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에 쌓이는 휴브리스(오만) 이미지 - ‘오만의 함정’에 빠져들면 실패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11월13일 17시59분
  • 최종수정 2018년11월14일 12시01분

작성자

  • 이상일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단국대 석좌교수, 前 국회의원,前 중앙일보 정치부장·논설위원

메타정보

  • 47

본문

 

 2008년 11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런던정치경제대학을 찾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1990년 이후에만 8명이나 배출한 명문 대학의 신축 건물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그날 여왕은 인사말을 하면서 뼈 있는 질문을 던졌다. “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나?(Why did nobody notice it?)” 

 2007년 말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영국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이들이 큰 고통을 겪게 된 상황과 관련해 ‘위기를 사전에 감지해서 대비책을 세웠어야 하는 데 왜 그러지 못했느냐’는 뜻이 담긴 말을 한 것이다. 인도 출신 경제학자 메그나드 데사이(Meghnad Desai)는 이날의 에피소드를 접하고서 ‘왜 경제학자는 위기를 미리 예견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다음에 올 위기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의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휴브리스(Hubris, 오만)>라는 저서를 통해 답을 제시했다. 

 

 그는 ‘휴브리스’가 금융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거시 경제학의 양대 산맥인 케인스 학파(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 개입 강조)와 신고전주의 학파(정부의 과도한 개입 반대, 시장 자율 중시)는 그들의 이론만 옳다고 생각하는 오만에 빠져 경제의 흐름과 변화, 그리고 그 안에서 싹튼 위기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 다음에 올 위기를 피하려면 ‘내가 맞다’는 독선과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데사이의 결론이었다. 

 

 “왜 알아차리지 못했나?”라는 영국 여왕의 질문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이야기를 떠올린 것은 대한민국 경제의 상황이 매우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각종 경제지표를 발표할 때마다 경제 추락과 민생 파탄이 확인되고 있으니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국정운영을 책임 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들을 보면 “왜 위기임을 알지 못할까?”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 체질과 사회 구조가 바뀌고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좀 기다리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정권의 핵심정책인 소득주도성장론이 고용 참사와 민생고(苦)의 중대 요인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를 자신 있게 설명하라. 긍정효과가 90%다”(5월31일)라고 했던 대통령의 인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케 하는 연설이었다.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시정연설을 통해 밝히자 참모들과 민주당도 위기설을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위기론을 얘기하기 때문에 위기가 온다’며 경제 위기를 우려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난 11월 4일 당정청(여당,정부,청와대) 회의에서 장하성 정책실장(9일 경질됨)은 “내년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실질적인 성과들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에 대한 근거 없는 위기론은 국민의 경제심리를 위축시켜 경제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가 나빠지는 건 정부 정책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 때문이고, 그런 걱정은 근거도 없는 것이란 얘기였다. 장 실장은 5일 국회 예결위 회의에 출석해 현 정권이 가장 잘한 일이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해 온 것이라고 했다. 그날 그 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야당이 경제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포문을 열면서 이미 경질이 기정사실화된 장 실장을 엄호했다. 야당의 비판 때문에 경제 위기가 온다는 게 청와대와 여당의 논리인데, 앞으로 경제가 더 엉망이 되고 국민의 삶이 더 망가지면 그 책임을 야당과 정부정책을 비판한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우기로 이 정권은 작정한 모양이다.  

 

 정권의 경제낙관론, ‘내가 옳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권력을 쥔 쪽이 이처럼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사이가 2007년의 세계 금융위기 원인으로 진단한 ‘내가 옳다. 내 이론이 맞다’고 하는 오만함 때문에 그러지 않나 싶다. 내 정책이 옳기 때문에 그대로 가면 반드시 성과가 나타난다는 맹목적 신념, 상상과는 반대로 전개되는 어려운 현실은 과정상의 일시적 현상라고 보는 아둔함, 바깥의 비판은 ‘위기 조장용 발목잡기’라고 일축하는 편협함, 이런 문제의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은 권력의 오만, 즉 휴브리스 아닐까. 

