발표한 것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미국 재무부가 BDA 금융제재가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것이라는 의식없이, 그들내부의 시간표에 따라 발표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서는 참을수 없는 뒤통수 치기 였다. 북한이 BAD 제재 때문에 핵폐기 못하겠다고 생떼를 쓰자, 미국은 북한이 정당한 국내법 집행마저 그들의 비핵화를 지연시키기 위한 빌미로 악용하고 있다고 북한을 나무라기까지 했다. 나아가서는, 북한의 격렬한 반응을 본 미국은 금융제재야말로 국제 테러를 방지하고 북한의 핵 활동을 억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제재라는데 확신을 얻어 그 강도를 더욱 높일 기세였다.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BDA에 예치된 2500만 달러 때문에 6자 회담은 21개월간 교착 상태로 들어갔고, 이 기간 동안 북한은 마침내 역사상 첫 핵실험을 시도하게 된다. 북핵 폐기를 앞당겨 줄것이라고 생각한 금융제재가 도리어 북한의 핵개발을 가속화 시켜준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BDA 금융제재가 없었다면 북한 핵 폐기가 순조롭게 이루어졌을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53일에 걸쳐 6개국이 피 마르는 협상을 거쳐 만들어낸 핵 폐기를 위한 거대한 포부, ’9.19 공동 성명이라는 타이타닉호‘는 BDA의 2,500달러라는 암초에 걸려 한 발자욱도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저자는 상황을 혼신의 노력 끝에 완수시켜 진수한 배가 항해하기도 전에 바다에 가라앉는 것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선주의 심정으로 이 상황을 감당하고 있었다.
제 3부에서는, 저자는 2.13 조치가 BDA 사태로 꺼져가고 있는 9.19 성명의 불씨를 켜준 것이 2.13 조치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다시 한번 전력을 기울인다. 60일을 북한 핵 폐기의 전체과정으로 잡고, 이 기간을 1단계인 ‘핵 불능화’와 2단계인 ‘핵 폐기’로 나누어, 북한이 각 단계마다 약속 사항을 제대로 이행할 경우에는 중유 100만톤 상당의 경제, 에너지, 인도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 미국측의 입장이었다. 이에 반해, 북한측의 조건은 2월 13일로부터 60일 되는 4월 14일 이전까지 BDA 금융제재가 해제되고, 2,500만달러가 북한 계좌로 송금되어야만 핵 사찰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다. 이 시간 계획에 충실하기위해 미국은 4월 10일 BDA의 북한 계좌동결 해제를 발표했지만, 예상치 않은 장애물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중국측의 비협조였다. 중국은 미국이 마카오 은행을 북한 불법자금 거래처라고 제재 할때도 자의적으로 하고, 그 ‘불법 자금’을 해제하여 송금하는 것도 일방적으로 결정하니 협조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BDA 문제의 싸움판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미국과 북한간의 싸움판에 중국이 끼어든 것이었다. 이 판을 이용해 중국이 미국에 대한 기싸움을 벌인 것이다.
BDA 금융제재 해제를 위해 미국과 한국이 동분서주 하고 있는 와중에,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1차 핵실험을 했다. 중국에게는 이 사실을 1시간 전에 통보 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이 내용을 바로 부시 대통령에게 통보했다. 그러나 한국에게는 국가 정상을 통해 이 내용을 통보한 것이 아니라, 김하중 주중 대사를 통해 알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국으로부터 핵 실험 연락을 받은 미국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바로 알려주지 않았다. 강대국의 외교논리이다. 또한 국제관계는 힘의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마침내 9.19 공동성명을 발표한지 21개월이 된, 2007년 6월 25일에 “역사적으로 가장 악명높은 2,500만달러” (그 당시 미국 라이스 국무장관의 표현에 따라)는 해결되었다. 앓던 이 빠졌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2.13 조치 이행을 위해 힘을 합쳐보자고 팔을 걷어부쳤지만, BDA 동결 자금을 돌려받은 북한의 태도는 돌변하였다. 6자회담도, 2.13 조치도 다시 바다 위를 표류하는 난파선 조각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 4부에서는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서 대북문제를 다루는 부처간의 문제 접근이나, 해결방식의 차이 때문에 이견 충돌이 일어나고 저자 스스로도 한계를 느낀 부분에 대해 적나라하게 그려 놓았다. 남북 정상회담이 있기 전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함께 ‘종전선언’이나 ‘평화 협정’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물론 ‘종전선언’에 대한 두 대통령의 셈법은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같은 것이 선행되면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된다는 입장인 반면에 미국은 검증 가능한 비핵화가 되면 그 후속으로 ‘종전 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저자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종전이라는 것은 선언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과정이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전선언을 하고 나면, 북한은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미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고, 이에 대해 미국은 다시 북한의 인권문제 투명성과 핵 포기를 선행조건으로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북한 적대시 정책 포기와 미군철수를 내세우며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종전 선언이라는 것 자체가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가능한데, 종전선언 하는 것은 평화협정 교섭을 개시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당시 한국은 이미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고 있었고, 미국 역시 “선 종전선언, 후 북핵 폐기”라는 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데도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을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남북한 정상회담을 한지 불과 한 달 만에 노대통령은 본격적 핵 폐기가 개시되기 전에는 평화체제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다. 