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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길, 네이버의 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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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2월02일 19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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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인터넷에 의해 휘청이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을 통한 댓글조작, 여론조작이 정치과정을 오염시키고 있다.

 

요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의 공판이 한창 진행 중이다. 실업난, 불황, 북핵, 남남갈등 등 산적한 문제들로 주목을 덜 받고 있기는 하지만, 정치과정과 선거과정이 인터넷 여론 조작에 의해 휘둘리는 문제는 그 어떤 다른 사안보다 중요한 것이다. 공동체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정치과정의 정당성과 신뢰가 흔들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올해 봄 설로만 떠돌던 '네이버 댓글 조작 가능성'이 현실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지만, 요즘 공판 과정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관련인들의 진술도 놀라움의 연속이다. 민심을 반영해주는 '거울'인줄 알았던 인터넷 댓글이 얼마나 오염되어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난 8월 허익범 특검팀에 의해 재판에 넘겨진 김경수 경남지사. 그는 공직선거법 위반과 포털사이트 업무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 전 드루킹 일당에게 킹크랩이라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현재의 여권에 유리한 내용의 네이버 사이트 기사 댓글의 인기 순위를 높이도록 조작을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공판 과정에서 김 지사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던 한모씨의 피의자 신문조서 일부가 공개됐다.

 

(특검)"왜 김 지사가 드루킹의 부탁을 들어주려 했는가?"

(한모씨)"드루킹 일당이 대선 때부터 역할을 한 게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김 지사가 이들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는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김 지사는 부인하지만, 김 지사가 인터넷 댓글 조작을 한 드루킹 김동원씨에게 올해 6·13 지방선거까지 도와달라고 요구하며 그 대가로 드루킹의 측근인 도모 변호사를 일본 센다이 총영사 자리에 앉혀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게 김 지사의 보좌관이었던 한모씨의 진술인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드루킹 사건은 현재의 여권과 관련된 일이지만, 사실 이런 인터넷 포털을 통한 댓글조작과 여론조작은 여야,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권에게는 '달콤한 유혹'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터넷 전략'이라는 미명하에 이런 저런 프로젝트가 시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는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아니, 인터넷은 왜 정치과정을 지경까지 오게 만들었을까.

 

인간의 정치는 인터넷 시대를 맞이해 '기대'가 컸다. 인터넷이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을 깨워줄 것이라는 기대(동원효과.mobilization effect), 인터넷이 시민들로 하여금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합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줄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그래서 마침내 ‘참여’와 ‘숙의(熟議)민주주의’가 가능한 시대가 오리라는 희망을 품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기대와는 정반대로 유권자의 정치적 태도가 인터넷 시대를 맞이해 양극화(polarization)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외에서 잇따라 나왔다. 그 논문들을 볼 필요도 없다. 네이버나 다음의 뉴스 댓글만 봐도 이 양극화의 부작용을 바로 체험할 수 있다. 인터넷 댓글이라는 공간은 토론과 합의가 아니라 비난과 공격, 상대방 궤멸을 위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정치과정에서 정당, 이익단체 등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런데 기존의 신문과 방송이라는 언론은 인터넷 시대를 맞이해 네이버와 다음이라는 인터넷 포털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이제 국민의 '뉴스 소비'는 포털 한 두 곳으로 집중되었고, 그 공간을 매크로 프로그램이라는 테크놀로지로 조작해 왜곡하는 것은 쉬운 일이 됐다.

 

현재의 인터넷 정치 구조 하에서는 제2, 제3의 드루킹 등장을 막을 수 없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뉴스 소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네이버의 댓글을 조작하면 얻을 수 있는 권력이라는 '과실'이 너무도 달콤하기 때문이다. 보수도 진보도, 우파도 좌파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댓글 조작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기술도 존재하지 않는다. 뉴스 댓글을 기계적으로 조작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이라는 것의 특성이 그렇다. 네이버의 이해진 창업자도 이번 국정감사에 나와 "매크로 자체를 기술적으로 원천봉쇄하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해법은 뉴스 소비 공간의 집중화라는 원인에서 찾아야 한다. 국민이 모든 언론사의 뉴스를 모아둔 네이버나 다음에서 편안하게 기사를 볼 수 있는 환경. 그건 동시에 ‘민주주의의 적’들이 댓글 조작을 손쉽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는 의미도 된다. 그런 환경을 바꿔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네이버와 다음 등 인터넷 플랫폼이 뉴스 서비스를 전면 개편하거나, 정치권이 법으로 포털의 뉴스 서비스를 규제하는 것이다. 독자가 포털의 뉴스를 누르면 해당 언론사로 넘어가서 기사를 읽는 아웃링크도 좋겠고,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방향은 제2, 제3의 드루킹이 손쉽게 댓글 조작을 할 수 있는 현재의 뉴스 소비 공간의 집중을 완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규제보다는 자율이 더 바람직하다. 정치가 법으로 강제로 규제하기 전에, 인터넷이, 그 선두기업인 네이버가 선제적으로 댓글 조작, 여론 조작의 공간 무력화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의 정치는 앞으로 인터넷 여론 조작을 위한 '댓글 조작 전쟁'에 계속 휘말릴 것이고, 누가 이기든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혼돈의 나라'가 될 것이다. 

 

권력을 쟁취하려 치열하게 싸우는 '정치의 길'에 기업이 가세하거나 말려들 필요는 없다. 기업이 정치라는 '날카로운 칼'을 위험하게 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 

 

'정치의 길'은 정치의 몫으로 놔두고, 혁신과 미래라는 기업의 길, '네이버의 길'을 가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야 정치과정에 대한 인간의 신뢰가 유지되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치열한 정치 경쟁 속에서도 건강하게 발전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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