 

 권력이 이런 배타적 발상으로 무리수를 두기 때문에 나라 살림도, 국민의 삶도 망가지게 된다는 교훈을 이 정권은 모르는 것 같다. 그걸 안다면 ‘이 정도가 무슨 위기냐’는 식의 주장을 하면서 ‘기다려 봐라. 내년이 되면 좋아질 테니’라고 큰 소리 칠 수 있겠는가(장하성 전 실장은 지난 여름엔 ‘연말이 되면 좋아질 것’이라고 하더니 이번엔 ‘내년에는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설사 정권의 주장대로 위기가 아니라고 치자. 그럼에도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는 건 월별, 분기별로 나오는 각종 경제지표와 민생 현장의 아우성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 위기’라고 생각하면서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 점검하는 등의 태도를 보이는 게 옳지 않은가. 그래야 호감을 살 테고 상황 악화를 막는데도 보탬이 되지 않겠는가. 정권이 이런 자세를 보이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내가 옳은데 왜?’라는 오만함과 ‘비판을 수용하면 우리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옹졸함에서 그러는 것 아닐까 싶다.    

 

 정권이 상상한 대로 소득주도성장 효과가 나타나고 있나? 


 문재인 정부가 받드는 소득주도성장의 이론과 현실엔 큰 괴리가 있다. 최저임금의 높은 인상을 통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려주면 그들의 소비가 늘고, 그로 인해 생산이 증가하게 되면 일자리도 더 많이 창출될 것이며, 이것이 다시 국민의 소득 증가 - 소비 증가 - 생산 증가 -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는 등 경제 사이클의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상상에서 나온 것이 소득주도성장론이다. 정권이 독창적으로 만든 이론이 아니고 폴란드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Michal Kalecki)의 임금주도성장론을 차용한 작품이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한 건 칼레츠키의 ‘임금주도’ 주장을 옳거니 하고 따른 결과다. 

 

 그런 소득주도성장론이 현실에선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서민의 소득이 오히려 줄어들고 일자리도 사라지는 등 탁상에서의 생각과는 다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2018년 16.4% 인상 등 지난 2년간 29% 인상, 2019년엔 10.9% 인상 예정)을 감당하지 못하는 영세상공인, 자영업자 등은 종업원을 내보내고 가족노동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로 인해 청년과 서민의 일자리와 아르바이트 자리는 확연히 줄어들었고, 그들의 소득도 감소했다.

 

 지난해 월 평균 31만 6000명이었던 취업자 증가폭은 올해 1~9월 동안 평균 10만 400명으로 대폭 줄었다. 하반기엔 취업자 증가 수가 한층 더 줄고 있는 양상이다. 통계청의 ‘2018년 2분기 가계동향 조사(소득부문) 결과’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소득 최하위 20%(1분위) 가계(2인 이상 가구)의 명목소득은 월 평균 132만 5000원이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7.6%가 줄어든 것이다. 소득 하위 20~40%(2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은 280만 200원으로, 1년 전의 같은 기간보다 2.1% 감소했다. 반면 소득 상위 가계의 소득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소득의 양극화와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양극화를 줄이고 분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정부가 그걸 위한다는 정책을 썼지만 현실은 ‘야속하게도’ 정권을 배반한 셈이 됐다.

 

 소비는 어떠한가. 11월 6일 ‘하반기 경제 전망’을 발표한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했던 민간 소비가 올해 하반기엔 2.4%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내년 상반기엔 소비가 2.2% 증가에 머무는 등 소비가 계속 위축될 걸로 KDI는 내다봤다. 서민의 소득은 줄고, 서민을 포함한 국민 전체의 소비는 그다지 늘지 않는다는 사실은 소득주도성장이 정권의 상상대로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 

 

 지난해 말에도 소득주도성장의 문제를 지적했던 KDI는 이번 보고서에서 “올해 실업률이 가파르게 오른 주요 이유는 노동수요 감소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업이나 사업자들이 근로자의 일자리를 만드는 등 노동 수요를 증가시키지 않고 줄였다는 얘기다. 왜 그랬겠는가. 물가상승률을 훨씬 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 탄력근로의 기간적 여유는 충분히 주지 않은 채 시행에 들어간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사업자 입장에선 인건비 부담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 아니겠는가. 

 

 청와대는 “내년엔 좋아질 것”, 그러나 KDI 전망은 정반대 


 장하성 실장은 물러나기 직전까지도 “내년엔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KDI 전망은 정반대다. 올해보다 더 나빠진다는 것이다. KDI는 내년엔 경기둔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돼 잠재성장률(2.7~2.8% 추정)을 밑도는 저(低)성장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 나라의 경제가 보유하고 있는 자본과 노동력,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얻을 수 있는 성장치가 잠재성장률이다. 그런데 KDI가 전망한 내년 성장률은 2.6%. 내년엔 모든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더라도 잠재성장률에 미달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국책연구기관이 내놓고 있는 것이다. 