임기말이라서 일까? 아니면, 노대통령이 주장한 “종전선언”이 자신의 확고한 비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 간 정책 실무자들의 등쌀에 밀린 발언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덧붙여 제 4부에서 눈여겨 봐야할 이슈는 전시 작전권 전환과 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종말단계 고고도 미사일 방어) 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노무현 정부가 이행하려고 했던 전시작전권 전환은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선 것이 아니라 이미 2006년부터 미국 측에서 주장해 오던 것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전시작전권을 한국이 가져가는 것이 한미 간의 공동 안보 이익을 위해 더 나은것이기에 늦어도 2009년에는 이양 받아가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여러 변수를 고려하여 2012년 4월전환하는 것으로 미국과 합의를 도출해 놓았으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2015년으로 늦추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무기한 연기하는 것으로 전시작전권 전환의 시간표를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시작전권 전환을 ‘군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차원’의 문제로 결정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잘못된 결정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정치적 결정에 의해 무기한 미루어진 군사작전권 전환은 통일 환경 조성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수준의 능력을 갖추는 조건이 조성되면’ 작전권을 전환해 오겠다는 논리로 작전권 전환의 시계 바늘을 무한정 늘여놓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주장은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나름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작권 전환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군의 타성에 젖어버린 주한 미군 의존증에 대한 저자의 뼈아픈 지적에 동의하지만, ‘2016년 6월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실험은 한국과 미국에 MD를 배치할 명분을 더 해 주었다’라는 진단과 “실제 사드를 배치하고 나면 한-미는 물론 중국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억제할 수단을 갖지 못한다‘ 라는 상반되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을 하고 싶다. 저자는, THAAD가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실험한 것이기 때문에 방어능력측면에서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THAAD 카드를 만지작거리고만 있는 것이 실제 THAAD를 배치하는 것보다는 더 큰 억제력을 행사 할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무기체계는 그 성능이나 능력면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만약 단일 무기체계가 완전한 방어를 할 수 있다면, 다른 무기체계의 개발이 필요 없다. 그러나 인류 역사와, 전쟁과, 무기체계 개발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THAAD는 단순히 북한의 핵무기 요격을 위한 군사무기만으로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북한 핵이 군사적, 외교적, 정치적 무기로 쓰이듯이, THAAD 역시,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무기이다. 한반도에 사드 배치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중국이 우리의 방위를 대신해 지도 않을뿐더러, 미국이 주한미군의 방위를 중국에게 맡기지는 더 더욱 않을 것이다. 저자 자신이 33년간 직업외교관으로 북한의 핵 페기를 위해 협상의 최전선에서 혼신의 노력을 다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북한은 더 큰 핵 능력으로 우리를 조롱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대북 유화 정책이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데는 상당한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제 정치의 구도속에서 우리의 위상이 약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 불포기 선언의 목소리를 더 높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한다면, THAAD 배치야 말로 우리가 미국과 중국사이의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위 자세가 아닐까?
햇볕정책도 봉쇄정책도 북한핵은 막지 못했다. 제 3의 길 모색이 필요하다.
햇볕정책도 봉쇄정책도 북한 핵을 막는 데는 각각 실패한 측면이 있는 상황에서 송민순의 저서 “빙하는 움직인다.”는 우리가 나아갈 북한 핵문제와 통일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함께 고민해 나가야할 문제를 던져주는 책이라는 면에서 이 책의 객관적인 가치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책 발간 의도는 책 말미에 응축되어 있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많은 남북한 합의와 국제적 합의가 있을 때 마다, 한반도를 덮고 있는 빙하가 녹아서 분단된 민족의 메마른 토양을 적셔줄 것을 기대해왔으나, 빙하는 녹을듯하다가 다시 얼어붙기를 반복해 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류와 접촉을 멈추어서는 안 되고 계속되는 교류와 접촉에 의해서만 빙하를 표면부터 녹일 수 있고, 그 녹은 물이 빙하가 자리하고 있는 바닥까지 스며들게 되면 결국 빙하는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33여년간 북핵문제 협상의 현장에서 좌절과 성취를 되풀이해 왔고,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절대로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결연한 의지로 “무쏘의 뿔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저서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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