 

 KDI의 전망이 정권의 낙관론보다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정권의 반(反)기업, 친(親)노동 정책 때문에 기업은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 있고, 투자도 뒷걸음질 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등이 계속 ‘마이너스’ 상태인데 내년에 무슨 수로 경제가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인가. 김동연 경제부총리(9일 경질. 다만 후임자가 취임할 때까지 일을 하게 됨)가 5일 내년에는 경제가 좋아진다고 했던 장하성 실장을 겨냥해 “희망사항을 말한 것 같다. 나는 좋아진다고 말한 적 없다”고 한 건 이 같은 경제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KDI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 2.6%도 막상 내년이 되면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KDI가 지난 5월엔 올해 성장률을 2.9%로 전망했지만 경제 상황이 계속 악화하자 하반기엔 올해 성장 전망치를 2.7%로 낮췄듯 내년에도 그런 일이 재발하지 말란 법은 없다. 내년엔 경제가 더 어려울 걸로 예상되는 만큼 많은 이들이 이미 우려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각종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초대형 경제위기)’이 닥칠 수도 있다. 그 경우 경제는 날개 부러진 새처럼 맥없이 추락할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데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위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의 정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것이다. 

 

 내년을 걱정하며 ‘지금이 위기이니 대비하라’고 하는 것이 정상이다. 정권은 ‘야당이 위기를 부치기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위기를 조장하는 측은 위기가 아니라며 합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집권세력이다. 현실에선 정책 실패, 정부 실패로 판명 났음을 각종 경제지표를 통해, 여러 경제주체들의 목소리를 통해 충분히 확인하고도 남음이 있는데도 ‘우리가 옳다.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온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더 큰 위기를 부르는 오만 아닌가. 

 

 각종 밀어붙이기 인사, 낙하산 인사는 오만의 증표 아닌가 


 정책은 수정하지 않고 사람만 바꾸고, 그것도 ‘그 나물에 그 밥’인 사람들로 ‘돌려막기’ 하듯 인사를 했으니 이 역시 보통 오만이 아니고 보통 불통이 아니다. 경제의 투톱(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을 대통령에게 쓴 소리 한 번 안 할 사람으로 채운 걸 보고서, 그리고 투톱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충실히 밀어붙일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경제계에선 “암담하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걱정이 들끓어도 정권은 묵살할 테니 오기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알기 어렵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가지 흠결이 지적된 나머지 청문보고서도 채택되지 않은 장관 후보자 7명을 대통령은 그동안 우격다짐으로 임명했다. 2명의 헌법재판관 후보자와 KBS 사장도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임명을 강행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야당을 하던 시절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이뤄지는 전(前) 정권의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해 뭐라고 했던가. ‘인사청문회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오만한 행동이고, 반드시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이른바 ‘적폐정권’보다도 더 자주, 더 많이 ‘오만한 행동’을 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지 않은가. 박근혜 정권 4년 6개월 간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인사는 모두 10명. 문재인 정권에선 1년 6개월 만에 타이기록을 세웠으니 이에 대한 오만의 강도는 이 정권이 더 세지 않은가.      

 

 대통령의 캠프 출신, 민주당 출신들을 공공기관 등에 마구 꽂는 낙하산 인사 또한 전 정권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는 게 언론과 현장의 평가다. ‘공공기관장의 45%, 공공기관 감사의 85%가 낙하산’, ‘박근혜 정부 19개월 간 친박(親朴)낙하산은 86명, 문재인 정부 14개월 간 친문(親文) 낙하산은 131명’이라는 등의 보도가 나왔고, 바른미래당은 친문 낙하산 인사명단을 담은 백서도 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청와대로 여야 대표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과거 낙하산 인사를 적폐라고 비난했던 문 대통령을 겨냥해 이혜훈 당시 바른정당 대표가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 부적격자 인사를 하지 말아 달라”고 얘기하자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방방곡곡에 ‘낙하산’, 그것도 대다수는 ‘결함 있는 낙하산’(전문성 부족 등 함량 미달의 인사)을 내려 보내고 있다. 대통령은 자신의 약속을 망각한 듯 가만 놔두고 있으니 자기모순이고, ‘내로남불’이다. 이 또한 오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평양회담을 앞두고 국회의장단과 정당대표들에게 함께 평양에 가자고 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한 이 제안은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책무를 지닌 입법부를 무시한 발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어 국회 의장단과 한국당·바른미래당 대표가 평양행을 거부하자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당리당략을 거둬주시기 바란다”며 야당을 꾸짖었다. 그런 그에 대해선 ‘제왕적’이란 비판이 나왔다.

 

 휴브리스(오만)엔 재앙과 몰락이 따른다  


 ‘휴브리스(오만)’와 관련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일들이 쌓이면서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불만도 쌓이고 있다. 평양 회담 직후 반짝 상승했던 대통령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인상이 나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다”며 민심의 변화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태도로 인해 ‘오만의 함정’으로 빠져들고 종국에는 큰 화(禍)를 입게 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한번 바꾸는 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가 성공으로 교만해 지고, 추종자들에게는 복종만을 요구하며,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지적·도덕적 균형을 상실하고, 가능과 불가능에 대한 판단력도 잃어버리는 현상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창조적 소수는 그들이 성공한 방법을 모든 곳에 다 통하는 절대적 진리인양 우상화하는데 이것을 휴브리스(오만)라 한다”라고 했다.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인 휴브리스(Hubris)는 ‘자만 또는 자부심이 큰 인간이 신을 분노케 해서 몰락을 자초하는 경우’를 뜻한다. 오만이 오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몰락과 파멸을 초래한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 휴브리스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여당은 ‘우리가 휴브리스의 함정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져 보길 바란다. 대통령과 정권을 위해서 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문제는 없는가?’라는 자기진단을 철저히 해 보는 게 좋을 듯싶다.

 

 심리학자 아담 갈린스키는 “권력자들은 한 곳에 묵직한 닻을 내린 채 정박한 배와 같다”고 했다. 권력자가 자신 만의 관점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얘기다.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내가 진리다’라고 생각한다는 토인비의 지적과 상통하는 것으로, 바로 이런 사고방식과 정신상태에서 재앙의 싹이 튼다. 

 

 심리학자들이 권력자들에 대해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권력자들의 속성이니 그들의 공감 능력이 어찌 뛰어나겠는가. 자기 확신이 강하고 공감 능력도 부족한 권력자에게 다른 관점의 이야기,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가 크게 들릴 리 만무하다. 그러니 권력자들은 오만의 길로 향하기 쉽고 위험에 빠지기도 쉽다. 

 

 ‘왜 알아차리지 못했나?’라는 후회 섞인 질문이 대통령 입에서 나오지 않으려면? 


 문 대통령과 청와대, 민주당의 공감 능력도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들이 ‘우리의 공감 능력은 좋다’고 한다면 그것도 오만일 수 있다. 현 정권이 다른 목소리, 다른 시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를 보여준 사례가 언제 있었던가?  

 

 대통령에게 늘 다른 시각과 비판적 관점을 제시하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을 청와대에 두라는 충고(http://www.ifs.or.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867)를 지난달 이 란(News Insight)을 통해 한 적이 있다. 청와대의 인적 구성상 집단사고의 오류나 확증편향의 문제를 언제든 노정할 수 있으니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다른 관점에서도 검토해 보는 과정을 제도화하라는 것이었다. 그게 대통령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도 좋지 않겠느냐는 뜻에서 칼럼을 썼던 것이다. 

 

 그런 아이디어를 청와대가 받아들일 걸로 기대하진 않았지만 대통령과 청와대의 태도는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비판에는 신경 쓰지 않고 내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시정연설과 경제 투톱 인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문재인식(式) 마이웨이(my way)’다.     

 

 정권이 기존의 방식과 정책을 밀어붙여서 경제난과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행복을 증진한다면 그간 이런 저런 비판을 하던 이들은 머쓱해 질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민생이 더 나빠진다면, 그리고 북핵 문제는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 상태로 표류하게 된다면 문 대통령 책임론이 비등해 질 것이다. “다른 목소리를 배척하고 오만하게 밀어붙이더니 이렇게 실패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테고, 2020년 총선 때엔 성난 민심의 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가정이긴 하지만 그런 상황이 도래하면 문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처럼 “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느냐?”라는 질문을 청와대 참모들과 민주당 지도부에 던지면서 야속하다는 뜻을 전할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이 그런 ‘불쾌한 상상’의 현실화를 피하고자 한다면 실패와 재앙을 초래하는 ‘휴브리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ifs POST>

 

            

47
  • 기사입력 2018년11월13일 17시59분
  • 최종수정 2018년11월14일 12시01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